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를 패망하게 하겠느냐”(전 7:15-16)?
솔로몬은 하나님의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백성을 올바로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서 놀라운 지혜와 온갖 복을 다 받아서 세상의 모든 향락을 취한 부족함이 없는 생을 살았던 왕이었건만 그가 행복했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쓴 전도서 첫머리에서부터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고 탄식하였고 이 글에서도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이라고 하였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어도 인생은 그렇게 허무한 것이다.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악행하는 악인이 장수하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독재자로 군림한 히틀러나 스탈린,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같은 독재자들이 세상 사는 동안에 사치하고 잘 먹고 잘사는 모습을 본다.
김일성은 6.25 전쟁을 남한이 일으켰다고 거짓말을 하고 전쟁으로, 기아로 수많은 백성을 죽였고 자신들은 온갖 호사를 부리고 좋은 것을 먹어서 백성들은 다 비쩍 말랐는데 삼 대가 다 보기 싫게 뚱뚱한 비만병에 걸렸다. 그런 악인들은 세상의 악인들의 표본으로 주님이 보여주시고 그렇게 살면 지옥에 간다고 하신다.
그런데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고 한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성경 말씀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고기잡이 이적을 보고 “주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였다. 어떻게 그런 놀라운 고백을 할 수가 있었을까? 그래서 그는 주님의 수제자가 되었고 13권의 신약을 저술한 위대한 사도 바울은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하였다.
주님을 만나면, 말씀을 깊이 체험할수록 내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씀으로 내 죄를 씻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고 주님은 한없으신 사랑으로 연약한 나를 보시고 용서하시고 품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죄를 짓는 순간마다 나는 쉬지 않고 기도해야만 평안을 얻고 살 수가 있다. “악인은 평강이 없다.”라고 하셨고 나는 항상 내 속의 평강을 위해 주님의 보혈로 씻는다.
사람들이 자기가 남에게 선을 많이 베풀고 주기를 좋아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별로 감동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나에게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주님 앞에 설 때에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라고 하지는 않으실까? 일생을 사모로 목회를 하고 선교사를 돕고 오지로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두렵고 떨린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고 지혜자도 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1. 외식하는 자, 교만한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신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면 바리새인은 십일조를 드리고 일주일에 이틀은 금식하고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교만한 기도를 드렸는데 외식한다고 예수님께서 가장 미워하셨고 가슴을 치고 애통해하는 세리들의 기도는 주님께서 칭찬하셨다. 행여 나는 의로운 자라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신다.
2. 자기의 의에 가려서 하나님의 의를 깨닫지 못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신 욥은 “나는 잘못이 하나도 없다.”라고 친구들에게 항변하였고 하나님의 의를 깨닫지 못했다.
3. 내가 나를 못 보고 남의 죄와 허물은 잘 보는 눈을 가졌다. 내 눈은 나를 못 보고 남만 보고 내가 말씀의 거울에 비쳐질 때에야 나를 본다.
4. “나는 택함 받았다. 선민이다.”라고 하는 자만은 금물이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2)라고 하셨다.
엘리후가 욥에게 “그대의 의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느냐?”(욥 35:2)라고 무섭게 책망하였다. 욥이 하나님을 만나고 음성을 들은 후에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 내가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3,5,6). 욥은 주님을 만나 회개하고 말년에 처음보다 갑절의 복을 주셨고 장수하였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어서 이렇게 무서운 벌을 받는다고 회개하라고 정죄하였고 욥은 자신은 깨끗하다고 항변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들의 말이 옳지 않다고 책망하셨다. 욥은 그렇게 깨끗하게 살아서 항변할 수가 있었으나 우리 사람들은 그렇게 욥처럼 깨끗하게 사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싶다.
나는 내가 괴롭고 두렵고 불안할 때에 그 끝에는 믿음 부족과 시기와 죄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깊은 밤 중에라도 일어나 한참 회개하고 평강을 얻는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리고 항상 기뻐하면서 살라. 이것이 주님의 뜻인 것을 생각하면서 사는데 이곳의 주치의나 의사인 며느리가, 한국에 계신 치과의사님께서 “건강하시네요.
좋으신데요.”하고 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나는 너무 두려움과 죄가 많고 연약해서 눈물과 주님의 보혈로 씻어야만 살 수가 있는데 언제나 주님께서 눈동자같이 지켜 보호해주시는 것을 체험하고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