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새로운 삶
3개월 예정으로 한국에 왔다.
이번에 3개월 시간을 잡고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11월 내 본업인 크리니컬 카운셀러 일을 그만두고 (상담 일을 지속적으로 하지만 직장에 나가지 않고 케이스를 가져다 집에서 일을 하기로 하고) 나니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3개월간 예정을 하고 한국에서 살아보기를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한국에 사시는 언니가 몸이 아프셨고 오빠 역시 연세가 많아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과 한국의 사회복지 기관과 대학에서 강의 초청(미국에서의 중독자 치료 방법)과 그동안 바쁘게 열심히 살아온 미국에서의 삶에 이제는 풀타임 일도 내려놓았으니 조금은 쉬엄쉬엄 느리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일하면서 기록한 환자 고객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 “레지나 칭칭나네” 책 출판 사인회도 있었다.
제목이 “레지나 칭칭나네”인 것에 뭐지? 라며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4년 전 한국의 몇 대학과 비영리 기관에서 강의를 부탁받고 강의를 하는 도중 학생들이 강의를 듣다가 (미국의 정신질환자, 중독자 치료 보호 방법) 한 학생이 손을 들고는
교수님 강의가 너무 새롭고 재미있습니다.
학생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교수님, 한국에는 “쾌지나 칭칭나네”라는 노래가 있는데 교수님 강의를 듣다 보니 “수고한 교수님의 이름을 붙여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라며 80여 명의 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두 손을 들고는 “레지나 칭칭나네, 레지나 칭칭나네”를 불러주었었다.
이번에 3개월을 살아보려고 여러 지역을 알아보다가 숙소를 잡은 곳은 서울대학교 근처인데 번화가인 홍대나 강남 쪽보다 조용하고 교통도 편리하고 근처에 재래시장도 있어서 쉽게 장을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었지만 물건을 사 가지고 숙소까지 들고 오기에는 힘이 들어서 집을 삼 개월간 렌트를 하기 전 차도 함께 빌릴 수 있는 옵션이 있었던 것을 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쌩쌩 오가는 차량들 틈에서 운전한다는 게 자신이 없었고 한국에 온 목적이 천천히, 느리게 살아가고 싶어서여서 차는 빌리지 않았던 것을 후회해 본 상황이었다.
감탄할 만한 일은 한국은 거의 전 지역이 전철 연결이 너무나 잘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지하로 깊숙이 내려가는 전철 노선이 조금은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몇 번을 타다 보니 익숙해져서 불편하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번은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데 에스컬레이터가 얼마나 긴지 스마트폰을 꺼내어 동영상을 촬영하다가 몰카 하는 줄 알고 오해한 사람이 신고하는 바람에 역무원에게 붙잡혀서 스마트폰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도 생겼었다.
에스컬레이터는 정확히 2분 정도를 올라가야 했다.
하기야, 에스컬레이터 맨 아래서 위로 촬영하려니 오해할 만도 하지!
전철 카드에 돈이 떨어진 것을 모르고 타고 다니다 내릴 역에서 문이 안 열어져서 몇 번을 게이트에서 씨름을 하다가 강제로 밀고 나갔더니 요란하게 벨소리가 나고 (역무에 있던 사람이 나와서 자초지종을 설명을 하고 돈을 다시 카드에 입금한 후 다시 개찰구에 카드를 대니 600원만 내면 되는데 3,500원 벌금을 물어야 했다.
그야말로 시스템이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을 보며 한국의 IT 산업이 얼마나 앞서가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전철 안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만 보고 옆에 앉은 사람과는 시선도 안 마주치는 게 이상하게 보였으나 우리가 한 달간 전철을 타면서 다니다 보니 마주 보는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눈을 감고 자는 체하든지 아니면 시선을 스마트폰에다 집중하여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오래도록 스마트폰 보기가 불편해서 눈을 감고 내릴 곳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어버려서 내릴 곳을 지나쳐 10분 거리면 도착할 장소에 전철을 한 바퀴 돌아 한 시간이나 다시 되돌아와서 내리기도 했었다.
달러가 강세라 한국에 오면 돈 쓰는 게 부담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조금 생각해 보아야 했다.
달러가 강세지만 한국의 물가는 엄청 높아서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나면 백 불이(십만 원 이상) 아무렇지도 않게 지출이 되었다.
우리 시애틀에서 백 불이면 큰돈인데…
여기서는 사과 6개에 10불, 계란 한 판에 20불, 키위 네 개에 10불, 우유 핀트 사이즈 13불 등
이곳에서는 팬데믹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주문해서 먹는 음식들이 많아졌고 사람들이 다양한 음식들로 주문해서 먹을 수 있게끔 주문 제도가 너무나 편리하게 잘되어 있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물건을 배달하는 퀵서비스의 편리함이 아주 잘되어 있었다.
