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고슴도치
언젠가 어느 일간신문에 한 여류 시인이 쓴 글이 실려 있었다. 내용은 고슴도치의 생리에 대한 것이었는데 참으로 감명 깊게 읽었다. 평소 내가 생각하던 내용의 글이어서 몇 번을 거듭 읽은 적이 있다.
인간관계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날까지 계속된다. 즉 작은 범위로는 부부지간, 형제지간, 부모자식지간이 있고, 좀 넓게는 친구지간, 직장에서의 동료지간이 있다. 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싫든 좋든 간에 우리는 매일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함께 일하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고슴도치의 온몸은 바늘 같은 털로 싸여 있다. 물론 그것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구실로 부여받은 선천적인 소산이다. 그러나 너무 서로 가까이 접촉하다 보면 서로를 찔러 피를 흘리게 되고, 심하면 그 털에 찔려 죽기까지 한다. 그들이 무슨 방법으로 번식하고 생활하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고슴도치는 종자가 점점 없어져 가는 동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너무 가까이 접촉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떨어지면 추위를 이겨낼 수 없다. 말하자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접촉해야만 찔리지 않고 춥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성급하게, 혹은 너무 좋아서 접촉하다 보면 혼자만 상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모두 피해를 입는다.
미국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적극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애인 사이나 부부지간에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끈하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영원히 그런 화끈한 관계를 유지하는가, 사랑이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며, 서로 양보하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유지할 때 실수도 없고 오래갈 수 있다.
알맞은 간격 유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권력이나 금전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황금만능시대라고 하여 금전에 너무 눈을 가까이하다 보면 자신을 상하게 함은 물론 온 가족이 몰락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권력이 좋다고 하여 무조건 아부하고 따르다 보면 신세를 망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서부개척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금광을 찾아 가족을 등지고 먼 길을 떠나 고생 끝에 금광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많은 금을 캐낸 다음에 그것을 놓고 싸움을 하다가 다 죽고 한 사람이 남는데, 그 사람마저 맹수에 물려 죽는 것으로 끝나는 서부영화를 본 적이 있다. 또한, 바닷속에 가라앉은 보물선을 찾아내서 많은 보물을 가지고 올라오는 도중에 상어에게 물려 죽는 것으로 끝나고 마는 서글픈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골고루 특징을 부여하셨다. 즉 먹고 살 수 있도록 어떤 사람에게는 기술을 주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총명한 머리를 주어서 학문을 하게 하고, 어느 사람에게는 예능의 재질도 부여했다. 이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불로소득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도둑의 심보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남들은 열심히 일하여 그 대가로 먹고사는데 왜 힘을 안 들이고 많은 돈을 바라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요행을 바라고 연구하다 보면 자연히 나쁜 길을 택하게 되고 급기야는 남을 속이고, 혹은 죽이면서까지 돈을 긁어낸다.
이야기가 좀 다른 데로 흘렀지만 좌우간 우리는 못나고 흉한 고슴도치만도 못해서는 안 되겠다. 고슴도치의 몸을 둘러싼 가시털은 모든 진리의 본보기가 된다. 이처럼 우리도 천부의 소질을 각자 잘 운용하면서 순리대로 살다 보면 적어도 고슴도치보다는 훨씬 낫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고슴도치보다는 나은 조건으로 태어났으니 너무 금전에 현혹되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우리가 할 일이다. 허기질 때 음식을 먹고, 잠이 오면 자는 본능적인 일은 동물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때로 배가 고파도 참고, 졸려도 잠을 자지 않으면서 진리 탐구를 위해, 혹은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를 위해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할 때 동물과 구별되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밤에 밤잠도 안 자면서 잘 익은 참외를 골라 자신의 몸을 거의 희생적으로 던져서 먹이를 지고 가는 고슴도치를 상상해 보자. 그 무서운 가시털로 서로를 상하지 않고 자신을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그 보기 흉한 동물로부터 우리는 배울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