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문학칼럼] (고) J집시님을 천국에 보내던 날  - 시애틀한인로컬문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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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문학칼럼] (고) J집시님을 천국에 보내던 날  - 시애틀한인로컬문학칼럼

이성수(수필가·서북미문협회원)


42명인 교회 노인회원 중 최고령자가 98세요, 최연소자가 74세이며, 평균 연령이 86세이다. 그리고 90세 이상이 여섯 명이다. 그중 J집사님이 지난 1월 27일 91세를 일기로 우리와 유명(幽明)을 달리하셨다.

집사님은 호흡기 지병으로 오랫동안 아파트와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다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였다. 3개월 전에 노인반 회원이 교회 밴으로 예배를 마치고 요양병원에 문병을 갔었다. 

한꺼번에 30여명이 몰려가니 비좁은 병실에서 환자와 손을 잡고 인사하기도 어려웠다. 집사님은 그 때만 해도 비교적 건강하였다. 두 손을 위로 들어 만세 부르는 자세로 할렐루야!를 연호하며 노익장을 과시 헸다. 콩나물시루처럼 우리는 좁게 서서 장로님의 인도로 찬송 한곡을 부르며 간단한 예배를 드렸다. 장로님은 “빨리 쾌차해서 교회도 나오고 노인반에도 출석하여 친교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환자이신 J집사는 큰 소리로 아멘하고 자신만만하게 곧 교회에 갈 거라고 하였다. 우리는 잠시 덕담을 나누다가 작별하고 병실을 떠나왔다. 나는 J집사의 손을 꼭 쥐고 “집사님! 곧 퇴원하여 집에 와서 교회에 나와야 해요?”라고 당부하였다.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

노인반 회원들은 통성기도를 하고 교회에 나오기만 고대하였지만 3개월이 자났어도 J집사는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끝내 소천하였다.

(고) J집사는 교회에서는 “아멘 집사”로, 상록회에서는 “아리롱 할머니”의 별명으로 유명하였다. 

주일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설교할 때 “아멘!” “아멘!”큰 소리로 화답하고, 상록회에 가서 빙고 게임에 당첨되어 노래를 부르게 되면 언제나 똑 같은 18번 “아리롱 아리롱 아라리요 아리롱 고개를 넘어간다.....”를 불러 사람들을 웃기고 즐겁게 하였다. 작은 체구에 손을 흔들며 춤도 곧잘 추고 보건 체조시간이면 맨 앞에 나가 숙달된 조교마냥 체조시범을 보이곤 하였다..

70년대에 이민 와서 우리 교회 개척에 지대한 공로를 세우셨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교회를 건축하는 교인들의 식사봉사를 억척스럽게 하였다.

그리고 봄이면 고사리를 꺾어 말려서 팔아 가지고 건축헌금에 보탰다. 또 자녀들을 데리고 알루미늄 깡통을 주어 한 푼 두 푼 헌금을 한 우리 교회 산 증인이다.

또 음식솜씨가 빼어나 교회 음식바자회에서 음식을 팔아 선교기금을 마련하는데 앞장을 섰다.

가랑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이른 아침에 교회 밴 2대가 교회에서 조문객을 태우고 어번에 있는 얀 엔 산(Yahn and Son)장의사에 도착하였다. 노인반을 위해 밴이 2대씩이나 동원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마지막 가는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조문객들로 장례식장을 가득 메웠다.

아홉 개도 더 되는 조화(弔花)화환은 식장가득 넘쳤다. 무거운 장내분위기는 가득한 꽃으로 한결 밝아졌다. (고) J집사는 화려한 꽃 속에 파묻혀 누워있었다.

장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하고 검은 옷을 입은 많은 조문객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각자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 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은혜로운 찬송과 함께 우리는 부활이오. 생명이신 주님을 사모하며 우리의 죽음은 하늘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이라는 집례목사님의 말씀이 계속되었다. 

“앞서 간 우리의 친구들!/ 광명한 그 집에 올라가/ 거룩한 주님의 보좌 앞 찬미로/ 영원히 즐기네”/

찬송가 소리도 교회 성가대장의 특송도 모두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밑으로 가라않는 것 같은 침체의 분위기였다. 

아드님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였다.

“어머님은 1930년 10월 5일 전라북도 진안에서 출생하여, 2020년 1월 27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 까지 ‘하나님의 딸’로 사셨습니다.”

