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마지막 음식(2)
<지난 호에 이어>
그런데 우리 나가서 잠깐 뭘 사 먹을까요? 라면서 화제를 돌리며 00씨를 밖으로 불러내 우리 사무실 옆에 있는 델리 집으로 함께 가서 00씨에게 과자나 사탕을 사 드리면 00씨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라는 표정이 되어 내가 사준 과자나 사탕을 먹으면서 00씨가 머무르고 있는 쉼터로 돌아가곤 했다.
거주할 곳이 없는 00씨를 우리 프로그램에서 운영하는 쉼터에 머무르게 하면서 정부에서 나오는 웰페어에 신청을 하여 받게 하였는데 돈에 대한 관념도 잃어버린 00씨는 웰페어로 나오는 돈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라서 어느 날은 한 달분의 돈을 받아 갖고 나간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돈을 누군가에게 다 빼앗겨 버리고 다시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때로는 자기가 받은 돈을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곤 하여서 그때에 우리 사무실이 00씨의 페이(수령자)가 되어 00씨가 매일 우리 사무실로 찾아오게 하여 그날그날 쓸 돈을 주곤 하였다.
00씨를 담당하게 된 나는 00씨의 망상증 증세를 완화시키고자 약물 처방을 해야겠다는 의견을 가지고 우리 사무실에 함께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를 참고로 킹카운티 법원에 00씨를 신고를 하여 강제로 정신병을 치료하는 약을 먹게 하려고 했으나
법원의 결정은 아무리 정신질환 환자라도 본인이 남을 해치거나 자신을 해하지 않을 경우에 본인이 약을 거부를 할 경우 강제로 약물 처방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멀쩡한 사람을 병 신을 만든다”며 펄쩍펄쩍 뛰는 00씨를 당해낼 수가 없고 본인이 무슨 정신병이냐고 절대 아니라고 우겨대는 00씨를 끝내 설득하지 못한 채 이십여 년을 그렇게 살아오게 되었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00씨는 이십여 년을 시애틀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한겨울에는 차가운 빗줄기가 00씨의 몸을 매섭게 내려치고 지나가도 00씨는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그 세찬 빗줄기를 다 맞으며 무거운 몸으로 후적후적 시애틀 다운타운 거리를 헤매이고 다녔다.
더운 여름에는 두껍고 낡은 냄새가 폴폴 나는 오버코트로 온몸을 감싼 채 뜨거운 햇살에 달구어진 시애틀의 거리를 맨발로 누비고 다녔으며
00씨는 낡아빠진 가죽가방에 그리고 긴 망가진 우산대를 들고 다니며 거의 매일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나를 만나고 그날 쓸 돈을 찾아가기도 했었다. 언제인가는 00씨가 며칠씩 안 보이기도 했었는데 걱정이 되어 우리 사무실 아웃리치 직원들과 내가 00씨를 찾아 나서면 00씨는 어느 빌딩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고서 어디서 주웠는지 박스로 쓰다가 버린 골판지 몇 개를 엉성하게 세워 집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그 앞에
는 부서진 가구들이나 온갖 잡동사니들을 앞에 벽처럼 세워 놓고 담장을 만들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으로 망상 증세를 보이며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걸고 명령을 하면서 00씨는 이미 대통령이 되어 세상을 호령하고 있었다.
00씨가 그래도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오면 나는 쉼터에서 지내느라 한국 음식을 전혀 맛볼 수 없는 00씨에게 주려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인스턴트 한국 음식에 뜨거운 물을 부어 대접을 하고는 했었는데 00씨는 내가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다양한 인스턴트 음식 중에서도 특별히 호박죽을 많이 좋아하며 가끔씩 00씨가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참, 레지나 씨 우리 엄니가 단 호박죽을 엄청 잘 끓였었어!
엄니는 가을에 잘 익은 호박을 따서 속에 있는 씨를 놋수저 숟가락으로 잘 긁어모아 씨만 다 모아서 펌프 물을 끌어올려 흐르는 물에 호박씨를 깨끗이 씻어 흔들어 낸 다음 씨를 부뚜막 무쇠솥 옆에 펼쳐 놓았다가 밥할 때마다 불을 지핀 아궁이 주위가 따뜻해져 호박씨 껍질이 하얗게 마를 즈음이면 나와 내 동생들은 간식으로 호박씨를 까먹고 자치기도 하고 팽이 돌리기도 하고 놀곤 했지,”라며 마치 정신이 멀쩡한 사람처럼 얘기를 하고는 했다.
“엄니는 호박은 줄기처럼 썰어서 햇살에 말려두었다가 한겨울 추운 날에 귀한 찹쌀을 조금 넣고 밀가루 넣고 미리 불려 놓은 동부콩을 넣은 다음 푹 끓여주시면 아주 맛있는 호박죽이 되었지,”라고 말하시면서 내가 건네주는 인스턴트 호박죽을 훌훌 마시기도 하였었다. 어느 한여름날 00씨는 겨울옷을 입고 또 맨발로 매일 들고 다니는 낡고 망가진 가죽가방을 들고 다니던 00씨가 나를 찾아왔다.
