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역사 공부 바벨탑에 대하여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역사 공부 바벨탑에 대하여

창세기의 매우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노아의 홍수 사건에 이어 바벨탑 사건이다. 오늘은 바벨탑에 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바벨탑이 세워졌던 위치는 현재의 이라크 땅이라고 한다.


홍수 후 노아의 후손들의 믿음은 점점 식어갔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이 온 세계로 골고루 퍼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은 절대자의 뜻을 어기고 흩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높은 탑을 쌓아서 하늘에 닿게 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온 힘을 써왔다.

      

바벨탑은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심판”의 이야기이다. 

니므롯(nimrod)은 성경의 인물로 노아의 4대손이고 시날(아시리아,메소포타미아)땅의 왕이었다. BC 2200년경에 ‘니므롯’이 성을 쌓기로 한 ‘시날’ 땅은 평지였기 때문에 돌이나 목재(木材)와 같은 건축재가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니므롯’은 벽돌을 구워 탑을 쌓고 성(城)을 건설했다. 그들은 역청을 사용하여 벽돌을 쌓는 공법을 썼다. 그 옛날 벽돌을 사용한 것은 놀라운 발전이었다.


사람들은 “자! 성읍을 건설하고 탑을 쌓아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빛내고, 온 지면(地面)에 흩어짐을 면하게 하자!” 이렇게 말했다. 고대의 사람들이 주거지를 떠나 흩어지는 경우는 가뭄, 홍수, 전염병 등의 천재지변이나 전쟁에 패한 때 외는 없었다.

그러므로 ‘흩어짐을 면하자!’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여 살면서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천재지변에도 끄떡없고, 적군이 침공할 수도 없는 강력한 성읍을 건설하자는데 모두 찬성하고 니므롯을 따라 성을 건설하고 탑을 쌓았다. 그들은 높은 곳에는 신이 살고 있고 ‘높은 산에 올라가면 신을 만날 수 있다’라고 믿었다. 그래서 신의 자리에 올라가려면 하늘에 닿는 높은 탑을 쌓아야 한다며 열심히 일했다.


유적으로 보이는 바벨탑은 90미터 사방에 90미터 높이로 세워졌다. 그리고 남아있는 오벨리스크(Obelisk)나 피라미드(pyramid)와 같은 높은 구조물들도 모두 신의 영역인 하늘에 오르려는 사람들의 목적에서 만든 건축물들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 겸손하다가도 나중에는 모두 교만해진다. 장희빈도 처음에는 겸손하고 온유했고 네로도 겸손했다. 그러나 황제가 된 후에 교만해져서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자기 스승 ‘세네카‘까지 다 죽였고 자신도 31살에 요절하였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이고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憎惡)가 아니고, 무관심이다. 


사람들이 탑을 쌓아 올린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하늘 높은 곳에 있는 신과 대등해지려고 탑을 쌓아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지혜를 뽐내려 한 것이다. 지식이 쌓이고 지혜가 발전하게 되니 그들은 점점 교만해져 도전 의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신들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이름을 알리자는 것은 이 땅에 뭔가 자신들의 업적을 남겨두고 싶은 욕구의 발로였다. 우리 속담에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자신의 업적을 이 땅에 남기고 싶은 욕망 때문에 탑을 쌓았다고 볼 수 있다.


셋째는 홍수에 대한 두려움이다. 절대자는 무지개의 언약으로 사람들에게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홍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홍수를 사람의 능력으로 극복하려고 하였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잠기지 않도록 하늘에 닿게 탑을 높이 쌓아서 피신하고, 또 혹시나 홍수의 피해를 겪게 되더라도 그 탑을 바라보고 다시 모여 살자는 것이다. 즉 탑이 인류의 구심점(求心點)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 탑을 쌓을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나 지금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인간의 능력을 믿고 신과 도전해서 스스로 신이 되어보려는 교만과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업적을 남겨 이를 후대에 물려주자는 욕망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였다. 또 절대자의 심판을 사람의 능력으로 면해보고 싶어 했다.


이런 인간들의 노력을 절대자는 어떻게 보셨을까?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살펴본다면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며 인간들이 하는 짓을 더 이상 막기도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즉시 하나인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게 하였다. 벽돌을 지고 오라 말했는데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역청만 가져와 더 이상 바벨탑을 쌓을 수가 없어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바벨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흩어지다’의 뜻이었다. 


만일 절대자가 바벨탑 쌓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들은 그들의 의도대로 그 탑을 완성했을까. 그 탑이 완성되었다면 또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숙제로 남겨 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절대자 없이도 우리 인간들끼리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며, 신의 영역에 도전해서 정복해 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눈부시게 첨단과학이 발전하고 인간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끊임없이 정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서 아무런 제약 없이 과학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황우석 박사의 말처럼 줄기세포로 인해 사람들은 불치병도 말끔히 치료되고, 또 죽음의 문제도 극복해 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됨으로써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그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너무도 복잡한 문제에 당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살리고자 하는 과학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절대자(絶對者)와 대등(對等)해지려고 높게 바벨탑을 쌓았지만, 절대자는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어 90m 높이에서 이를 중지시켰다. 그 높이는 절대자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도 마음속에 교만의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으며 절대자에게 도전하고 있는지 성찰(省察)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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