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연말연시에 자녀와 대화하기
집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딸 아이와 아노버에서 유학 중인 조카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작년에 이어 올 성탄절에도 시애틀을 방문했다. 몇 해 전 시애틀로 돌아왔지만, 따로 생활하는 아들 녀석까지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와 풀 하우스를 이루었다.
어느 가정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집 떠났던 자녀들이 귀향해 함께 있을 동안 ‘뭘 좀 잘 먹여야 하나’가 큰 걱정/재밋거리 중의 하나이다. 다 큰 아이들이니 타지에서도 나름대로 자신의 일에서 한몫을 하고, 자립하여 살다 보니 영양가 있는 식단을 잘 챙겨 먹으며 지내고 있을 터이지만, 부모 특히 엄마의 마음은 항상 다 큰 자식들에게 뭔가 해 먹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예상대로, 아내는 며칠 동안의 식사 메뉴 선정에 고민하더니 온, 오프라인에서 장도 보고 주문을 하느라 바쁘다. 당연히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뭐 그리 준비를 하고 그래, 바쁜 사람이”하며 마음에도 없는 핀잔을 준다. 직장 일로 바쁘게 고민하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흥겹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대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변신한 아내를 보며 한국에 계신 어머님들이 어릴 적 우리들에게 하신 같은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눈시울이 뜨겁다.
여기에서 더 나가면, 이모저모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크리스천들의 마음은 수은주가 격상되지 않겠는가? 아내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성탄절 저녁 식사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식단이 바뀐다. 아이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넉살 좋은 아들 녀석, 서툰 한국말로 “아이구, 어머니, 오늘 생각하신 것은 내일로 바꾸시고요. 오늘은 누나가 외국 음식을 준비한답니다”라며 추임새를 준다.
거의 항상 한식으로 차려지던 크리스마스 만찬이 올해는 필자에게는 생소한 이탈리안 음식이 주를 이룬다. 스테이크와 국수 요리에 곁들여 오랜만에 한잔하는 레드 와인인 메를로도 한 병 준비했단다. 별로 쓸 일이 없어서인지, 어디로인가 없어져 버린 와인 병 오프너를 찾아 헤매는 아빠를 보다가 아들 녀석이 혹시 초를 켜는 라이터가 있는지 묻는다.
병목 주위를 골고루 불로 가열하면 병 안의 공기가 팽창해 코르크 마개를 밀어 열리게 한단다. 효과가 금방 안 나는 걸 보니 직접 해본 경험은 아니고 유튜브를 슬쩍 살려 본 티가 난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아빠 혹시 스위스 나이프 있지 않으세요” 묻는다. 이제서야 스위스 나이프에 달린 병마개 따개가 생각난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자리는 오랜만에 풍성하다.
평소엔 허전하게 비어 있었지만, 오늘은 사람들로 꽉 찬 다이닝 룸이 제구실을 해 뿌듯하다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전구의 빛에서 나오는 온기로 방 전체를 채워 주는 듯하다. 음식은 물론이지만, 더욱 맛깔나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양념이 된 가족 간 대화이다. 한자리에 모여 나누는 지난 한 해의 고생담과 무용담들로 가득 찬 대화들이 눈치 봄이 없이 오간다.
고생한 대목에서는 “어휴, 오~슈웃”으로 공감하고, 자랑할 만한 일들의 구비에서는 “와아, 굿잡”으로 추임새를 주며 모두의 마음을 위로와 칭찬으로 풍요롭게 채워 준다.
항상 그렇듯이, 가족의 대화는 우리 가족에게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의 문제로 옮아간다. 트럼프와 바이든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곧이어 국제 분쟁 문제로 옮겨 가며 불꽃을 튀긴다.
“아빠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각자의 호/불호에 이어, 왜 평균적으로 미국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보다 호감을 보이는지에 대한 의견들이 오간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알려진 호감도 조사의 여론은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인 편향을 보이지만, 미국인들의 세대별 호감도는 다를 수도 있다는 뉴욕 타임즈 팟 캐스트를 인용한다.
2차 대전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겪은 베이비 부머 세대는 이스라엘에 가장 동정심을 보이고, 나인 일레븐을 목격한 세대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큰 반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인 Gen Z는 이스라엘이 항상 이기는 장면에 익숙한 세대이고 네타냐후의 강경책에 반발하기에 오히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보내는 편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위험하게도(?) ‘이 전쟁에 대한 올바른 크리스천의 태도는 어떤 것일까’로 옮아간다.
크리스천이라면 심정적으로나마 이스라엘을 편들게 되는 것이 보통이 아닐까에서 시작해, 하나님의 명령이 가나안에 사는 주민들을 모두 멸하라는 것이었음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 간의 대화에서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각 당사자의 종교 때문에 어느 한 편을 드는 것은 신약에서 강조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를 하며 식사를 마쳤다.
이제 첫날이 다가온다. 이 글을 읽으시고 며칠 후에는 갑진년 청룡의 해가 밝으리라. 올해는 독자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에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가능한 한 가족과의 대화 시간을 늘리고,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사용하던 관습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함과 동시에 가족과 남을 배려하며 나아 가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자녀가 대학을 정할 때, 무조건 순위와 세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에게 가장 적당한 대학과 전공이 무엇인지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꼼꼼히 나눠 보는 것도 이런 노력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