00씨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로 환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아주 조용히 은밀하게
“레지나 씨 우리 조용한 데로 가서 얘기를 해요?”
내가 우리 사무실 상담실로 00씨를 안내하니 00씨는 “레지나 씨 문을 닫아요, 혹시라도 다른 직원이 들으면 질투할 수도 있어요.”라며 말을 시작했는데
“레지나 씨, 내가 한국에 대통령이 되었어요.
이제 곧 한국으로 가야 하는데 레지나 씨를 꼭 내 수행비서로 데리고 가고 싶은데 월급은 얼마나 주면 될까?”라며 심각하게 물어왔다?
“글쎄요?
지금, 레지나 씨 여기서 월급 얼마 받아요?
아참, 레지나 씨가 그동안 나에게 너무 잘해 주었으니 내 생각을 후하게 해서 월급은 만 불을 주면 될까?”라면서 물어오셨다.
나는 “그럼요, 만 불이면 충분해요.”
나의 대답에 “그래, 그럼 만 불 약속할 테니 종이 한 장을 달라.”신다.
내가 종이 한 장을 갖다 주니 00씨는 종이 한구석에 눈에도 잘 안 띄게 만 불이라고 쓰고는 동그라미를 쳐놓는다.
그리고는 그동안 수고한 레지나 씨에게 특별 선물로 빨간색 컨버터블 차 한 대 뽑아 준단다. (왜 빨간색 컨버터블(오픈카) 차를 00씨가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 그럼 레지나 씨가 내 수행비서로 함께 한국으로 가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00씨에게
“그런데 어떡하지요, 제 아이들과 남편은?”
내 말을 들은 00씨의 얼굴이 별안간 단호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아이들과 남편은 버려요!”
그리고는 일장 훈계를 한다.
“레지나 씨,
대통령의 수행비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귀한 일을 하러 가는데 무슨 아이들 걱정과 남편 생각을 하느냐”면서 단호한 얼굴로 “아이들과 남편은 버리세요!”라고 말한다.
00씨가 7일째 안 보여서 실종 신고를 하고 기다리는데 타코마에 있는 병원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00씨가 어떻게 해서 시애틀에서 타코마까지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00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중인데 타코마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00씨를 사람들이 신고를 해서 메딕 차가 00씨를 병원으로 이송을 했는데 00씨의 몸을 검진을 해보니 00씨의 온몸은 암이 퍼진 상태라고 한다.
병원 직원은 실종 신고 담당 카운셀러가 레지나 채라 확인이 되어 전화한다고 하면서 00씨가 아마 며칠 못 갈 것 같다는 위험한 상태라고 말했다. 나는 00씨를 만나러 가기 전 잠깐 한국 마켓에 들러서 인스턴트 한국 음식 몇 개를 사 가지고 병원으로 갔는데 평소에 00씨가 좋아하는 호박죽과 몇 가지 죽 종류
를 사 가지고 가서 입원 중인 00씨를 보는데 00씨는 병원에서 자주 발작을 일으켜 온몸이 침대에 묶여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간호원을 불러 이분이 위험한 분은 아니니 침대에 팔다리를 묶고 있는 것을 풀어 달라고 부탁을 하니 자기네 규칙상 묶은 것을 풀어줄 수가 없단다.
내가 병실로 들어서며 00씨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한 00씨가 힘없이 웃으시며 “아이구, 레지나 씨가 나를 엄청 좋아하나 봐 여기까지 쫓아왔네!”라고 말하며 힘없는 미소를 띠우며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병원 직원의 도움을 빌려 사 가지고 온 호박죽을 전자오븐에 데워 달라고 해 00씨에게 떠먹이려고 하니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죽음의 그림자가 어려 있는 00씨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
를 힘없이 돌리는 중인데 나는 00씨에게 “00씨 우리 비행기 타고 한국에 가야죠?” 라면서 말하니 약하게나마 눈에 생기가 도는 것 같은 00씨에게 숟가락 한 스푼에 호박죽을 그득히 떠서 숟가락을 허공에 올리며
“자! 00씨 지금 비행기가 뜹니다요.
자, 활주로가 필요하니 입을 벌리세요, 윙 윙 윙윙”
노란 호박죽 한 스푼은 허공에서 비행기가 되어 하늘에서 몇 번 회전을 하며 윙윙윙 소리를 내며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벌리고 있는 00씨의 입안의 비행장 활주로에 안착을 한다.
나의 장난스런 행동에 00씨의 입안은 활주로가 되어서 00씨는 호박죽을 1/3 정도를 맛있게 받아먹은 게 00씨의 마지막 식사였다.
00씨가 세상을 떠난 후 어쩌다가 우연히 인스턴트 호박죽을 마켓에서 발견하면 내 가슴에 슬픈 파도가 밀려와 명치끝이 아프게 메어 오는 슬픔이 나를 눈물짓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