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독일과 러시아 선교사님 이야기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독일과 러시아 선교사님 이야기

19일 주일 밤 11시에 딸이 우리를 시애틀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밤 1시 아시아나 비행기로 한국을 향하여 떠나는데 그 깊은 밤에 사람들이 참 많았다. 성경의 무림고수인 남편은 계속 성경을 읽다가 잠들었고, 나는 이병헌, 손예진이 나오는 영화를 한 편 보다가 이병헌이 살인을 하는 영화라 실망해서 끄고 잠을 자려고 해도 안 와서 계속 기도하고 오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안 보는지라 좋은 감동적인 영화를 한 편 보고 싶었다. 성경을 읽고 글도 쓰고 할 일이 많은데 짐을 올려놓아서 꺼내기가 힘들고 눈도 피곤해서 그냥 눈을 감고 가기로 하다.

새벽 3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그 새벽 시간에 입국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놀랐다. 어떤 남자들 단체는 수백 명이 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아마 취업하러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7시에 우리를 픽업하러 K 목사님이 오신다고 해서 우리는 아래층 식당에 가서 곰탕을 한 그릇 시켰는데, 그 목사님이 오셨다고 해서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오시라고 해서 같이 식사를 했다. 목사님이 일찍 오셔서 우리를 픽업해서 1시간 20분이나 걸려 성수동 선교관에 우리를 내려다주시고 가셨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에도 다시 픽업해 주겠다고 하셔서 너무 고마웠다. 100불을 직접 드리면 안 받으실 것 같아서 앞의 가방 위에 살짝 얹어드리고 내렸다.


3층 선교관에 짐을 들고 올라가서 선교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독일 선교사님 부부가 먼저 와 계셨다. 예전에는 사모님만 오셔서 우리와 같이 계셨고 병원에 다니시면서 치료를 받으셨다. 면역력이 약해지셔서 머리가 다 빠져 모자를 쓰고 다니셨는데 지금은 병이 나으셨고, 머리가 예쁘게 자랐고 미인이고 멋쟁이 사모님이시다. 단번에 알아보고 반가웠다. 그때 선교비를 주셨다고 잊지 않고 감사하셨다.


이번에는 7년 후의 안식년으로 독일에서 나가서 1년을 쉬고 다시 들어가야 해서 2월 추운 겨울에 한국으로 들어와 이 선교관에 오셨고, 짐을 큰 가방까지 6개를 들고 와서 공항버스를 타고 내려서 택시를 잡을 수도 없어 이곳까지 걸어오느라고 큰 고생을 했다고 하신다.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너무나 잘 안다. 짐이 많으면 택시가 안 서고, 거리가 너무 짧아도 안 태워 준다. 1년 동안 겨울도 있고 여름도 있으니 얼마나 짐이 많을 것인가.


남편은 미국 침례교회 소속 선교사님이고, 사모님은 미국에서 간호사셨다고 하신다. 미국에서 시리아 난민을 위해 독일로 파견하신 선교사님으로, 68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돌보시고 말씀을 전하고 계신다고 하신다.

모든 경비는 미국 교단에서 다 대주고 미국 곳곳마다 선교센터가 있어서 안식년에는 미국 선교센터에서 생활하신다고 하시니 아직 미국이 살아 있구나 하고 감사하고 안심하는 마음이 된다.


그러나 간호사로 미국에서 안락한 생활을 할 수가 있는데 이렇게 힘들게 선교사의 길을 택하셨다는 것이 참 존경스럽다. 선교관이 방이 세 개인데 두 개의 방을 그분들이 이미 쓰고 계셨고, 식탁이 좁아서 네 사람이 같이 식사하기가 불편하고 서로 양보하면서 힘들었는데, 이틀 후에 가신다고 하니 감사했고, 가시면서 누가 갖다 주었는데 사모님이 매운 것을 못 드셔서 파김치 등을 하나도 안 드시고 여러 가지 음식과 반찬 등을 심지어 큰 수건까지 다 남겨주고 가신다고 하니 참 감사했다.


같이 식사 한번 하자고 했는데 다른 분들이 다 식사 대접을 하신다고 해서 100불을 드리고 미국에 가셔서 식사 한번 하시라고 강권해서 드리다. 남겨주고 가신 물건값이 더 넘친다.

좀 더 많이 드리고 싶지만 우리 사역자 중에 어머니도 아들도 우리가 후원을 하는데, 그 아들이 해외 연수를 간다고 달러를 줄 수 없느냐고 해서 그 아이에게 주기로 약속을 해서 달러가 없었다. 그 가정은 초·중학교 두 아들과 어머니와 세 사람이 후원을 받고 있고, 어린 두 아들이 열심히 설교를 듣고 써내는데 훌륭한 사역자들이 되기를 기도해 준다.


또 좋은 소식은 러시아 선교사님이신데, 요즘 교회들의 선교비가 다 끊어지고 현지인 전도사님이 세 분이나 되는데 그분들에게는 꼭 생활비를 드려야 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정부에서 목사님이 상이군인이셨는데 그 보상으로 강남에 방 두 칸의 아파트를 집으로 보상해 주고 평생 50만 원씩 준다고 해서 이번에 나오셔서 계약을 하기로 했다고 하신다. 세 전도사의 생활비 때문에 기도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군대 보상비를 뒤늦게 꼭 필요한 때에 받게 되었다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고 하신다. 참 좋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분은 우리가 목회할 때부터 30년 동안 후원하고 있는 가족과 같고, 부모님과 사모 딸을 칼로스가 후원하고, 우리를 이 선교관에 소개해 주신 분들이시다. 이번에 독일 선교사님들과 오랫동안 같이 계셨다고 한다. 북한 가까운 우수리스크에 있는 이 교회에 청소년들이 무척 많은데, 요즘 전쟁으로 너무 힘든 러시아에서 이 청소년들이 훌륭한 주님의 사역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주고 있다. 연세가 든 선교사님들은 넘겨줄 후계자가 없어서 고민인데, 이 교회는 그 딸과 사위가 한국의 신학대학에서 공부도 했고, 사위가 고려인으로 그 교회의 확실한 후계자로 이 교회는 소망이 넘친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중국과 북한과 러시아를 위해서 기도할 때 이 교회와 그 학생들과 청년들 생각이 나고, 믿음의 용사들이 나와서 러시아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기를 소망을 갖고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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