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러시아 바실리 성당/크렘린궁/짜리찌노 교회(11/2/2011년)
모스크바의 상징이기도 한 바실리 성당과 크렘린궁에 가서 주차장이 없어서 목사님이 차를 건너편에 갖다가 대고 기다리시고 우리는 사진을 찍다. 더 들어가면 레닌의 묘가 있다고 하고 걸어 다니며 구경할 곳도 많지만 나도 다리가 불편하고 남편이 목사님이 기다리신다고 해서 서둘러 가까운 곳만 사진을 찍고 오다. 차를 타고서 돌며 크렘린궁과 러시아 정 교회들의 건축물이 웅장하고 조각들이 아름답고 걸어 다니며 구경을 할 곳이 많지만, 남편이 싫어해서 차 안에서 건물들 사진만 찍다.
모스크바의 젖줄인 강가의 건축물들이 아름답고 거리가 웅장하고 위용이 있는데 러시아는 중국과 아시아를 멸시하고 프랑스와 유럽풍을 존경하고 건축물도 그렇게 지었다고 하다. 뉴욕을 본떠서 최근에 크고 높은 건물들도 지은 것이 보인다.
한국 가게가 있는 곳에 가서 김 목사님이 선교헌금을 보내는 L 집사님과 냉방 기계를 사준 H 권사님께 당뇨에 좋은 차가버섯을 선물로 사주셨는데 한국에서 오신 김 권사님이 사서 가기를 원해서 오게 된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한국 자동차와 냉장고 등 삼성이 유명하고 한국식당도 시설도 좋고 맛도 있고 한국 물건들은 고급품에 속하고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국력인 것 같다.
오늘 모스크바에서 남동쪽 끝에 있는 “짜리찌노 하나님 교회"(오순절교회)에 김 목사님이 신유 집회로 초청받아 가시는데 남편에게 “베데스다” 설교를 하라고 하시고 목사님은 간증과 신유집회로 기도해주시겠다고 하고 저녁으로 러시아 간이식당에 가서 러시아식 빵과 러시아 국으로 식사했는데 서민들의 식사를 체험한 것이다.
이미 어두워진 후에 그곳의 아름다운 궁전공원에 들어갔는데 위에는 옛날에 왕이 살았던 화려한 조명의 궁전이 있고 호수가 있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식사를 나중에 하고 먼저 이곳에 들러 사진을 찍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이 너무나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사진을 찍고 서둘러 나와 교회로 향했는데 그 교회는 바로 공원 옆이었다. 건물이 아름답고 컸지만, 성전은 좁았는데 옛날 부자가 살던 집이라 아직 벽을 트지 않았기 때문인가 보다.
그 교회 목사님은 다른 곳 집회에 가셨고 여자 전도사님만 있는데 찬양을 오래 하는데 우리는 알아듣지도 못한다고 김 목사님이 사무실을 찾으니 방마다 모두 차고 넘쳐서 우리가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찬양대 옷 넣는 곳에 앉아서 찬양이 끝나면 부르러 오라고 하다.
러시아 교회는 강사님 음식 대접도 사례비도 없고, 오라고 초청만 하고, 한국 선교사님들이 모두 선교비를 갖다주기만 해서 받기만 하고 줄 줄을 모르고, 이 교회는 마약 병원 등을 운영만 하지 담임 목사님 사례비도 드릴 줄 몰라서 목사님들이 다 다른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성도들에게 담임목사님도 사례비를 드리고, 하나님께 십일조도 드리는 것을 가르쳐야 복을 받고 자립할 수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기다리다가 연락이 와서 들어가서 남편이 설교를 하고 김 목사님이 병 나은 간증과 신유 집회를 하시다.
신유 집회는 한 사람씩 기도를 해주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남편에게도 사람들이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해서 기도해드리다. 7시에 시작해서 밤 11시 넘어 모든 예배가 끝나고 집에 들어오니 12시가 넘었다. 김 목사님은 사랑이 많으셔서 일일이 어디 아프냐고 물으시고 발 길이를 재고 기도를 해주시다. 그렇게 애쓰고 하나님 일을 하셔서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사명감에 불타고 좋으시다.
먼 곳에서 초청을 많이 받고 있지만, 비행기로 가야 하니 교통비가 문제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 교회에서 헌금을 걷어 목사님께 사례를 하니 이런 일은 아주 드문 일로 지난번에 오셨을 때는 사례비가 없었다고 한다. 늦은 밤에 집에 오셔서 사모님이 누룽지를 끓여 목사님과 권사님은 드시고 우리는 사양하다. 류다 교수가 우리를 주려고 초콜릿과 사탕과 과자를 신선한 것으로 사 오려고 공장까지 가서 사서 교회로 왔는데 우리를 못 만나고 사모님께 드리고 가다.
예전에 류다 교수가 온다는 소식도 없이 갑자기 미국 우리 집에 방문했었다. 교회 미국 장로님과 같이 모스크바에 선교하러 갔었을 때 류다 교수가 통역으로 우리 세 사람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기차를 타고 기차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 하루 여행을 다녀왔는데 김 목사님은 바쁘셔서 못 가시고 류다 교수가 러시아어를 영어로 통역하러 우리 일행과 같이 다녔다. 류다 씨가 영어 교수로 미국에도 혼자 오시고 버스를 타고 타코마까지 오셔서 우리에게 전화해서 깜짝 놀랐다.
미국 장로님도 잘 알아서 미국 장로님과 아내 권사님이 선물도 풍성하게 사주시고 성도님들이 청바지 등도 사드리고 가방이 터질 것 같이 짐을 싸서 뉴욕으로 가실 수가 있었고 나는 금반지를 선물로 드리니 너무 좋아하였다. 그때 환대를 받았다고 감사해서 이렇게 정성을 베푸는데 차도 없고 집이 멀어서 같이 다니지도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한다. 이럭저럭 또 짐이 많아졌다. 우리는 미국의 성도님들의 짐을 이곳으로 나르고 또 이곳에서 이것저것 주시면 또 나르는 짐꾼으로 선교여행에서는 항상 많은 짐 때문에 힘들다.
내일은 공항에 일찍 가야 하고 길이 막히지 않아야 하는데 기도해야 하겠다. 권사님은 밤 9시 비행기라고 하니 목사님이 두 번이나 공항에 나가셔야 하는데 교통체증이 너무 심해서 그것이 문제이다. 수술한 발을 지켜주시고 은혜로 선교여행을 마치게 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짐을 싸야 하는데 늦게 자지만 주님이 깨워주실 줄 믿으며 잠자리에 든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나는 일지를 쓰고 사진을 찍어서 선교여행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교회 성도님들께 선교 보고를 하면 성도님들이 참 좋아한다. 이번에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는데 남편이 동행하자고 해서 이렇게 오게 되었고 우수리스크와 모스크바 두 곳의 선교지를 잘 돌아볼 수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언제 멀고 힘든 이 모스크바에 또 올 것인가!
12년 전의 일지를 읽으니 그때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6·25 때 우리나라를 쳐들어왔던 무시무시한 러시아 장군도 신학교에서 공부하시고 겸손하고 온유한 목사님이 되셨다. 과거 원수였던 중국과 일본에도 복음을 전하시는 한국 선교사님들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만이 복음으로 전 세계를 평화로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