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겨울비
겨울에는 눈이 와야 제격인데 요즘 이곳 날씨는 겨울에도 비가 온다. 겨울에 비가 오면 우선 기분이 우울하고 주위가 우중충하다. 겨울비는 청승맞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찌뿌드드하게 만든다. 그래서 겨울에 비가 오면 모두들 집안에서 TV를 시청하거나 영화를 본다.
나는 40대부터 매일을 일과 대로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하는 일이 같고 바쁘다. 어떤 사람은 그런 나를 답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을 일과 대로 살면 우선 시간이 잘 가고 행동에 주저함이 없어진다.
무엇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를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삶이 편안하고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성경에 보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미 우리의 필요를 모두 아시고 제때에 공급해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명령대로(말씀대로)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인간은 옛날부터 하늘에까지 오르고자 바벨탑을 쌓고 별 난리를 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눈을 어둡게 하시고 더 이상 그런 짓을 못하게 하셨다. 인간이 감히 하나님과 맞먹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어찌 되었건 겨울엔 비보다는 눈이 오는 게 더 좋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눈이 하루 종일 쏟아지면 천지가 모두 하얗게 눈으로 덮여서 거리의 원근을 구분하기가 어렵고 눈에 홀려서 앞을 분간할 수가 없다. 오래전에 레이크 타호(Lake Tahoe)에서 큰 식당을 운영할 때 식품을 주로 샌프란시스코나 리노(Reno)에서 구입했다. 한 번은 가까운 리노로 시급한 식품을 사러 떠났다.
집에서 떠날 때는 눈이 조금씩 내려서 빨리 다녀오면 되겠다고 생각하여 길을 떠났다. 그런데 눈발이 점점 커지더니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졌다. 리노를 가려면 아직 절반도 못 왔는데 차가 더 이상 구르지를 못할 정도로 눈이 쌓였다. 길이 전혀 구별되지 않아서 조금씩 가는데 그만 옆 고랑으로 차가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전화를 거는 것밖에 없었다. 식당으로 전화를 하여 구조 요청을 하도록 했다. 얼마 후에 헬리콥터가 와서 밧줄을 내리고 나를 달아 올렸다. 차는 그냥 눈 속에 파묻힌 채 나만 헬리콥터에 구조되어 무사히 식당으로 돌아왔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등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그다음부터는 아예 눈이 오는 날이나 일기 예보에 눈이 온다고 하면 식당 문을 닫았다. 간단한 메모지를 식당 문에 붙여놓고 식당 안에서 지냈다. 다행히 식당이 크고 조그마한 방이 있어서 지내기에 아무 불편이 없었다. 식당이니까 먹을 것은 많이 있었고 음식을 우리가 만들어서 먹으며 지냈다.
이곳은 가끔 그렇게 눈이 이삼일 동안 쏟아져서 길도 막히고 주민들이 집안에서 꼼짝도 못 하고 지냈다. 날이 개고 눈이 녹고 거리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려진 자동차도 무사히 가져왔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곳을 뜰 생각을 했다. 아무리 살기 좋고 경치가 좋아도 눈 때문에 살 곳이 못 된다고 판단했다.
식당을 청산하고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여 미국인이 경영하는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무역사 자격증이 있어서 쉽게 취직을 했다. 겨울에도 눈이 많이 오는 것보다는 비가 오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우리 식당에 단골로 오는 손님 중에 하라스(Harus)는 카지노가 있었는데 그 카지노 사장이 우리 식당 단골이었다.
중국 음식을 무척 좋아하는 그는 우리 식당 고객이었다. 나와는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이에서 나는 자주 그의 카지노에 가서 20불어치 1불짜리 동전 20개를 가지고 가서 슬롯머신을 했다. 번번이 다 잃고 왔지만 더 이상은 돈을 쓰지 않았다. 한 번은 하라스 사장이 우리 식당에 와서 점심을 먹으면서 1불짜리 슬롯머신을 10불어치만 사서 해보라고 했다.
그대로 했는데 일곱 번째 동전이 들어가자 잭팟이 터졌다. 1불짜리 동전이 사뭇 수도 없이 쏟아지고 벨이 울리고 불이 켜지자 시큐리티 가드 두 사람이 와서 나를 보호하며 근처에 구경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했다. 나중에 세어보니 $12,000.00불이나 되었다.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눈도 정도껏 와야지 분간을 못 하게 많이 쌓이면 천지가 모두 눈 세상이 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만 모인다. 그것도 못 할 노릇이다. 그래서 겨울에도 어느 정도 눈이 오고 그쳐야 한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거동할 수 있고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다. 지금 시애틀 지역에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겨울비는 좀 을씨년스럽기는 하지만 눈으로 겹겹이 덮여서 세상을 분간할 수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겨울에 비가 오는 것이 낫다. 그렇지만 하늘이 하는 일을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가 없다. 어쨌든 겨울에 비가 오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날씨가 좀 춥더라도 눈이 오는 게 더 좋다.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지만…….
이번 주말부터는 날씨가 추워져서 눈이 많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날씨도 추워진다고 한다. 우리는 은퇴하여 집에서 지내니까 상관없지만 일을 하는 사람들은 눈이 쌓이면 출퇴근이 어렵고 차량 사고도 많이 난다. 운전하기가 아주 어렵고 자신이 아무리 주의를 하고 잘해도 옆 차가 와서 받으면 별수 없이 당한다.
그래서 눈이 많이 오면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컴퓨터 시스템이 되어 있다. 일기가 좋아도 요즘엔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컴퓨터가 있어서 사무실에 가지 않아도 일을 해낼 수 있다. 참으로 좋고 편한 세상이 되었다. 어쨌든 겨울에 비가 오면 별로 좋지 않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는데 비가 오면 겨울답지가 않다.
우리는 은퇴하여 집에서 지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지만, 사무실에 출근하여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나 눈이 많이 오면 문제가 있다. 이제 머지않아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일기에 별로 지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다. 겨울에는 그래서 비가 오는 것보다는 눈이 와야 한다. 겨울에 비가 오면 처량한 생각마저 든다.
지금도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고 우중충한 날씨라서 아무도 안 보인다. 나처럼 방안에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TV를 시청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낮잠을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음도 가라앉고 몸도 무겁다. 집안에서라도 가볍게 움직이고 운동하는 것이 좋다.
그냥 앉아 있거나 낮잠을 자면 밤잠을 설친다. 그래서 겨울에 비가 오면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가족끼리 간단한 게임도 하고 윷놀이를 하는 것도 좋다. 하여간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료하게 먼 산을 바라보거나 좋지 않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몸에 해롭고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
우리는 끝 없이 도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건강에 좋다. 겨울비가 내리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그동안 밀렸던 책을 읽고 성경을 읽고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도 좋다. 이제 2024년 새해를 맞았으니 인사를 나눌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친척과 친구들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그동안 살아온 삶을 서로 이야기로 나누는 것도 좋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화상 통화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니 보여주기가 민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담은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분복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얼굴에 늘 미소가 담겨있다. 우리 모두 한세상을 살다가 떠나야 하는 인생이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 마음 편하게 먹고 이웃과 친구들과 좋게 지내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그런 우리에게 복을 더해 주신다. 금년 한 해는 그렇게 넉넉한 마음 가지고 여유 있는 한 해를 보내기로 하자. 오늘, 이 순간은 절대로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요긴하고 복되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