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기드온칼럼] 107년 전의 함성, 자유의 통일로 이어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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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 기드온칼럼] 107년 전의 함성, 자유의 통일로 이어질 수 있는가?

l  다니엘 9:5-6

박상원 목사 | 기드온동족선교회(GBMW) 대표


107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날의 함성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 존재의 절규였으며,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천부적 자유를 되찾겠다는 거대한 영적 각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07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과연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의 어디쯤 서 있습니까?

해외 각지의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는 지금도 미완의 자유를 완성하기 위해 ‘복음통일을 여는 6일릴레이 금식기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조용하지만 무거운 기도의 핵심에는 다음과 같은 뼈아픈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이 다 이루지 못한 자유를 위하여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

우리는 흔히 분단의 원인을 강대국의 탓으로 돌리거나, 과거 세대의 책임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나는 그때 없었으므로 내 죄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역사적 책임에서 발을 뺍니다. 하지만 성경 속 역사의 지혜는 다르게 말합니다.


나라를 잃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예언자 다니엘은 100년 전 조상들이 저지른 죄를 두고 “그들이 죄를 지었다”고 하지 않고,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통탄했습니다. 무너진 성벽 앞에서 울었던 느헤미야 역시 자신은 안전한 왕궁에 있었음에도 민족의 무너짐을 자신의 허물로 여기며 가슴을 쳤습니다(단9:5~6절 이하).


이것이 바로 진정한 리더십이자, 억눌린 자들을 위한 대변(代辯)의 자리입니다. 공동체의 아픔은 시간이 지났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대변한다는 것은 남의 허물을 지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내 것으로 끌어안고 내 몫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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