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기드온칼럼] 박상원 목사 동족 선교 이야기
도착하는 첫날부터 시작된 검색의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 다행히 풀려나서 거리 거리마다 건물 건물마다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감시카메라, 두만강을 둘러 진 치고 있다시피 한 고성능 안면인식 카메라에 다시 조사받았을 때의 놀란 가슴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인의 장막으로 우겨 쌓여 버린 백두산에서의 실망감과 허탈함을 넘은 분노에 ‘주님, 이렇게 옭아 매인 북녘땅과 동족들에게 무슨 희망과 탈출구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부터 북받쳤다.
그런 심정으로 북한 쪽 백두산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다. 정말 정지된 고요함이 눈에 번쩍였다. 아니, 이 느낌은 뭐지? 문뜩 작년에 우리 지하 성도들에 의해서 전도를 받은 한 북한 병사의 편지글과 백두산자락 밑 동네에서 장작을 패다 먼저 탈북한 할머니의 작전으로 갑자기 탈북하여 미국인에게 입양되어 온 M 군이 생각이 났다.
10년간 지하 성도들이 보내온 편지와 우리 동족들은 우리의 상상과 현실을 초월해서 자유의 땅으로 오고 있지 않은가! 이 일은 결코 이 어마어마한 감시와 통제보다도 더 월등하고 초월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작년 우리가 10년 넘게 지원하는 지하 성도(필자가 펴낸 ‘굶주림보다 더 큰 목마름’ 2012년 출판했는데, 그 주인공은 원고를 주고 책이 출판되기 한 달 전 의문사 소천, 그가 조직해 놓은 북한의 지하교회이다)들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가 생활비와 양식을 지원하면 삼, 사 개월 간격으로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8월에는 북한 어린 병사의 편지를 보내주어서 정말 깜짝 놀랐었다.
주님께서 북한군 복음화를 시작하셨나? 한 문장 한 문장이 놀랍고 경이로웠다.
“누가 보아도 욕심을 아니 낼 수 없는 어여쁜 내 여동생을 코로나 위중한 시기에 극진히 보살펴 주신 지하 성도님들이 믿는 그 하나님을 오늘부로 저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뒷빽이 없어서(북한에서 뒷빽이 없다는 말은 핵심 계층 부모와 돈을 뜻한다고 한다) 제대로 진급을 못 하여 자기 밑에 부하 병사들이 많지는 않지만, 속히 통일이 되어서 너희들은 김 아무개에 충성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할 그날이 빨리 오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라는 내용이었다.
익히 알다시피 북한에서는 남자들은 15살 혹 16살에 군대에 간다. 이전에 13년을 복무했다고 하는데(제대하면 거의 30살이다) 지금은 10년 의무복무를 한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서 고아가 된 남매였는데, 오빠가 군입대 전 여동생은 코로나에 걸려서 앓고 있었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와중에 군에 가야 하는 오라비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누구에게 맡겨 놓지도 못하던 상황에 우리 지하 성도들이 그 여동생을 극진히 돌보아서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 어린 오빠의 마음이 편지 고스란히 묻어났다. ‘누가 보아도 욕심을 아니 낼 수 없는 어여쁜 내 여동생을….’ 참 듣기 좋고 기분이 업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문뜩 이 표현의 말이 필자를 크게 위로하는 말로 그 고요함 속에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과연 이렇게 누군가로부터 욕심을 낼 만한 존재인가? 누가 나 같은 사람을? 그런데 한 분이 계시다. 주님이시다. 그 주님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사랑의 욕심을 내시고 계신 분이다.
이렇게 대국이라는 나라가 우겨 쌈을 싸고 진을 친다 한들 주님의 한방을 당할 수 있을까? 지하 성도들이 보내오는 그 편지들 속에는 복음으로 통일될 코리아에 대한 그 누구도 못 하는 원대하신 욕심이 계심을 저 반대쪽의 백두산의 적막한 고요함이 그렇게 더 웅대함으로 말하는 듯했다.
그래 백두산아, 지금은 그 적막함의 고요함이지만 여동생을 사랑하는 오빠의 그 자랑과 바램처럼 결국 온 세상에 외쳐지리라!
<계속>
필자의 뒤가 북한 쪽의 백두산 모습. <기드온 동족선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