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란 장례] 목사가 장례 회사를 시작하게 된 사연
“뇌종양이래… 엄마는 괜찮아…”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가냘팠지만 너무도 담담했습니다. 숨이 막히고 손이 떨렸습니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건강하신 모습으로 시애틀에 오셔서 함께 야외 예배를 드리며 활짝 웃으시던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다음에는 록키산맥 여행을 하자던 그 약속은 이제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억력이 급속히 감퇴되어 혹시 치매가 아닐까 걱정하며 병원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악성 뇌종양—글리오블라스토마. 수술도, 치료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절망적인 진단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급히 뉴저지로 날아가 어머니 곁에 일주일을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생각보다 너무도 평안하셨습니다.
“75년 살았으면 오래 산 거지. 이제 하늘나라 갈 때가 되었나 보다. 그냥 나를 편하게 보내줘.”
제 손을 꼭 잡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앞에서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포기할 수 없어 최신 치료법을 찾고, 식이요법도 알아보며 그저 하루라도 더 곁에 계시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어머니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습니다. “왜 나를 잘 보내줄 생각은 안 하고 더 힘들게 하니? 남은 시간, 그냥 나와 함께 찬양과 예배로 함께 시간을 보내주면 안 되겠니?”
그 말씀이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결국 단 한 차례의 항암치료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후, 우리는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평안을 되찾으셨습니다.
며칠 동안 손을 잡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분의 마음속에는 잊혀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축복뿐이었습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날 생각에 미소 짓는 어머니의 얼굴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해 보였습니다.
의식이 흐려지고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잊어가셨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감고 찬송가를 부르셨습니다.
그 일주일은 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시간이었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니고 신학대학원에서 배운 모든 지식보다도, 어머니 곁에서의 일주일은 저에게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일깨워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2016년 1월, 어머니를 평안히 천국으로 보내드린 후 제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남겨진 이들을 위한 새로운 소명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장례는 단지 이별의 의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남은 이들이 위로받는 ‘거룩한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저를 장례지도사라는 새로운 부르심으로 이끌었습니다.
오늘, 저는 이익 창출이 목적이 아닌 장례 회사를 운영하며 유가족의 슬픔에 함께하고, 마지막 순간을 믿음과 사랑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일주일이 씨앗이 되어 시작된 이 여정은, 제 삶의 새로운 사역이자 사명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