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아버지를 살린 아들 이야기
이성수(수필가)
조선 성종(成宗) 임금 때, 나라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특히 성종 16년~17년은 가뭄이 아주 심했습니다. 성종은 가뭄에 대비해 전국적으로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게 하여 민심을 다독였습니다.
또 쌀을 아끼기 위해 금주령(禁酒令)까지 내려 술을 빚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 어반미(御飯米)를 감소하여 나라의 쌀을 아끼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어반미란 임금이 드시는 쌀을 말합니다.
임금의 신하들이 반대하는데도 임금님의 식사량을 줄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가뭄의 원인이 매(鷹)를 기르는 것이라는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받아들여 전국의 매를 모두 날려 보내 방사(放飼)시켰습니다.
당시 성종은 가뭄 상황에 대비하여 스스로를 낮추고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며 돌보는 소위 성리학적(性理學的) 군주(君主)의 참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성종은 백성들과 가뭄의 고통(苦痛)을 함께하기 위해 뙤약볕을 쬐며 논을 돌아보았습니다. 땀을 흘리며 논과 논둑을 거닐고 있는데 어디선가 풍악(風樂)을 울리며 잔치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종은 잔치가 벌어진 곳을 알아보라고 명하였습니다. 알아보니 방주(房主) 감찰 김세우의 집이었습니다.
방주 감찰이란 사헌부의 감찰 중 우두머리 감찰 즉 팀장을 말합니다. 사헌부(司憲府)란 조선시대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으로 오늘날 한국의 검찰청과 같습니다.
성종은 화가 나서
"지금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느냐? 나라의 녹봉을 먹는 방주 감찰 김세우가 이 가뭄에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빚어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을 단속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잔치를 하고 있단 말이냐?"
화가 난 성종은 김세우는 물론 그 잔치에 참여했던 사람들까지 모조리 하옥하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한편 김세우의 가족들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아들들 이름으로 잘못했으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는 상소문(上疏文)을 성종에게 올렸습니다.
"국법(國法)을 어기는 것도 모자라 어린 자식들까지 시켜 용서를 빈단 말이냐?"
더욱 화가 난 성종은 그의 아들 모두를 잡아들이라는 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미리 소식을 전해 들은 김세우의 아들들은 몸을 피해 멀리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들 막내 김규만 혼자 남아 있어 이 애를 붙잡아 임금님 앞에 대령했습니다.
성종은 김세우의 어린 아들 김규인 것을 확인하고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네가 김세우의 막내아들 김규냐? 어찌하여 다른 형제들처럼 도망가지 않고 집에 혼자 있다가 잡혀 왔느냐?"
"전하! 제가 아버지를 구하려고 글을 올린 것이 무슨 죄(罪)라고 도망친단 말입니까?"
라고 성종에게 하기 어려운 바른말을 했습니다.
화가 난 성종은 김규에게 물었습니다.
"이 상소문(上疏文)을 누가 썼느냐?"
"네! 전하! 제가 썼습니다."
김규가 대답했습니다.
성종은 차츰 화(火)가 풀려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어린 아들 김규가 썼단 말에 오히려 기특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임금은 말했습니다.
"너 지금 가뭄에 관한 주제(主題)로 글을 한 편 쓸 수 있겠느냐? 주제에 맞는 글을 쓴다면 네 애비를 즉시 석방하겠노라."
김규는 성종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리하겠노라고 대답하고 단숨에 글을 한 편 지었습니다.
김규가 지은 글입니다.
"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5~6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언이 있습니다.
옛날 동해에 원한을 품은 여자가 하늘에 호소(呼訴)하자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상나라 초대 탕 임금은 7년 동안 가뭄이 지속되자 백성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고 반성하였습니다. 자기 몸을 희생물(犧牲物)이 되어 스스로 자신을 제물로 바쳐 기우제를 지내 비 오기를 빌었더니 마침내 비가 내렸습니다.
전하! 원하옵건대 임금님께서도 이를 본받아 하늘에 빌면 비가 내릴 것입니다."
성종은 그 글을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의 상소문과 글을 읽고 네 애비를 석방하겠다. 그리고 네 글씨를 보고 네 애비 동료들을 석방하겠노라. 너는 너의 애비에 대한 그 효심(孝心)으로 나라에 충성(忠誠)을 다하여라."
성종은 김규에게 후한 벼슬을 하사(下賜)하였습니다.
남을 탓하기 전 자신을 돌아보고, 티끌만 한 잘못이라도 먼저 책임지고 용서를 구한다면 이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배우, 작가, 코미디언 등으로 활약하던 마가릿 조(Margaret Cho)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작고 미미(微微)한 방식으로 베푼 관대함이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보기 드문 가뭄으로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성종은 어린 김규의 재치(才致) 있는 처세(處世)로 아버지를 살렸습니다. 하늘에서는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습니다.
김규는 어린 나이에 나라에 충성(忠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돌보는 자를 돕니다.
아버지를 살린 어린 아들 이야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