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나목(裸木)처럼…” - 시애틀한인로컬소셜칼럼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나목(裸木)처럼…” - 시애틀한인로컬소셜칼럼

‘우리 인간들도 나목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잘못 살아온 인생을 가을에 한 번씩 낙엽으로 청산하고 새봄이 오면 다시 시작하는 재생의 기회를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석호씨의 수필 '나목이 되고 싶다'의 서두이다. 물론 상록수는 제외지만 물들었던 잎들은 모두 떨어져 찬바람에 흩날리다가 사라진다. 겨울은 그래서 잔인하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웅크리게 한다.

그러나 벌거숭이 나무는 겨울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새봄을 기약한다. 봄이 오면 다시 새순이 돋고 꽃을 피우며 화려한 여름을 장식한다. 요즘처럼 끝없이 밀어닥치는 지식 정보로부터 자아를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을 찾는 길은 자연 밖에 없다. 나를 찾는 데는 한 그루의 나무와 한 송이 꽃이 있으면 된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한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잎을 무성하게 피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진리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들이 매일 다니는 길가에 즐비하게 서있는 가로수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철따라 변하는 그들의 몸짓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닫는다. 봄에는 새싹으로, 여름엔 풍성한 녹음으로, 가을엔 아름다운 단풍으로, 그리고 겨울엔 앙상한 나목으로 계절의 감각을 일깨워 준다. 병든 잎을 아름다움으로 보여주는 가을은 머지않아 낙엽이 될 슬픔을 피를 토하듯 새빨갛게 내뱉고 있다. 인간이 이런 단풍의 아픔을 아는가? 왕성하던 여름의 성장을 멈추고 병들어 흐느적거리는 가을의 아픔을 아는가? 자신들의 왕성했던 여름을 양보하면서 다음 해의 새싹들을 잉태하는 아픔을 아는가? 일 년 내내 철따라 미풍에 흔들릴 때도 있었고, 심한 폭우에 몸부림치며 견딘 세월이 있었다. 이런 아픔이 없이 나무는 성장하지 못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보고 애잔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위대함에 감탄한다. 병든 단풍의 죽어가는 모습에서 내일의 위대한 완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한 희생의 미덕을 보여준다. 내일의 새싹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며 자신은 부토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마치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갈 때 마지막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이 세상을 언제 떠날지 모르는 내 자아를 반성해 본다. 한 그루의 나무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는 그가 갈 길을 알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내일을 기약하는데 유독 인간은 천년을 살 것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성난 얼굴로 달려가고 있다. 당장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데도… 슬픔이 없으면 기쁨도 없고, 불행이 없으면 행복도 없는데… 그리고 고뇌가 없으면 즐거움 또한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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