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Stay hungry, Stay foolish! (2)
<지난 호에 이어>
우리 프로그램에 오랜 시간 일해오면서 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어느 소수민족단체에서 저의 경험을 살려 자기의 단체를 위해 리더로 와달라는 부탁도 몇 번 받았습니다. 월급을 좀 더 많이 줄 테니 나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당신들의 프로그램에 와서 일해보자는 권유도 자주 받았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일을 오래 하고 있자니 점점 승진의 기회가 자주 왔습니다. 물론 승진의 기회에 아주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잘하는 일이 직접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이상 승진의 기회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리드 카운셀러로 일하면서 함께 일하는 39명의 카운셀러들하고 즐겁게 일하며 현장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직접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해 줄 수 있는 또 우리 사무실은 월급에 캡이 있어서 나보다 직책이 높아도 받는 급여는 거의 비슷합니다. 오래된 직원 월급이 자기의 연도에 맞게 월급을 받게 되니까요. 이게 한국의 회사와 다른 점이랄까요?
내가 하는 일이 왜 좋은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정신줄 빼놓고 약에 취해 비틀대는 사람들, 중독으로 인하여 또는,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길바닥에 나앉아 헤매고 있는 사람들,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더러움을 모르고 몇 년째 씻지 못해 걸치고 있던 옷들이 땀과 더러움으로 옷이 가죽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데에도 모르고 있는 이들, 어느날 사무실 입구에 들어서면 머리에 다 망가진 전등갓을 뒤집어쓰고서는 자기가 2억 년 전의 나라에 퀸이었다며 앉아있는 정신질환 환자, 우중충한 비 오는 날의 시애틀 날씨에 내 사무실 로비 한쪽 구석에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의 화장술처럼 얼굴 전체에 하얗게 치약을 바르고 태연히 앉아있는 이들, 어느 날은 그야말로 숨을 멎고서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의 온몸과 온 얼굴에 빽빽이 문신하고 들어오는 사람들, 때로는 정신은 건강한데 가족이 해체되면서 노숙자가 되어서 길거리를 방황하다가 우리 사무실 아웃리치 스페셜리스트에게 끌리어 우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어릴 때 불우한 환경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살다가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와 세상을 헤매다가 찾아온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들 중에는 한국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한국인 입양 청년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무실 제임스 카운셀러의 고객이었던 청년을 내가 더 잘 도울 수 있다고 다른 케이스와 교환하여 내게로 접수하게 한 입양 한국 청년이었습니다.
입양 부모의 학대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중학교에 다니다 집을 나와 시애틀 길거리에서 노숙하던 중 우리 사무실 아웃리치 그룹의 눈에 띄어 우리 사무실에 오게 된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이 우리 사무실의 제임스를 만나고 있는 사실에 카운셀러 제임스를 설득하여 내게로 옮겨서 나와 함께 4년의 재활시간을 가진 불행했었지만 새로운 도전으로 살려고 했던 입양 청년이었습니다.
먼저 청년이 머물 청소년프로그램에 넣으려니 프로그램에 등록된 그곳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 쉽게 마약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서 이 청년을 제가 잘 아는 미국 친구를 설득하고 그 집에 머무르게 주선해주고 고등학교를 못 마친 이 청년에게 센트럴컬리지 GED 프로그램에 등록시켜서 1년 만에 졸업을 시키고 카펜터 일에 관심이 많은 이 청년을 토목기술학교에 입학하도록 도움을 주고 2년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함께 격려해주고 가끔 한국식당에 데리고 가 밥도 사주며 이 청년이 졸업한 후에는 미국 건설회사에 취직이 되어 열심히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후인 지금도 이 청년은 자주 연락을 합니다. 나를 보면 저만치서 불러옵니다. “헤이 빅시스터”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잠시 방황을 하면서 도박을 하던 아프리카-유대계였던 0는 보기 드문 파일럿 출신이었습니다. 도박과 알코올로 인하여 가정이 파괴되고 나니 부인도, 자식도 떠나가 버리고 남은 것이 아무것이 없이 길거리에다 노숙하다 우리 프로그램에 오게 된 노숙자였었는데 내가 시카고에서 학교를 다닌 것이 인연이 되어 시카고가 고향인 자기하고 동질감을 느껴 내가 자신의 담당이 되었으면 하고 신청을 해와 내가 담당 카운셀러가 되어 나하고 3년을 함께 만나며 재활에 성공한 사례입니다.
0는 아프리카-유대계로 비행학교를 나와 결혼을 하고 잘 살던 중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상처를 받고는 도박과 알코올중독이 되어서 방황하던 케이스였습니다. 나와 함께 3년을 보내면서 일 년간 스포켄의 모든 것과 격리된 채 재활교육을 받게 된 것은 물론 담당 카운셀러인 나하고는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도박중독과 알코올에서 승리한 케이스로 중독치료를 마치고 얼마만의 테스트 기간을 마친 후 다시 에버렛 보잉회사에 취직이 되어 잘살아가고 있는 가끔은 내 사무실로 와서는 차 한 잔 마시고 가는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실패하고 넘어졌지만, 곧 다시 일어나 새로운 찬스로 여기며 삶에 승리하는 사람, 너무 멋지지 않나요?
우리 누구에게든 피해 갈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심장의 피가 멈추는 그 날까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길목에서 잠시 실패로 머뭇거릴지라도 곧 다시 일어나 새로운 꿈을 꾸며 삶의 길을 이끌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행복한 일이 남의 손을 잡고서 함께 걸어가는 길임을 알기에 오늘도 내 손을 길게 뻗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