[레지나칼럼] 세월이 무척 빠르다고 실감을 한다(2)
<지난 호에 이어>
음식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의 유명한 요리연구가이신 단국대학교 윤숙자 교수님께서 캘리포니아 엘에이에 요리학교를 열어주셔서 직장에 장기 휴가를 내어 윤 교수님의 요리 교육도 받으면서 다양한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광화문에 있는 후드 앤드 아카데미 김수진 원장님(영화 식객 이외에 여러 영화 음식을 만드시던 분)에게도 요리 강습을 받기도 하고 또 이탈리안 요리도 전문가에게 틈만 나면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내 직장에서 정신질환자들의 치료를 돕기 위하여 쿠킹 세러피 클래스를 만들어 팬데믹이 시작하기 전 3년간 매주 다양한 외국 요리들을 우리 사무실의 환자 고객들, 정신질환자 그룹들과 함께 만들며 이들의 정신적인 치료에 도움을 줄 수가 있었다.
또 음식을 다 만들어서는 만든 음식들을 가지고 다운타운에 가서 우리 모두가 노숙자들에게 만든 음식을 베풀면서 이들이 남을 돕는 법도 함께 배울 수 있게 하였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우리 사무실 직원 중 K-팝 문화에 빠져든 동료들을 모아서 한국 음식 만들기 강좌를 해서 직장에서 바쁘지만 아주 유용하고 즐거운 생활을 해왔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어떤 계기로 내가 요리전문가로 초빙받아서 시애틀 도서관에서 각 외국 요리 작품들을 비디오로 촬영하는데 한국요리로 갈비찜을 선택하여 갈비찜을 만드는 법을 비디오로 제작하는데 하루 종일 촬영하여서 영화 촬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경험도 해봤다. 그 비디오는 아직도 시애틀 공립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멕시코 친구들에게 다양한 멕시코 요리까지 전수하기도 하고 일하면서 틈틈이 다양하게 취미로 이런저런 일도 해보았는데 모든 일이 나는 다 재미있었다. 무슨 일이든지 일을 먼저 시작하기 전 참 많이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일단 시작을 하면 어떤 일이든지 그 일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무척 재미가 있다.
우리 외조부님께서는 한의사였는데 내가 40대 초반에는 한의사 공부가 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생각을 많이 해보다가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로 시작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일을 지금 시작하려니 이제는 눈도 침침하고 나이도 있어서 정확도도 떨어지는 데 아무래도 시작을 하지 말아야지 싶다.
한의학 공부를 이십 대나 삼십 대부터 시작하셔서 경력을 키우신 분이라면 자신 있게 능숙하게 침도 잘 놓을 수 있겠지만 늦게 시작을 한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아닌 것 같고 지금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떨리게 즐거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일이다.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다 보면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은 다 없어지고 오로지 내가 요리하는 음식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니 내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한국 여행 중에 우연찮게 들어간 감자탕집의 감자탕이 너무 담백하고 맛이 있어서 3일간 그 집을 찾아가 주인할머님 주방장을 졸라서 결국은 요리법을 배워오기도 하였다. 물론 그 대가를 치르고서.
4년 전 내 정신질환 고객이 약을 2주간 못 먹고(나는 이때 한국 여행 중이었다) 내가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날 내 정신줄 놓은 아프리컨 어메리컨 고객이 거주하던 쉘터 6층에서 뛰어내려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된 것을 알게 된 날부터 나는 거의 두 달간 잠을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하여 살이 20파운드가 빠지고 스트레스로 인하여 제2당뇨환자가 되었다.
물론 그 고객은 생명을 건지고 병원에서 일 년간 누워있으며 산산이 부서진 온몸의 뼈가 제자리를 찾아서 살아날 수가 있었다. 다행히도 머리를 다치지 않았었다. 우리 집안에는 오빠나 언니들이나 또한 부모님들도 당뇨환자가 없었는데 내가 내 환자 고객이 죽을까 봐 너무 신경을 쓰며 걱정을 하며 잠을 못 자다 보니 스트레스형 당뇨병이 생긴 것이다.
당뇨병은 일단 생기면 회복이 쉽지가 않은데 나는 당뇨병을 진단받은 그해 4년 전 딱 두 달 당뇨약을 먹고서는 병원의사로 있는 조카의 의견을 듣고는 당뇨약을 끊어버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을 먹지 않고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물론 4년째 설탕, 탄산음료 주스, 빵등을 먹지 않고 집에서의 음식은 설탕 대신 감초 우린 물이나 몽크후릇 파우더 등을 사용해서 단맛을 내고 외식을 할 경우에는 하루 한 끼로 당을 조절하기도 한다. 아이스크림을 엄청 좋아하였는데 이제는 아이스크림 맛이 어떤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30여 년간 미국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나 또한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세상과 나눌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오랜 시간 일해오던 직장에서는 ‘마마베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직장동료들을 대접하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이들의 대변자가 되어 궂은일도 마다치 않고 하게 된 나의 성격 탓인 것 같다. 세월이 이만큼 오게 된 현재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내일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