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한국에서의 생활 일지 (5)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한국에서의 생활 일지 (5)

미국에서부터 애간장을 끓이며 기도하던 천문선교회를 국세청에 등록하고 고유번호를 받고 천문의 이름으로 탈북신학생들과 선교사님들께 선교비를 보내는 일이 힘들었지만 잘 이루어져서 너무나 감사하다. 하나님의 일이고 선한 일이지만 십자가를 지고 책임지고 앞장 서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은 아무 자격도 없고, 생각하지도 못한 내가 대표요 책임자가 되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모든 어려운 일들을 잘 해결해 주셔서 너무 감사를 드린다.

올해 한국에 두 번이나 나오고 캄보디아 집회에도 다녀오고 사람들은 우리가 돈이 많아서 호사하는 줄로 알지만 우리는 모기가 물어뜯고 바퀴벌레가 나와서 놀라는 무료선교관에서 세끼 밥을 해 먹으면서 묵고, 지하철이 15분 거리에 있어서 버스비를 아끼려고 땀을 흘리고 걸어가서 타고 다시 갈아타고 걸어 다니느라고 종아리에 알통이 생기고 아파서 손으로 마사지를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다녀오면 하루 종일이 걸린다. 우리가 이중국적자라 지하철표가 있고 무료로 탈 수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지하철에는 노인들이 너무 많고 경로 우대석이 항상 만원이다. 


우리 숙소는 목사님이 쓰시던 집을 은퇴하신 후에 교회에서 선교관으로 내놓았는데 깨끗하게 청소하였고 된장도 고추장도 있고 김치와 쌀까지 준비해 준 너무나 감사한 무료숙소로 세계의 선교사님들이나 객들이 머물고 가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우리가 오랫동안 후원하던 러시아 선교사님의 주선으로 한 달 동안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고 그동안에 러시아 선교사 사모님도 임플란트를 하기 위해 오셔서 같이 머물게 되었다. 우리는 알고 지낸 사이가 오랜 사이로 서로 반가워하면서 나는 우리가 먼저 왔기에 사모님이 김치찌개를 좋아하리라 생각하고 돼지고기를 사고 김치찌개를 끓여 놓았는데 사모님은 아는 친구들이 너무 많고 매일 점심을 나가서 식사하므로 결국은 김치찌개를 다 버리게 되었다. 


미장원에 가서 흐트러진 머리 손질을 하고 남은 얼린 목살 돼지고기를 줄까 하니 너무 잘 먹는다고 해서 미용사께 드리기도 했다. 우리 세 사람은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짠 김치찌개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모님이 저녁마다 사과와 감, 조기 등을 사 오면서 목사님을 대접하는 것이다. 


남편이 목사님을 잘 대접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지난번에 한국에 왔을 때도 만나서 선교비를 드렸고 목사님 내외분이 남편의 편한 구두를 사주시겠다고 운동화 같은 편한 구두를 샀는데 돈은 내가 냈지만, 선교사님이 남편에게 사라고 해서 사게 되어 너무 감사했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얼굴도 알지 못하는 어느 분이 러시아 목사님의 선교편지를 보고 감동을 받고 선교비를 보내는데 어디로 보낼지 몰라서 못 보내다가 우리가 이곳에 와서 미국의 칼로스선교회로 선교비를 보내고 우리가 이곳 선교사님께 달러를 드리게 되어서 기적이라고 좋아해서 우리도 감사했다.


어찌나 나이 많은 우리를 부모처럼 잘 섬겨주는지 너무 황송하고 감사하고 사랑스럽다.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비행기를 타면 2시간이면 올 수 있는데 요즘 전쟁이라 비싼 배를 타고 이틀 동안 걸려서 와야 한다고 한다. 사모님은 친구가 많아서 차가 집 앞에 와서 모셔가고 식사를 대접받고 오신다. 


나는 남편하고 갈 때는 남편 뒤를 따라 걸어가는데 남편 없이 나 혼자 갈 때는 이곳이 초행길이라 길을 헤매고 고생을 많이 해서 버스를 잘 알아놓았다가 지하철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하루는 기사분이 “만 원짜리를 내면 어떻게 해요?”라고 소리를 질러서 가서 보니 1500원을 내야 하는데 만오백 원을 내었다. 


놀라서 꺼내려고 하니 “못 꺼내요.” 하면서 내 전화번호와 이름을 묻고 쓰고 “차고지에 가서 받으세요” 한다. 나는 차를 고치는 곳으로 알아듣고 “어딘데요?”라고 물으니 버스 종점에 가면 그곳에 있다고 한다. 며칠 후에 그리 멀지 않은 종점에 찾아가니 그곳에 사무실이 있어서 9,000원을 돌려받고 자세히 가르쳐 주신 그 기사분이 너무 감사했다.


길치인 나는 그곳을 얼마나 헤매면서 선교관을 찾으면 좋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추적하고 집을 찾아주고 집까지 동행해주기도 했다. 무거운 캐리언 가방을 들고 지하철 층계를 오르면 남편은 먼저 올라가고 나는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멋진 청년이 “드려다 드릴까요?”하고 번쩍 들어서 남편 옆에 갖다 주는데 너무 사랑스러웠다.


남편은 치과를 다니면서 이를 뽑기도 하고 새로 임플란트를 해 넣기도 해서 치과에 많이 가고 치료를 받는다. 한국에 자주 오면 대접받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게 되고 너무 미안한 마음이다. 외식도 안 하고 택시도, 심지어 버스도 안 타며 아무리 애써도 돈은 무척 들어간다. 


너무 싸게 해주시지만 치과도 많이 다니고 다음에 또 비행기 타고 와야 하고 힘들지만 이미 시작했으니 안 올 수도 없다. 그런데 숙소 근처에 6500원짜리 한식 뷔페가 반찬도 많고 사람도 많고 마음껏 갖다 먹어도 되고 너무 좋은 곳도 있지만, 집에서 해 먹으면 더 싸게 든다. 우리가 후원하는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에 거금을 후원해 드린 탈북민 신학생이 한국에 오셨다고 맛있는 것을 사 드리겠다고 전화가 왔지만, 선뜻 약속은 못 했다. 


모두 얼마나 힘들 텐데 저들에게 밥을 사라고 하면 내 마음이 불편해서이다.

교회에서 설교하고 나면 장로님이 식사를 사시는데 나는 성도들하고 같이 조촐한 식사가 더 편하고 맛있고 좋다. 나는 우리 선교관이 방이 세 개이고 화장실도 두 개이고 응접실도 넓어서 사람들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하고 싶다. 


내가 맛있게 밥을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오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아직은 이곳이 낯설지만, 다음에는 더 잘 알게 되리라. 임플란트하려면 앞으로도 이곳을 더 이용해야만 할 것 같다. 서울에서 쓰레기 버리는 플라스틱 봉지를 사용하고 구별하여 버리고 날짜에 맞추어서 버려야 한다. 이 빌라에 어린아이가 없는지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너무 조용하다. 


요즘 한국은 지하철이나 어디에서도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를 듣기 힘들고 어린아이가 나타나면 노인들이 너무 좋아하고 쳐다보고 엄마는 으쓱하는 것 같다. 한국은 많은 산부인과 병원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우리가 후원하는 기도의 집을 운영하는 탈북민은 아이가 다섯이다. 


그 가정에서 과제를 하는 남편과 아내와 중 3 아들, 세 사람을 후원하고 있고 그 중3 아들이 훌륭한 주의 종이 되기를 기도해 주고 있다. 주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우리 대한민국을 들어 세계를 복음화하게 하실 것을 믿으며 씨를 뿌리며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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