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칼럼 (27) 십자가 위의 일곱 마디, 그 세 번째 말씀 –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2)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체험하게 되는 십자가는 결국 나의 죄, 나의 욕망, 나의 헛된 계획이 그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경험입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체험이 아니라, 시시각각 체험되는 경험들입니다. 그렇기에 바울도 이러한 고백을 한 것 아닐까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결국에는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죽어야지만 내 안에 “그가” 온전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그렇게 십자가는 늘 함께 하는 것이지요.
그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두 번째 메시지! 그것은 바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용서와 구원, 회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십자가 앞에는 단지 구경꾼이요 방관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곳에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고,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르며 섬겨왔던 신실한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 니라,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두려움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 가운데 요한이 다시금 예수님 곁에 돌아와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은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여러분, 이 아들, 어머니라는 단어는 한 마디로 가정을 나타내는, 가족 언어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자녀에게 가장 큰 울림이 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 어머니(아버지)라는 이름 아닐까요! 삶의 연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이름 속에 담긴 의미들은 더욱더 큰 사모함과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면 결코 잊을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이름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아들(딸)이라는 이름 아닐까요! 아, 그렇구나!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이 어머니, 아들이라는 단어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깐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그 용서와 구원은 사실 그 무엇보다 저와 여러분이 속한 우리 가정에서 살아내야 할, 체험해야 할 은혜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의 삶 속에서 이루어져 가는 구원의 역사는 마치 선물처럼 우리 가정에 속한 모든 영혼의 삶을 다시금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초대하고, 살려내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교회 역시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세워진 가족 공동체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마리아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인물 가운데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이 마리아가 아닐까 싶어요. 마리아는 처음부터 예수님과 연관되어 성경에 등장합니다. 특별히 개신교 전통에서 바라보는 마리아는 왠지 가깝지만 먼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태신앙인 저에게 마리아는 늘 성탄 시즌 연극에서 만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에 관한 성경공부나 설교를 평소에는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가운데 이번 사순절의 시간을 보내면서 만나게 된 마리아는 예수님의 가상칠언 덕분에 나름대로 그녀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 이후에도 그 마리아를 마음 깊이 품고 계신 것처럼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에 등장했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에도 등장합니다. 그렇게 보니깐 성경이 소개하는 마리아의 삶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지와도 같아 보입니다.
예수님의 출생 때에 첫 번째 표적인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 아래서 그녀는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은 이렇게 시작되지요. 요 2:3-4)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마치 어머니에게 퉁명스럽고 무심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의 부탁을 통하여 그 첫 표적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사역에서도 예수님은 마치 그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 땅에서의 모든 사역을 다 마치셨음을 알리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저에게는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는 이 말씀이 단지 걱정 하는 마리아를 위하여 제자 요한을 소개하는 장면이 아니라, 평생 예수라는 이름을 마음에 담고 살아온 한 여인의 사랑 앞에서 당신의 그 모든 수고와 눈물을 내가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이 모습이 바로 당신의 수고로 이 땅에 와서 하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며 떠나가는 당신이 사랑하는 자의 삶이요! 인생입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여러분 그도 그럴 것이 성경에 마리아가 처음 등장하는 예수님의 수태고지 사건 속에서 그녀는 어린 소녀에 불과합니다. 물론 학자마다 의견은 다르지만, 그녀는 불과 사춘기의 소녀일 뿐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녀의 나이를 13살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 어리고 앳된 한 소녀가 감당할 수 없는 천사의 메시지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이런 고백을 하지요.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그녀의 반응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녀는 이 땅의 구원자인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속으로 삶 가운데 담아내는 믿음의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신화의 이야기처럼 알에서 태어나신 분이 아닙니다.
그가 이 땅에 오시기 위해서는 한 여인의 몸을 의탁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장장 10개월 동안 사람들의 낯선 시선 속에서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가는 한 생명을 사랑으로 돌봐야 했습니다. 아기 예수가 자라가는 그 모습을 보며, 마리아 또한 보통의 엄마들처럼 모든 사랑의 수고를 아낌없이 다 쏟으며 그 아이로 인하여 울고 웃는 삶의 순간들을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성경이 그것을 말하지 않기에 가려져 있는 시간이지 마리아의 수고와 사랑의 섬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요! 바로 그런 마리아를 예수님은 결코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그 한 마디 속에서 영혼 깊은 곳까지 절망으로 가득한 한 여인의 슬픔을 닦아 주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렇듯 십자가는 우리의 삶 속에 슬프고 두렵지만 나아가야 할 자리가 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 자리에 서야지만 들을 수 있는 위로가 있는 것이요. 또한, 그 자리에 서야지만 깨달을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사명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이 다하는 그 마지막 순간에서도 그 구원의 역사 속에 깃든 이 여인의 수고와 섬김을 높여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듯 십자가는 나의 욕망이, 나의 계획이, 나의 죄가 못 박히는 아픔만을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그 십자가로 인하여 나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구원의 도구가 됨을 또한 체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오늘도 택함을 입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주어진 그 자기 십자가는 나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삶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축복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행여나 요즘 마음 가득 슬픔과 두려움에 짓눌린 분이 계신다면, 마리아처럼 그 십자가 그늘 아래서 흘러나오는 메시지 속에서 참된 위로를 얻으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