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새벽 1시
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을 하셔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할 수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였다. 농사를 짓는 집안이라 낮에는 농사일손을 돕고 밤에는 대입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밤이 점점 깊어감에 따라 사방은 조용하고 앞 논의 개구리 울음소리만 구슬프게 들렸다. 삼라만상 모든 것이 잠들고 있는데 나는 입시 공부에 열중하고 개구리 중 수놈이 암놈을 찾아 열심히 밤새 울고 있다. 시간은 밤 12시가 넘어 1시를 지나고 있다. 공부에 열중하여도 개구리 울음소리가 방해가 된다.
개굴! 개굴! 고요한 들녘을 개구리울음소리가 적막을 깨고 있다.
가을이 되면 멀리에서 들리던 개구리 울음소리는 사라지고 가까이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시끄럽게 크게 들린다. 물론 공부에 방해가 된다. 식구들 모두 잠든 고요한 밤에 귀뚤! 귀뚤! 울어대는 소리는 자장가로 들릴지 몰라도 나에게는 시끄럽게 들린다. 가을의 전령사인 귀뚜라미는 정확히 가을과 함께 온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사라진다. 곧 겨울이 오면 입시공부도 피크에 달해 개구리 울음소리도,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짜 적막이 찾아온다.
긴긴 겨울밤 공부에 여념이 없다. 새벽 1시가 되었을까. 갑자기 주위가 고요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보니 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다.
눈의 입자가 소리를 흡수하여 고요한 것이다. 너무 적막하니 오히려 공부가 안되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미돼지를 사육하여 새끼를 내서 시장에 팔았다. 우리 집 돼지가 새끼를 낳는 날이다. 할아버지는 분만(分娩) 현장에서 새끼를 받아 나를 주면 나는 수건으로 싸서 조심스럽게 사랑방 아랫목으로 옮기곤 하였다. 그냥 두면 어미돼지는 산고(産苦)의 고통으로 정신이 없어 배 밑으로 젖을 찾아 파고 들어가는 제 새끼를 깔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는 추웠다.
새끼를 한 마리 낳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분가량, 10마리 새끼를 낳는데 2시간 반도 더 걸렸다. 태(胎)를 낳으면 새끼 낳는 일이 끝남으로 할아버지께서 방에 있는 어린 새끼를 가지고 오라 해서 한 마리를 어미 품에 넣어주었다. 그런데 처음 한 마리를 넣자마자 냄새를 맡아 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사정없이 제 새끼를 물어 죽였다.
느닷없이 당하는 일이라 당황하고 놀랐다. 나는 어미돼지가 제 새끼를 물어 죽이는 현장을 보고 겁이 나 덜덜 떨리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하다가는 10마리 모두 물어 죽이는 게 아닌가 겁이 났다. 당황하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는 침착하게 "얘야! 너 새끼를 받아 가지고 어떻게 하였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붓으로 먹물을 찍어 귀에 일련번호를 썼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할아버지는 "먹물에 향료가 들어 있어 어미돼지가 그 냄새를 맡고 제 새끼가 아니라고 물어 죽인 것이다"라고 하셨다. "빨리 어미 돼지 오줌을 새끼 몸에 발라라. 특히 귀 근처는 더 많이 발라라"라고 하셨다. 돼지는 시각(視覺)보다 후각(嗅覺)이 발달하여 제 새끼를 눈으로 보고 구별하는 게 아니라 제 체취(體臭)와 같은 냄새로 새끼를 알아본다는 사실을 할아버지는 말씀해 주셨다. 많은 경험(經驗)과 시행착오(試行錯誤)에서 터득한 노하우였다.
나는 농업고등학교 축산과를 졸업하였지만 그런 것을 통 몰랐다.
나는 얼른 할아버지의 지시대로 하고 어미 품에 새끼를 넣어주었다. 어미 돼지는 한동안 새끼 냄새를 맡아보더니 순해져서 젖을 잘 먹였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른 새끼를 모두 넣어주었다.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어미젖을 빨고 어미는 젖을 먹였다. 그때 괘종시계가 새벽 1시를 땡!하고 쳤다.
새끼 9마리가 어미젖을 빠는 소리만 들릴 뿐 사방은 고요하였다.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식구들 모두 꿈나라로 갔는데 나만 혼자 9마리 새끼의 안전을 염려하여 돼지집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낮보다 밤에 글 쓰는 걸 좋아한다. 낮은 소란스럽고 주위가 산만하기 때문이다. 전화 벨소리, 전화 통화소리, 문 여닫는 소리, 주방에서 나는 물소리, 옆집에서 나는 소음, 문밖에서 들리는 차 지나가는 소리, 손님이 방문하여 수다 떠는 소리 등 실로 부산하다.
밤은 소리가 없이 고요하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또 글 쓰다 말고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글을 쓸 분위기가 좋아 오직 글 쓰는 일 한 가지만 집중할 수 있다.
밤 12시가 지나 새벽 1시가 되면 사방은 점점 조용해진다.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 들린다. 나의 눈은 컴퓨터 화면에서 떠나지 않는다. 낮에 수면을 보충했기에 졸리지도 않다. 낮잠은 많이 자면 오히려 정신이 맑지 못하다.
그러나 20~30분 정도 자는 것은 밤에 글 쓰는데 쾌적(快適)하다. 낮잠을 자면서도 숙제를 머릿속으로 구상(構想)하며 글을 쓴다. 새벽 3시나 4시경에 글을 쓴다면 어떨까? 1시경은 정신이 또랑또랑하다. 피로도 별로 없다. 그런데 1시가 훨씬 지난 새벽 3~4시는 졸음이 온다. 정신 집중이 안 되고 산만해지고 오히려 지루하다.
새벽 1시경이 밤의 청년기(靑年期)라면 새벽 3~4시경은 노년기(老年期)이다. 그래서 발랄한 청년기인 1시를 사랑하며 글을 쓴다. 글 쓰는 것뿐 아니다. 성경(聖經) 읽기도 그렇고 입시 공부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