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칼럼] “바다 교향곡”

전문가 칼럼

[정병국 칼럼] “바다 교향곡”

나는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몹시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교향곡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훈장 노릇을 할 때, 그러니까 20대 후반부터 나는 시간이 있으면 고전음악 감상실을 찾았다. 그전에는 명동에 돌체 다방이 고전음악 감상실로 유명했고 그 후에 종로에 르네상스라는 고전음악 감상실이 생겼다. 대학 시절에 나는 르네상스의 단골이었다. 연세대에서 버스를 타면 불과 20여 분 내에 종로 음악감상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에 우리 패거리들이 모시고 다니던 “삼촌”으로 통하는 선배뻘 되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노래도 아주 잘했고 고전음악에 도통한 분이었다. 그분은 나와 절친한 친구의 삼촌이어서 우리는 그냥 그분을 삼촌으로 불렀다. 보통 일주일에 두 번은 고전음악 감상실을 찾았는데 매번은 아니지만 그 삼촌을 졸라서 음악감상실을 함께 갔다. 


한 번은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신청하여 감상하는데 도중에 갑자기 삼촌이 무대로 나가서 곡에 맞추어 지휘하는데 얼마나 멋지게 잘하는지 우리들뿐 아니라 모든 청중이 손뼉을 쳤다. 4악장까지 전곡을 외우고 박자와 리듬에 조금도 틀림이 없이 지휘했다. 요즘도 고전음악을 감상할 때면 그 삼촌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삼촌을 1990년대 초에 40여 년 만에 괌에서 만났다. 그때는 삼촌의 머리가 이미 하얗게 물들어 있었고 건축을 전공한 삼촌은 어느 건설회사 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괌에 살 때 우리 집을 그분이 설계해서 지었는데 그 당시 괌에서 개인 집으로는 상당히 큰 집이었고 높은 지역에 집을 지어서 괌 어디서나 우리 집이 보였다.


그 당시에는 카세트테이프나 CD, 동영상 등의 시설이 없었으므로 주로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들었고 그 레코드판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멋쟁이로 알았다. 나도 그 당시에는 돈만 생기면 명동의 레코드 상점으로 달려가서 클래식 음악 레코드판을 샀다. 1970년대 초에 괌에 온 후로는 거의 클래식 음악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괌에서 형님과 함께 건설업을 했는데 항상 바쁘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야 하므로 음악을 들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1970년대 후반에 남태평양 서쪽에 있는 팔라우라는 섬에서 섬과 섬을 연결하는 교량 공사를 하게 되었고 나는 현지 주재 이사로 발령이 나서 공사를 감독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외딴섬에서 주말이면 갈만한 곳이 별로 없고 야영을 할 만한 곳도 별로 없다. 한 번은 팔라우의 많은 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무인도)으로 야영을 갔다. 


함께 일하는 이종득 상무와 함께 가서 물고기를 잡고 작은 바다악어(4피트)도 한 마리 잡았다. 그 악어를 전문가에게 맡겨서 박제했는데 지금도 우리 집에 진열해 놓고 있다.

하여간 고요한 남태평양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나는 바다 파도 소리에 매료되어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잔잔한 파도가 모래를 간지럽게 만지고 나가면 얼마 후엔 큰 파도가 몰려온다. 큰 파도가 몰려올 때면 클리프 라인을 파도가 치는 소리가 마치 대북을 치는 “쿵”하는 소리와 흡사했다. 


그 파도 소리에 빠져 나는 잠을 설친 채 밤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이 파도 소리를 “바다 교향곡”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파도 소리를 녹음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녹음기와 테이프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들을 수는 없지만 그 바다 교향곡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이 세상의 유토피아는 바로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인듯하다. 


팔라우 바다는 물이 하도 맑고 투명해서 20미터 바닷속을 맨눈으로 볼 수가 있다 그 바닷속에 덩치가 큰 클램쉘들(큰조개들) 여기저기 깔려있다. 현지인들은 스킨 다이빙을 하여 이 클램쉘의 힘살을 잘라서 팔목에 감고 올라온다. 이 힘살을 칼로 잘라서 먹으면 그 맛을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달고 맛있다. 한 번은 아내가 이곳에 와서 함께 현지인 두 사람을 데리고 바다에 나갔는데 아내는 조개 힘살을 세 접시를 먹었다. 


지금도 아내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 후에, 팔라우에 사는 친구가 우리 부부를 초대하여 현지인 두 사람과 바다에 나가서 이 조개를 잡아서 힘살을 오랜만에 실컷 먹었다. 해양학지이며 바다에서 평생을 보낸 잭 스토우는 팔라우만큼 아름다운 바다는 이 세상에 없다고 말했으며 바닷속을 사진으로 찍어서 책을 발행했다.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해 보면 꿈만 같다.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한세상을 살면서 그런 아름다운 곳을 섭렵하게 하신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나중에 하늘로 이사를 하여 하나님을 만나면 그 이야기를 하면서 머리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크게 할 것이다. 지금도 가끔 바다 교향곡을 상상하면서 아름다운 섬 팔라우를 회상해 본다.

(정병국의 “삶의 찬가”에서 1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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