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부부 사이”
인생은 혼자 왔다가 성장하여 이성을 만나 둘이서 살다가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낳고 살다가 순서 없이 가는 것이다. 올 때는 분명히 순서가 있었지만 갈 때는 그 순서가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라고 했다. 나그네는 가다가 쉬고 잠을 자고 그러다가 기운이 다 되면 말없이 사라진다. 참으로 허무하고 처량한 것이 인생이다.
한평생을 살면서 끝까지 옆에 있는 사람은 부부이다. 그런 부부도 갈 때는 각자가 따로 간다. 아무리 금슬이 좋고, 사랑해도 같이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외롭고 가련한 존재이다. 내가 잘 아는 대학 선배 한 분은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고 둘이서 남았는데 불행하게도 부인이 뇌사 상태로 있다가 먼저 갔다.
남편인 선배는 부인의 장례를 치르고 1주일 만에 하늘로 이사를 했다. 부인을 따라서 아주 먼 곳, 영원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부 사이는 젊었을 적엔 서로 사랑하며 아이들을 낳아서 키우고 살다가 아이들이 집을 떠난 다음에는 쓸쓸하게 둘이서만 살다가 각각 혼자 떠나간다.
다음은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댁 행랑채 마당에서 박경리 문학관 주최로 제1회 섬진강에 벚꽃이 피면 전국시낭송대회가 열린다. 해마다 60여 명이 참가하는데 이 대회에서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생진씨가 대상을 수상했다. 본인(이생진)이 직접 낭송한 시가 바로 “아내와 나 사이”이다. 그의 시를 소개한다.
“내 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는 나이…….” 나는 창문을 열려고 갔다가 그새 거기 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아내 역시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우리 늙은이들은 앞이 막막하고 마음이 울컥하다.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한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일 뿐이라고……. 이즈음에 거창하게 인생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마치 삶의 본질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핏대를 올리는 당신(우리)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
우리네 삶의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리는 너무 먼 데서 살고 그것을 찾았다. 아울러 아내와 나 사이의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부부는 생판 모르던 남녀가 만나서 잠깐동안 살다가 생판 모르는 곳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영원히 사라지는 존재이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아직 하나도 없다.
죽은 후에 살아서 이 세상에 다시 온 사람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너무나 허무하고 기가 막히는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이고 우리도 지금 그 가운데서 죽음은 아직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알고 살아가고 있다. 옛날 고전 서적(명심보감)에 보면 “부부는 이성지합”이라고 했다. 즉 성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사는 것이란 뜻이다.
부부는 평생 같이 살다가도 헤어지면 남이라고 했다.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부부 사이를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부 사이는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 헤어지면 가장 먼 사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두 남녀가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함께 사는 것을 가장 선호했다.
즉 100년을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부부란 등을 돌리고 헤어지면 남이라고 하지만 인생행로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며 아끼는 상대방이다. 요즘엔 독신주의가 퍼져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하여 혼자 사는 경우도 있지만 한 평생을 홀가분하게 혼자 살다가 가는 것이 부담도 없고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늘고 있다.
어느 통계를 보니까 우리 한국이 앞으로 300년 정도 후에는 빈 땅만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독신주의가 늘어나고 부담 없이 한평생을 살다가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좋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리가 있는 말이지만 이 세상은 혼자서 살 수는 없다. 한자의 사람인 자를 보면 둘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하늘의 별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땅에 충만하라고…….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도 인간은 이 세상에 혼자 왔지만,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남녀가 합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부부 사이는 거리가 전혀 없고 한 몸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도 이와 같다. 들에 널려있는 초목들도 모두 이런 관계 속에서 해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부는 성이 다른 두 몸이지만 하나처럼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