웬만한 음식들은 거의 다 주문이 가능해서 참으로 편리하게 살아가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성향이기는 하지만 나는 주문해서 먹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직접 레스토랑에 가거나 집에서 조리해 먹는 것을 좋아하니 너무 쉽게 음식을 주문하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 식습관이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이 되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온 우리에게는 조금 불편했던 식당 문화는 웬만한 식당의 음식들은 단맛을 내었다.
1970년 말에 미국 생활을 시작한 우리는 음식이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었던 게 익숙해져 있는데 요즈음은 한국의 김치를 비롯하여 반찬들이 너무 달아서 처음에 먹어본 이후로는 입에 대지를 않았고 거의 모든 식당의 김치 맛이 비슷해서 물어보니 중국산 김치가 싸기 때문에 많은 업소에서는 중국산 김치를 사용한다고 했다.
이곳에 머무르면서 며칠 전 뉴스를 보는 도중 중국에서 배추를 싱싱해 보이려고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상하지 않게 하는 약품) 뿌려서 배추를 수출하거나 그런 배추로 김치를 만드는 것을 뉴스로 본 터라 이후로는 어느 식당에 가든 김치는 입에 대지 않고 김치가 먹고 싶어 부엌이 그리 크지 않은 숙소에서 가까운 마켓에 가서 배추 두 포기를 사서 절인 다음에 고춧가루, 마늘, 파, 생강, 신선한 새우젓까지 사서 버무려 김치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 중이다.
또 싱싱한 쪽파가 있어서 한 단 사다가 쪽파김치도 담그었다.
이곳에서 여러 군데 모임과 미팅이 있어 다니다 보니 음식을 집에서 해 먹을 시간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냉장고에 두 종류의 김치가 냉장고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방문한 레스토랑 중 한국 조리계에서 명인으로 선택받은 레스토랑의 음식은 너무나 우리의 입에 잘 맞았었다.
평택에 꽃다온 식당, (한식이 코스별로 나오는 식당인데 음식이 아름답고 편안하고 은은한 맛을 내어준다)
서울시청 근처에 한가람 식당(약선 한식을 하는데 이곳의 음식의 재료는 한방 재료를 사용해서 특별한 맛을 준다)
또한 대구 옆의 도시 경산 지역에 석화정(메밀국수와 수육)을 파는 곳인데 식당 앞에는 아름다운 작은 호수가 있어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고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에게도 수육 한 접시를 깨끗이 비웠던 수육은 담백하고 쫄깃한 맛이고 직접 뽑아낸 메밀국수 맛도 일품이었다.
물론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 분들하고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어 한국에 나올 때마다 찾아가 뵙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편안하게 얘기를 나누는 그런 분들인데 이곳들은 편안하고, 담백한, 맛있는 음식들이다.
식사를 마치고 준비해 주신 소금 커피, 또한 향긋한 차의 향이 너무나 좋았던 레스토랑이다.
특별히 한가람에서는 커다란 병에 편안하고 은은한 맛의 호박 식혜를 싸주셔서 집으로 가지고 와서 한동안 호박 식혜 맛에 내 마음도 스위트해지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머무른 지 한 달하고 10일이 되어가니 슬슬 집이 그리워진다.
문밖을 나서면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이곳의 도시의 화려함에 조금은 지쳐가는 것인지 시애틀에서도 30여 분 운전해 가야 하는 숲속의 우리 집이 생각이 나고 뒷마당의 꽃들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하고, 우리 집 연못의 금붕어 가족들에게는 먹이를 잘 주고 있는지 궁금하고 금년에는 나무가 휘어질 만큼 주렁주렁 매달렸던 허니 크리스피 사과는 다 땄는지도 궁금하고 저녁이면 너구리들이 우리 집 주위에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모습도 그립고.
매일 우리 집 앞마당에 찾아오는 토끼도 보고 싶고 하다.
한국에 와서 보니 느리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빠른 문화라 천천히 살아간다고 하기에는 서울보다는 외곽지를 택하여야 했지 않나 싶은데 또 그 지역에는 교통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늘 바쁘게 하던 일을 멈추고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 입는 것과 잠을 자는 것 그리고 책도 많이 보고(책도 20여 권을 구입해서 기쁘다) 새로운 지역에 가서 미팅도 하고 강의도 하면서 아름다운 경치도 둘러보고 지내는 이곳의 생활에 감사함이 생긴다.
쉴 새 없이 바쁘게 달려왔던 30여 년간의 소셜서비스 일과 도전도 필요했던 삶의 터전을 떠나 예전, 어릴 적 살던 곳으로 와서 하나씩 하나씩 나의 과거로 돌아가 보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