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질그릇에 담긴 보배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질그릇에 담긴 보배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6-7).


어떤 유명한 유대인의 랍비가 공주를 만나 여러 가지 지혜를 전하고 공주가 큰 은혜를 많이 받았다. 공주가 “선생님은 외모가 키도 작고 너무 초라한데 어찌 그렇게 지혜로우십니까?”라고 무례하게 솔직히 물었다. 랍비가 말하기를 좋은 술은 어디에 담습니까? 종이 왕에게 금 항아리에 들은 술을 갖다가 드렸더니 맛이 너무 나쁘다고 진노를 했다고 하면서 좋은 향기로운 술은 질그릇에 담아야 하지 금 항아리에 담아서는 맛이 변한다고 했다.


주옥같은 성경을 쓰고 귀신을 내쫓고 많은 불치의 병을 고친 사도 바울도 언어가 능하지 못했고 자신의 몸에 병이 있어서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지만 네 은혜가 족하다고 하시고 약할 때가 강함이라고 하셨고 질병을 고쳐주지 않으셨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질그릇이라고 했고 예수님도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1-12). 초라한 질그릇이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고깃덩어리를 던져주어야 좋아하고, 진주를 돼지에게 주면 발로 밟고 주인을 찢으려고 할 것이라고,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이라고 하셨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켜라” “어릴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아직 무엇이 부족합니까?”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다. 그 후에 너는 나를 따르라.” 재산이 많은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 하늘의 보화는 눈에 보이지 않고 땅의 재산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니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간다.


어릴 때에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이 있고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람을 부러워한다. 어느 목사님은 큰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주셨느냐고 따져 물으니 “너에게 가난을 선물로 주셨다.”라고 하셨는데 기도하면서 그것이 큰 선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했다고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다. 예전에 중국에 많이 선교를 갔었는데 맨발의 가난한 청년들이 많이 몰려와서 은혜를 사모하고 성경 공부를 열심히 했다. 부자들은 부족한 것이 없어서 예수님을 안 믿는다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금, 은, 나무 그릇들은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자신을 깨트리고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못한다.


당신은 금그릇인가? 질그릇인가? 질그릇은 값어치가 없고 깨지기가 너무 쉽다. 그런데 당신 속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으면 당신을 눈동자처럼 지켜 보호해 주신다. 내 속에 귀한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 깨지지 않게 나 자신도 조심해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내 속에 계신 분이 나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 뜻대로 일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에 말이나 코끼리를 타지 않으셨고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다. 사람들이 호산나라고 찬송하면서 저들의 겉옷을 바닥에 깔고 환영을 했는데 나귀는 자기를 환영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세상에서 큰 교회 왕 같은 목회자들이 많이 계시다. 그분들이 더욱 겸손하셔서 주님의 큰일들을 많이 하시고 천국에서 큰 상 받으시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자신이 한 마리의 예수님을 태운 나귀라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면 좋으리라.


나의 달란트로 글을 많이 쓰는 나에게 “글 쓰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요?”라는 말을 듣고 너무 모욕을 느꼈다. 여러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내가 참 어리석은 말을 잘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인내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남의 말을 들어주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내 말을 끊지 말고 좀 들어요.” 한다.


나도 내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데 들어줄 사람은 없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까지도 모두 바쁘다. 나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외롭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 성경 읽고 기도하면 너무나 큰 위로를 받는다.

나는 얼마나 깨지기 쉽고 부족한 질그릇인가? 내 속에 귀한 예수님이 계시기에 나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시니 너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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