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책임을 다하는 일(1)
옛날의 우리나라 왕들은 그래도 책임을 질 줄 알았다. 나라에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굶주리면 "짐이 부덕하고 하늘 의 노여움을 받아서 이렇게 흉년이 든다"라고 한탄했다. 기우제(祈雨祭: 비가 내리도록 하늘에 비는 제사)도 왕이 직접 지냈다. 목욕재개하고 하얀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하늘을 향해 정말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못된 임금일지라도 국민들의 굶주림을 보고 외면한 군주는 없었다. 말하자면 양심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근세에 와서부터 소위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이나 수 상이 나라 경제가 불황 속에서 허덕일 때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국민 앞에 사과를 하는 예가 거의 없다.
민주정치체제하에서는 모든 정책을 당이 결정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일은 담당 장관이 하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수상이 책임을 전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쨌든 최종 책임은 국가의 원수가 저야 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 국방, 교육, 사회, 예술 등각 분야에 장관이 있지만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수상과 대통령이다. 내각책임제하에서는 수상이 최종 책임자이고,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는 대통령이 총책임자인데 교묘하게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각 부서의 장관들은 대통렁이 임명하여 국회의 승인을 받아 취임한다. 그러고 보면 장관들은 대통령이 뽑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무슨 사고가 생기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장관을 바꾸는 정도에서 끝난다. 국민들도 장관을 바꾸고 나면 잠잠하다. 그래서 어떤 부서(우리나라의 경우) 장관은 한 대통령 임기 6년) 기간에 열네 번이나 바뀐 적도 있다. 7일 장관, 1개월 장관이 수두룩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오늘 나는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장관이나 대통령은 책임을 질줄 아는 국민의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장관들이나 고급 공무원들의 부정이 드러나면 모두 파헤쳐서 발표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국회라면 전 국 회의원이 모두 자퇴하고 새로 뽑는 것도 신선한 맛이 있다.
국민들의 실망이 요즘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신들이 뽑은 선량이 모두 수백억대 부자인데 왜 또 국회의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있는 돈 가지고 편안히 먹고 살면 되는데 왜 정치판에 끼어들어서 곤욕을 치르는지 모르겠다. 정치인은 도덕과 양심이 생명이다.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이권에만 눈이 어두워서 나라꼴이 이렇게 되었다. 그래서 돈은 억수로 벌었고 집을 아방궁처럼 잘 지어 놓고 산다. 서민은 19평짜리 아파트에서도 못 사는데 자신들의 집은 호화판이다.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았다. 뽑아 놓고 보니 모두 도둑이고 부자다.
이제 국민들 은 아무도 자신들이 믿고 뽑을 만한 국회의원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돈 벌고 권력 누리는 데만 눈을 돌리지 말고 이제부터는 책임을 지는 공무원으로 일하기 바란다.
얼마 전 국내신문에서 참으로 기찬 칼럼을 읽었다. 정말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무 공무원 중에 재산이 70억 원이 넘는 사람이 200명도 넘는다고 한다.
개혁의 일환으로 처음에는 20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공무원만을 퇴직시키려고 했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즉 세무행정이 마비가 될까봐서 상한선을 70억 원으로 올렸는데, 그래도 전국의 세무 공무원 중에는 이런 재산을 가진 공무원이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어째서 일선 세무서 직원의 재산이 그렇게 많을까? 나는 입이 벌어져서 말이 안 나왔다. 이 70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세무공무원만을 자진 사퇴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이 얼마나 세무공무원 노릇을 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남은 생을 호화롭게 살고도 남을 만한 재산을 모았으니 사퇴를 해도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일찍 공무원직에서 은퇴를 했으니 오히려 명에스러운 일이라고 자위할는지도 모른다.
이 칼럼에서 글쓴이는 세계적인 프랑스의 화학자인 라브아지에의 숙청 경위를 예로 들었다. 라브아지에는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과학자로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화학기호 둥을 만들어 냈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쓰고 있는 산소, 수소, 질소, 황산 등의 원리와 낱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또 어떤 물질이 화학작용에 의헤 타는 이치를 처음으로 밝혀 현대화학의 새 분야를 개척한 공로자이기도 하다.
이 천재 과학자가 1794년 5월 8일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죄목이 바로 부정부패 세무원이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라브아지에는 27명의 다른 세무원 동료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는데, 그 가운데는 그의 장인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정치가 극에 달하고 있을 때 이미 그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져서 구명운동을 벌였으나 허사였다.
당시 재판장은 사형 언도문을 낭독하면서 "프랑스 공화국은 부정한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프랑스는 라브아지에와 같은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하는 수재 과학자를 잃었다.
그가 죽은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는 참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원래 부자여서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다.
게다가 처가가 또한 부자여서 결혼한 후에 재산이 더욱 많이 불어난 것이다. 그 많은 재산 덕분에 그는 화학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었고 실험실습도 잘할 수 있었다. 파리를 찾아오는 다른 나라의 과학자들을 자비로 잘 대접하고 서로 좋은 교제를 가짐으로써 큰 발견을 했다. 따지고 보면 그는 국비를 들이지 않고 민간외교와 과학외교를 한 애국자였는데, 그 많은 재산 때문에 더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