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남을 위한 삶(1)
인류역사를 훑어보면 나 자신을 위한 삶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살다 간 분들이 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우리들 주위에도 이런 분들이 더러 있다.
남을 위한 삶을 살려면 나 자신을 100% 버리고 희생해야 한다.
예수 같은 분은 자신을 완전히 버림으로 인류를 구원했다.
소위 인류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분들은 적어도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 한평생을 살다 갔다. 이런 위대한 분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남을 위해 살다 간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슈바이처 박사나 테레사 수녀도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살았다.
간디도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희생당한 의사와 열사들이 있고, 또 적과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수많은 병사들이 있다. 나는 오늘 평범한 인간으로서 남을 위해 살다 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요즘처럼 이기주의가 뿌리 깊게 내린 현실 사회를 고발하고자 한다.
남은 죽든 말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 꽉 차 있다. 도덕이고 체면이고 따지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해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남이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데...
이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잘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혼자는 못사는 것이 인간이고 세상살이 아닌가!
6.25때 북한에서 단신으로 남하한 장로님 한 분이 있었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이 분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살아 있다. 영락교회 장로님이었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도 이분을 존경했다. 고 장로님으로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데 이분은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집에 사셨다.
내 친구가 늘 할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에 나도 할아버지로 불렀다. 친할아버지가 아닌데 친구네 집에서 가장 어른으로 모셨다. 지금은 친구 아버님도 돌아가셨지만 꼭 아버님으로 호칭을 했다. 선물이 들어와도 할아버지 앞에 갖다 놓고, 밥상을 차려도 늘 상석에 모셨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친구네 집에서 용돈을 받으면 교회에 헌금하고 나머지 돈은 모두 아무도 모르게 가난한 집 아이들의 학비나 생활비로 쓰셨다. 친구네 집이 그 당시 부잣집이었으므로 꽤 많은 돈을 드렸을 텐데 따로 저금을 하거나 모아 둔 돈이 없었다.
한 달에 얼마를 드렸는지 모르지만 학비가 없거나 모자라는 아이들을 10명 정도 지원해 주셨다. 크리스마스 때는 10개의 선물을 준비해서 아이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이 하는 일을 알지 못했다.
한번은 나에게 조그마한 앨범을 하나 보여주셨는데 그 속에 아이들 사진이 있었고 나이, 이름, 학교 등이 적혀 있었다. 이 아이들을 고등학교까지만 뒷바라지를 한 것이 아니고 대학 졸업 후 직장까지 마련해 주셨다. 지금은 모두 50대의 장년들이 되었을 것이다.
고 장로님은 아마도 영락교회 여선교회에서 이웃돕기 하는 데서 명단을 입수하여 돕기 시작한 듯했다. 일단 돕던 학생이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면 다시 그 자리에 새 명단을 입수하여 똑같이 뒷바라지를 하셨다.
나중에 그분은 아주 고령(92세)에 작고하셨는데 어떻게 알았는 지 장례식에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찾아와서 관을 얼싸안고 통곡했다. 영락교회장으로 치러졌는데 그분이 평생 동안 길러 낸 아들들이 60명이 넘었다. 판. 검사도 있었고, 의사도 있었다. 교사와 군인, 사업가, 은행 중역 등 모두 출세한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분은 그 당시 젊은 의사인 장기려 박사를 아주 사랑하고 아끼셨다. 장 박사도 이 할아버지의 도움을 얼마간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평생 동안 자신보다도 남을 위해 살아온 할아버지를 장 박사는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