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회계칼럼] 627. 유로화의 약점 -시애틀한인회계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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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목회계칼럼] 627. 유로화의 약점 -시애틀한인회계사칼럼

지난 주 칼럼(626호)에서 본 미국의 그린백-그레이백 지폐는, 두 개 이상의 국가가 같은 이름의 지폐를 발행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유로 화폐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린백과 그레이백은 서로 경쟁하는 두 국가의 화폐였던 데 반하여, 유로는 국가간 합의에 의한 공통화폐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 하나가 유로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면, 유로화를 사용하는 모든 국가가 피해를 당한다. 그레이백은 망하고 그린백은 보존되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오늘날 유로화는 남북전쟁 당시의 미국 달러화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리스 사태가 한창이던 2011년에는 그리스가 유로화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그렉시트(Grexit: 그리스가 유로화 체제를 이탈한다는 뜻의 신조어) 이야기가 많았다. 유로화의 붕괴를 염려하는 학자들은, 유로화의 근본 문제를 대체로 “동일한 통화정책, 각각의 재정정책”에서 찾았다. 미국은 하나의 정부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책임지고 있는데 비하여, 유로화 체제 속의 각국은 각각 나름의 재정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본 것이다. 그들 마음에 들어 있는 그 재정정책의 핵심은 정부부채 수준이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각국의 재정정책이 다르다 보니, 2019년 11월 현재 각국의 10년짜리 국채이자가 각각 다르다. 독일과 프랑스는 제로 퍼센트 이하의 마이너스 이자가 형성되어 있고,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1퍼센트가 넘고, 스페인과 포트투갈은 제로 퍼센트와 1퍼센트 사이에 있다. 우량 국가들 국채의 마이너스 이자는 유럽중앙은행 예치금의 마이너스 이자 0.5퍼센트를 반영하고 있다. (이 부분은 차후에 좀더 자세히 논하게 될 것이다.) 

독일 국채와 그리스 국채의 이자 차이는 약 1.8퍼센트이며, 그것은 그리스 국채가 독일 국채보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리스 정부부채는 GDP의 약 180 퍼센트 수준이며, 독일의 정부부채는 GDP의 약 60퍼센트 수준이다. 그 차이는 위험의 차이로 인식되고, 그것 때문에 국채의 이자가 달라지는 것이다. 

유로화의 가치는 발행국과 관계없이 항상 일정하므로, 유로화 사용국은 정부부채가 높아져도 “화폐가치를 떨어뜨려서 정부부채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위험성이 높은 국가가 많은 이자를 물면 점점 더 위험해진다. 그리스의 경우, 2012년 2월에는 10년짜리 국채이자는 22.5퍼센트까지, 3년짜리 국채이자는 77.65퍼센트까지 올라갔다. 공동체라는 이름 하에 공동의 화폐를 사용한 그리스가, 힘들어졌을 때는 그 공동의 화폐 때문에 더욱 힘들게 된 것이다. 미국이 2008년 위기에서 빚진 기업에게 이자를 줄여주었던 사실을 보면,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유럽공동체가 위와 같이 공동체답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은, 근본적으로 재정정책에 관한 효과적인 규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는 정부 소유의 섬을 팔아서 외채를 갚아야 했다. 다행히 세계적 경기 호전으로 인하여 지난번 그 위기는 넘어갔지만, 다음에는 또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그리스가 유로화 체제에서 떨어져나가면, 유로화 체제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그것이 “국가마다 재정정책이 다르다”는 문제의 극단적인 가능 상황이다. 

위의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사건은 위 줄친 부분이다. 거기에서, “결국은 섬을 팔아서 국채를 갚아야 했다면, 왜 처음부터 섬을 담보로 하여 국채를 발행하지 못했던가”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지금이라도 그리스 같은 약체 국가가 섬을 담보로 하여 국채를 발행한다면, 그리스 국채 이자와 독일 국채 이자와의 차이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섬이나 다른 정부 자산을 담보로 하여 국채를 발행하는 제도를 구상해 본다. 맨 먼저, 모든 국채는 정부 자산 담보부 국채와 전통적 국채로 구분하여 발행 경로를 다르게 한다. 담보부 국채는 발행하는 전액을 유럽 중앙은행이 인수하고, 유럽 중앙은행은 그 국채를 담보로 하여 은행채를 발행한다. 이 모습은 미국의 MBS (mortgage-backed security)와 유사하므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유럽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그 채권은 독일국채보다 못할 이유가 없는 (오히려 더 안전한) 안전자산이 된다. 이 때 유럽중앙은행이 이자 차액만을 징수하면 그 징수 금액은 현재의 독일국채 이자와 그리스 국채 이자와의 차이 1.8%보다 훨씬 작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국채이자 부담을 줄인다면, 섬을 담보로 국채를 발행하여 오히려 섬을 팔게 될 위험을 막게 되는 수도 있다. 이러한 방법이 강구되지 않는 것은 저러한 궁리를 방해하는 그 어떤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그 사고방식은 이 칼럼에 이미 언급되어 있다. 다음 주에는 그것을 꼬집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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