그것뿐이었다. 양력이라면 언제 결혼하였고 미국에 언제 이민 왔고 언제 교회에 출석하였고, 언제 청소 잡(job)을 잡고. 언제 무슨 회사에 입사하였고, 언제 마트에서 채소를 선별하는 일을 했다는 그런 장황한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드님은 모두 다 생략하고 출생 날짜와 소천한 날짜만 말하였다. 

그렇다. 삶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 하나님의 딸로 산 게 중요하지 다른 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해충에 물리고, 독초에 쏘이며,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며 고사리를 하나하나 꺾어 교회건축헌금에 충당한 그 삶이 하나님의 딸 도리를 다한 것이다.

영상(映像)시간에 고인의 살아온 자취를 보여주었다. 2남 5녀의 자녀를 키웠고 슬하에 16명의 손자 손녀와 13명의 증손녀를 두셨으니 참으로 다복(多福)하시고 향년 91세까지 천수를 누렸으니 이만하면 호상(好喪)인 셈이다.

비쳐주는 영상가운데 우리 노인반 사진이 있어 반가웠다. 봄과 가을이면 근교 공원으로 소풍을 가 LA갈비를 구워 BBQ잔치를 하였고, 광광버스를 타고 솔덕온천에 가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던 일, 체리철과 늦가을이면 야키마와 페스코로 체리와 사과를 따러간 일, 모두 (고) J집사님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그리고 주일 날 대예배가 끝나고 노인회원들 한자리에 모여 친교 하던 일, 또 찬송 부르며 경건회를 갔고 생일을 맞으면 너도나도 시루떡을 오다해 놓고 생일송 부르고 목사님 오셔서 생일 축복기도를 받던 일이 추억이 되었다.

조문객들은 길게 줄서서 고인과 마지막 조례(弔禮)를 하였다. 하나님의 딸로 이 세상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시는 집사님 앞에 나는 부끄럼을 금할 수 없었다. 이렇게 수많은 조객들이 구름처럼 모여든 것은 그 분이 살아생전 하나님의 딸로 ‘베푸는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나는 27년간 노인반에서 집사님과 동고동락하며 신앙생활을 같이 해 왔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살지 못했기에 부끄러움뿐이었다.

하관예배를 위해 공항근처 바니왓슨(BanneyWatson) 장의사로 이동했다. 비는 바람과 함께 억수로 퍼붓고 달리는 차의 속력으로 물보라가 일어 그야말로 악천후(惡天候)의 날씨였다. 

뿌연 물보라 때문에 앞차가 보이지 않았다 하이웨이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앞차와 교통사고를 일으킬 것만 같았다. 30분이 3시간 달리는 것 같았다. 고 J집사도 폭풍우와 같은 어려운 시련을 이겨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국인의 동산에 마련한 장지에서 하관예배가 비바람 속에서 거행되었다.

높은 지대라 바람은 세차게 불고 비는 주룩주룩 퍼부었다. 노인반 회원들은 비속에 가지 않고 차안에서 하관하는 장례식 모습을 바라보았다.

장지와 차와의 거리는 50m도 채 안 되었다.

“우리의 일생이 끝나면 영원히 즐거운 곳에서/ 거룩한 아버지 모시고 기쁘고 즐겁게 살겠네.” 

찬송가의 장송곡 소리는 비바람을 타고 우리 곁에 맴돌다가 서서히 허공(虛空)의 빗속으로 사라져 갔다. 91세로 세상을 떠나가지만 그래도 슬퍼서 비가 오는 것일까? 유족들이 오열하며 흙을 퍼 관속에 넣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모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어 저처럼 땅속에 묻힌다는 것을 생각하니 허무하였다. 내가 묻힐 땅도 요 근처에 있기 때문일까? 

하나님이 사람을 태초에 흙을 빚어 만들었기 때문에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실감났다. 이어 조문객들은 꽃송이를 하나씩 관속에 넣으며 마지막 명복을 빌었다. 관은 3/4평의 땅속으로 서서히 내려갔다.

나는 “(고) J집사님이어! 평화만 있고, 고통도 시련도 없는 저 천국에서 즐겁게 사십시오”라고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땅속에 묻히고 있는 관하고 나와의 사이엔 장대비가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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