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 두 가지 화폐발행이익 - 안상목칼럼
지난 주 칼럼(618호: 앨런 그린스팬의 화폐관)에서 본 바, 연준은 화폐를 공짜로 건네주지 않는다. 연준에서 화폐를 받아가는 자는 그 대신 국채 또는 다른 안전자산을 연준에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화폐발행 순간에 연준은 손해도 이익도 보지 않는다. 이 때 연준이 받은 안전자산에 붙은 이자가 연준의 수입이 되고, 연준이 공여한 화폐에는 이자가 없다. 그 이자의 차이는 해마다 연준의 소득이 되며, 그 소득을 그린스팬은 화폐발행이익이라 했다. 이러한 견해는 이제 상식처럼 되어 있으며, 유럽중앙은행사이트에도 위키백과에도 그렇게 설명되어 있다.
교과서적 화폐발행이익 개념은 주화에서 가장 명백하게 포착된다. 앞 문단에서 언급된 지폐의 발행이익 개념을 좀더 잘 파악하기 위하여, 두 가지 화폐의(소위) 발행이익을 아래 표에서 요약해 본다.
이 표는 2007년까지의 모습이다. 2008년에는 중대한 변화가 생겼고, 그 변화의 의미를 붙잡아보려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였다. 그것은 다음 주에 논하기로 하고, 우선 이 표에 집중해 본다.
가로줄 a에 보이는 두 개의 명칭은 2010년 칼럼 154호(화폐발행이익)에서 사용된 그대로이며, 가로줄 b에 보이는 두 개의 영문 명칭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주화는 조폐공사에서 생산하고, 연준은 그것을 액면가에 구입한다. 가로줄 d에 보이는 액면가와 제조비의 차이는 조폐공사의 이득이 되고, 그것은 조폐공사 장부에 화폐발행이익(seigniorage)이라 기록되고 있다.
닳고 변형되어 못쓰게 된 주화는 소비자와 상점에서 없어지기도 하고, 은행을 통하여 연준까지 가기도 한다. 조폐공사는 그것을 액면가에 사주지 않기 때문에, 주화 소멸의 마지막 손실은 연준이 부담한다. 그러므로, 가로줄 f에 보이는 시점에서 조폐공사가 벌어들인 이익은 나중에 취소되는 법이 없다.
반면, 지폐가 닳고 변형되어 못쓰게 되면, 연준은 언제나 새 지폐로 바꾸어준다. 따라서, 만일 지폐의 발행자가 발행 시점에서 어떤 이익을 인식했다 하더라도, 지폐가 연준 손으로 돌아가는 시점에서 그 이익은 취소되어야 한다. 나중에 취소될 수 있는 이익이라면 처음에 굳이 이익을 인식할 필요가 없고, 연준을 떠나간 지폐 중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예정된 것은 단 한 장도 없다. 주화는 물건처럼 생멸하는 반면 지폐는 어음처럼 생멸하는 것이다.
지폐는 재무부 인쇄소(Bureau of Engraving and Printing)에서 생산하고, 연준은 그것을 인쇄물 값으로 구입한다. 그 구입가격은 연준의 경비로 취급된다. 연준이 지폐는 그와 같은 액면가격의 증권과 교환되어 세상으로 나온다. 얼른 보면 이 때 연준은 액면가격과 인쇄 경비의 차이를 이익으로 보아야 할 것 같지만, 연준의 장부에는 이 시점에서 아무런 이익도 기록하지 않는다. 지폐의 생멸이 어음과 같으으로, 연준의 장부도 그것을 어음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어음이 발행되는 시점에는 아무런 이익도 기록되는 법이 없다.
화폐가 연준 바깥에 나가 있는 기간동안 대체로 같은 금액의 증권을 연준은 보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로줄 f에 보이는 대로, 지폐가 바깥에 나가 있는 동안만 연준 보유의 증권에서 이자수입이 발생하는 것이다. 가로줄 g에는, 지폐의 발행으로 인하여 연준이 얻는 이득은 지폐 자체가 아니라 지폐와 교환된 증권에 붙어있는 이자임이 다시 한번 명시되어 있다. 가로줄 e를 보면, 주화의 발행이익은 제조비에 달려 있는 반면 지폐의 소위 발행이익은 연준 보유 증권에 붙은 이자율에 달려 있다.
이러한 c, d, e, f의 차이를 감안할 때, 이 두 가지 화폐로 인하여 발생하는 이익을 한 데 묶어 (이 글의 첫 문단에서처럼) 화폐발행이익이라 하는 것은 무리다. 장부를 만드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지폐에 관하여 발행이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며, 2008년 이후에는 그 이유가 더욱 뚜렷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