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 회계칼럼] 639. 세계화폐 – 예금화폐에 관한 제도 - 시애틀한인로컬회계칼럼
화폐는 그 생멸의 과정에 따라 동전, 지폐, 예금화폐 등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중 동전은 가치가 미미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 돈을 헤아릴 때는 현찰과 예금만을 생각한다. 예금을 현찰과 구분하기 위해 예금화폐라 칭해 본다.
화폐의 발행은 두 가지 채권채무증서가 맞교환되는 과정이다. 그 중 화폐라는 채권채무증서에는 이자가 없고, 화폐와 맞교환되는 채권채무증서에는 이자가 붙는다. 이자는 유동성이 약할수록 더 높아진다. 유동성이란, 지금 당장 다른 자산으로 바뀔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자동차를 하나 사고 싶을 때, 국채를 주고 자동차를 살 수는 없다. 국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일단 그것을 팔아서 현찰로 바꾸어야 한다. 그 국채를 합당한 가격에 팔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이것을 두고 “국채는 현찰보다 유동성이 낮다”고 한다. 정상적인 (마이너스 이자 제도 바깥의) 국채에 이자가 붙는 것은, 국채가 현찰보다 유동성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 주 칼럼(638호)에서 본 바, 지폐의 가치를 담보하는 것은 국채이며, 그 국채에 현물 담보가 제공되었을 때는 그 국채의 가치는 가장 든든해진다. 이번에는 예금화폐의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본다.
예금화폐는 현찰과 연결되어 있으나, 현찰이 안정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예금화폐도 덩달아 안정되지는 않는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존재하지 않던 1933년 초에는 예금주들이 은행 앞에 줄을 서서 현찰을 찾아갔다. 그들이 현찰을 찾아간 것은, 현찰의 가치와 예금화폐의 가치가 달랐다는 뜻이다.
예금화폐의 가치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려면 19세기 미국의 자유화폐 시대를 돌이켜보면 된다. 칼럼 625호에서 본 바, 자유화폐 시대에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지폐는 모두 중앙정부의 금화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각 지폐의 가치는 발행하는 은행의 신용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현재 미국의 경우, 예금주당 은행당 예금카테고리당 25만불까지 FDIC 가 보험해 준다. 예금보험공사는 적어도 예금화폐에 관해서는 모든 시중은행의 신용도를 균일하게 해주고 있다.
예금보험공사가 보험해 주는 한도는 2008년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하여 10만불에서 25만불로 올랐다. 그 대신, FDIC는 대출제도를 까다롭게 만들었다. 그 위에, 칼럼 389호(Volcker Rule)에서 본 바, 고객의 예금을 자금으로 하여 은행 자체의 모험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이렇게 해야만 FDIC가 불의의 피해를 볼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금화폐의 가치는 예금을 맡은 시중은행의 신용에 달려 있고, 시중은행의 신용은 은행이 대출한 대출금의 안전성에 달려 있다. 대출금만 안전하다면, 그 어떠한 이유로 예금주들이 은행에 몰려와 돈을 찾아가려 하는 사태가 생기더라도 FDIC는 그에 필요한 유동성을 제공한 다음 대출금의 상환계약서를 인수해 가면 그만이다.
화폐를 발행한다는 것은, 그것이 지폐이든 예금화폐이든, 일종의 빚을 지는 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두 화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화폐와 같거나 유사한 채권채무관계 증서를 아래에 나열하고 괄호 속에 발행자를 표시해 본다.
대출금 상환계약서 (채무자)
크레딧 카드 사용 내역 (카드 사용자)
외상 장부 (구매자)
화폐를 잘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빚을 잘 관리한다는 뜻이다. 세계화폐 제도를 시행하는 주체는 같은 화폐를 사용하는 모든 지역에서 빚이 잘 관리되는 제도를 강요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세계화폐 제도를 시행하는 주체에게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국가를 같은 통화권에 포용하면, 그 세계화폐에 관한 불안은 떠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세계화폐의 지위가 유지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 문단에서 언급된 주체의 모습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유럽중앙은행(ECB)와 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