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 (1)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 (1)

인간의 생명은 땅 위에서 한정되어 있다. 그 삶이 길다고 반드시 훌륭하거나 윤택한 것은 아니다. 짧아도 멋있고 감동 있게 살면 그것이 시시하게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낫다. 종교적인 세계에 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오늘 오래간만에 밤이 깊도록 책을 한 권 읽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못나고 거만하며 이유가 많은 부끄러운 인간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소설의 제목이 좋아서 출퇴근길에 늘 끼고 다녔지만, 막상 펴놓고 읽을 시간이 없어서 몇 페이지 보다가 접어 두고 했던 소설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제목의 소설로 정연희 씨가 쓴 전 작 장편소설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여자가 쓴 소설을 잘 읽지 않았다. 


한창 독서에 열이 올라 밤새워 글을 읽던 학창시절에도 여류 소설가나 여류 시인이 쓴 글은 별로 안 읽었는데 이번에는 제목이 좋아서 읽기 시작했고, 어젯밤에는 끝까지 다 읽고 지금 이 글을 쓴다.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이 소설은 기독교에 바탕을 둔 전기소설 장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도 살아 계신, 찬송가 작곡가로 유명한 박재훈 선생의 친구이며, 6•25 당시 예수님처럼 전도하다가 하늘나라로 간 맹의순(실제 이름인지는 모름)이라는 분에 대한 전기적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6•25전쟁 때 맹의순은 Y대를 다니다가 신학교로 옮긴 대학생이었다. 박재훈 선생과 맹의순 씨는 6• 25전쟁으로 인해 헤어진다. 맹의순 씨는 서울에서 교회 일을 하다가 피난이 늦어져서 세 사람의 동료와 함께 남으로 전선을 뚫고 자유 대한민국의 품으로 가려다가 한국군과 미군 측의 오판으로 간첩의 누명을 쓰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물론 일행 3명이 모두 함께 포로(PW) 글자가 찍힌 옷과 부식들을 먹고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자유의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열심히 주님을 찾으며 기도 로 용기를 잃지 않고 생활했다.


매일같이 수만 명씩 포로 아닌 포로들이 밀려왔고 진짜 북한군 포로와 중공군 포로도 몰려들었다. 하루에 수십 명씩 죽어갔고, 살아 있다 해도 부상으로 살이 썩어들어갔고, 겨울이면 동상에 걸려서 팔과 다리를 잘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속에서도 미군들의 부식과 옷을 팔고 사는 민간인 수용소 밖에서는 난무하는 육체 매매 등 갖은 타락상들이 펼쳐졌다.


영화 장면 같은 그 아비규환의 생지옥 속에서 맹의순은 천사 같은 인자함과 사랑을 전했고, 그의 얼굴에서는 늘 인자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불러 주면 마구 욕을 하고 심지어는 밥통을 집어 던지고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아니, 그도 인간이었기에 몇 번이나 자포자기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자산을 일부러 이런 곳에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중공군 막사에까지 다니면서 예수님의 도를 몸소 실천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고, 언어도 다른 그들에게 찬송가를 백지에 적어서 중국식 발음을 영어로 표기하여 가르쳐 가면서 열심히 가르치고 기도도 하였다.


맹의순은 원래 영어를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미군들과 함께 특별한 막사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 특별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으나 그는 살이 썩어가는 환자 막사나 병동에서 그들과 함께 지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를 배반하고 스파이로 오해하여 상대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가면적으로, 일부러 그네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빨갱이를 색출해 내기 위하여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들은 그의 진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가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의 얼굴에서, 그리고 그의 행동에서 그들은 맹의순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찾아낸다. 


그다음부터 중공군이나 북한 군인들도 모두 그를 따르고 하나둘 예수를 영접하게 된다. 맹의순은 낮에 일과를 마치고, 때로는 금식을 하면서 새벽 2시까지 병동을 돌면서 환자 하나하나를 치료해 주고 기도해주며, 웃는 낯으로 그 들을 위로해 주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의 맹의순은 하늘에서 온 천사였고, 진실한 스승이었으며, 사랑의 간호사요, 선교사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미군 당국에서 천막이지만 교회까지 마련해 주었고 매 주일 예배도 드릴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몇 명 안 되던 교인이 일 년 만에 수백 명으로 늘어나고 그는 전도사로서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자유가 허용되지 않은 몸으로 틈이 생길 때마다 친구인 박재훈에게 쓴 그의 편지는 읽는 이로 하여금 때 로는 눈물을 쏟게 했고, 때로는 희망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념을 갖게 했다. 


맹의순은 실로 국경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였고, 사도 바울처럼 이방인, 그것도 공산 사상에 세뇌당한 중공군들에게까지도 복음을 전파한 위대한 선교사이기도 하다.

이제 지면 관계로 맹의순에 대한 소설 줄거리는 그만 쓰기로 하고, 그가 자유의 몸으로 석방되기 전날 밤에 과로로 쓰러져서 영원히 하늘나라로 간 사실을 중공군 포로들이 알고 그의 장례식에 보낸 편지를 소개하겠다.


맹의순 선생 영전에 드립니다.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처럼 포로의 옷을 입은 그가 미국 군인 의사들을 도우며 우리의 병동을 찾아오던 초기에 우리는 그를 경멸했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늘 온화했고 우리를 돕는 그의 행동은 희생정신으로 언제나 꾸밈이 없었습니다. (중략)


그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동료 중에 글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글을 가르쳐 가면서까지 선생은 찬미가를 불러 주셨습니다. 나무 십자가를 안고 다니며 그 뜻을 성심껏 전해 주셨습니다. 선생은 새벽 한두 시면 늘 병동으로 오셨습니다. 


초저녁에 치료와 간호를 맡았던 사람들도 모두 물러가고 나서 중환자들이 더욱 심하고 무거운 고통에 짓눌리는 그 시간에 선생은 고통을 다스리는 천사로 우리들 앞에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은 하늘이 보낸 천사였습니다. 깊은 밤 신음소리가 낙수처럼 쏟아질 때 선생은 인자의 큰 그릇이 되어 우리들의 온갖 고통과 신음을 모두 받아 담고 그 고통과 신음을 덜어냄으로써 하나하나 편안히 잠재워주는 천사로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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