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책 읽는 국민
‘그 나라의 힘은 국민이 독서를 얼마나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까? 요즘은 경제가 나라를 강대국으로 이끌어 나가는 관건이 된다고 믿고 있다. 국민이 잘살아야 나라가 평안하고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어서 국민소득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만 경제 대국이 되는지 정의하기가 어렵다.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빈부차가 심하면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한때 쿠웨이트는 국민 총소득이 세계 1, 2위였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장막에서 살면서 결혼도 못 한다. 그 나라는 결혼을 하려면 여자에게 돈을 줘야 하는데 줄 돈이 없어서 평생을 혼자 살다 가는 사람이 많다. 그런가 하면 돈 많은 부자나 귀족은 여자를 4~5명씩 데리고 산다.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재산이 없는 사람은 여자를 데려올 수 없지만 그 사람이 많은 책을 읽고 또 지금도 계속 책을 읽고 있다면 그는 정신적으로는 아주 부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금은보화보다 더 귀한 지식과 지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그는 세계 제일의 미인과도 교제할 수 있고, 세계 제일의 부자와도 만날 수 있다.
책 속에서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심오한 철학자와 조우하며,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도 만나고, 셰익스피어나 단테도 만날 수 있다.
부자는 재산관리를 하며 더 많은 돈을 버는 데만 시간과 정열을 소비하기 때문에 이런 유명한 사람들과 만날 시간이 없다. 부자와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나을까?
오래 사는 것도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일반적으로 더 오래 산다. 왜냐하면 부자는 운동할 시간이 별로 없고 여유를 즐길 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늘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다니며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은 후에도 운동하지 않는다. 배가 나오고 뚱뚱해질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 사람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책을 읽는다. 또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은 자연히 건강할 수밖에 없다.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책을 제일 적게 읽는 국민에 속한다. 얼마 전 한국일보 미디어리서치 조사 경과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국민이 읽은 책이 평균 6.6권에 불과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조사 결과이다. 우리나라는 독서량이 가장 많았던 해가 2002년으로 평균 독서량이 10권, 1999년이 9.3권, 1996년이 9.1권으로 나타났다. 서구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한 권씩 책을 읽는다. 이웃 나라 일본 사람들도 월평균 3권의 책을 읽는다.
미국인들도 인터넷만 보는 듯하지만, 월평균 2.7권의 책을 읽는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책도 많이 읽는다는 결론이다. 우리나라도 국민소득이 세계 10위(?)권에 육박하고 있는데 독서량은 세계 최하위에 속한다. 지난해 읽은 6.6권 중 소설 등 문학 종류가 68.8%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경제경영 서적으로 9.6%, 건강 등 실용 서적이 7.8%,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6.4%, 종교 서적이 6.1% 순위이다.
지난해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는 다빈치 코드, 삼국지, 연금술사, 선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토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가시고기 등 대부분이 소설과 경제경영 분야와 처세에 관한 책들이었다. 독서 기반이 인문 콘텐츠 계통에서 실용 정보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의 정신적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상력이나 지적 창의력의 근간이 인문학을 지탱하기 위한 범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백원근 출판연구원은 말한다. 인문과학 서적이든 소설이든 교양서적이든 많이 읽으면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많은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여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TV 방송에서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독서를 권장하였는데 요즘은 그 프로그램을 볼 수 없다.
오락 위주의 연속극만 골라서 현지 교포들에게 보여 주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지난해 우울한 뉴스 중의 하나가 교보문고의 매출액 감소였다. 창업 이래 처음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곧 국민의 독서량이 줄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서울에 출장을 가면 으레 한나절은 책방에서 보낸다. 책을 골라 사기도 하지만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을 대강 훑어보려면 4~5시간은 걸리기 때문이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면 나는 책을 사는 것이 취미이다. 내가 읽고 난 후에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그리고 독후감 발표회도 한다. 매주 한 번 모이는 모임에 우리는 돌아가며 독후감을 발표한다. 주로 종교 서적을 읽고 발표하지만, 일반 교양서적이나 소설을 읽고 발표하기도 한다.
독서 인구의 감소는 좋은 징조가 아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독서 비율이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 추세이다. 어느 나라든 5% 내지 10%의 엘리트가 그 나라를 이끌어간다. 우리나라도 엘리트들이 독서를 많이 해야만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경제 살리기를 말로만 해서는 성과가 없다. 독서를 통해 실질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알아야 하고, 앞에서 리더가 이끌면 대중이 모두 따르는 겸손이 미덕을 보일 때 국민경제는 살아나고, 국민의 화합 및 민도도 높아진다.
독서를 하지 않고는 격조 높은 삶을 유지할 수 없다. 미국의 일류대학 지망생은 고전을 적어도 10권 이상 읽어야만 입학지원서에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쓸 수 있다. 얕은 지식과 좁은 사고력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있으나 정답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양한 독서와 다량의 독서에서만 사고력이 창출되고 명답이 나올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적어도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같은 고전을 고교생들도 거의 다 읽는다. 책을 많이 읽는 학생에게는 도서관에서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주기도 한다.
현재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으면 경제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경제력의 근본적인 힘은 지식에서 나오고, 지식은 독서에서 얻어진다. 우리나라 대학입시 논술 문제를 보면 깊은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이 없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폭넓은 독서와 깊은 사고력이 요구되는 논술 문제는 요즘 학생들에게 독서의 경종을 울리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해마다 각 신문사에서 발표하는 신춘문예 당선 작품들과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읽는 사람이 과연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될까? TV만 시청하다가 잠들지 말고 책을 읽다가 잠드는 국민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