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칼럼]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 ‘가엽게 여김’ 등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긍휼이라는 말의 뜻을 아주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자가 끊어질 듯이 아파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나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고 나를 이해하듯이 남을 이해하고 나에게 관대하듯이 남에게도 관대한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7)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순종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이야말로 진정한 긍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 사랑과 희생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분노와 상처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긍휼 덕이다. 나 자신이 얼마나 긍휼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사람은 남을 긍휼히 여길 수 있고 긍휼히 여길 줄을 안다. 마음으로만 불쌍해하고 염려하는 것이 긍휼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상처를 만져주고 안아주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실천이 긍휼이다.
불치의 환자를 보고 측은히 여기는 것, 집 없이 방황하는 사람을 가엽게 여기는 것도 긍휼이다. 그러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생각만으로는 진정한 긍휼이라고 할 수 없다. 몸소 불쌍하고 가여운 처지를 해결해 주는 실천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성경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 것처럼 내가 긍휼이 여길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을 나의 복으로 여겨야 한다.
저 사람만 없으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있어서 나에게 복이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수년 전에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화재가 발생하여 전신에 59%의 화상을 입고 극적으로 살아난 이지선 양이 쓴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내가 괌에 살 때인데 지선 양을 만나고 싶어서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녀는 지금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치고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 화상을 입기 전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여대생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화상 치료를 여러 번 받으면서 온갖 아픔과 절망감이 극도에 달했을 때 그녀는 엄마에게 울부짖었다. 엄마가 이 고통을 대신 당할 수 있느냐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그럼, 그럴 수만 있다면 천번 만번이라도 네 고통을 대신 감당할 수 있지.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엄마의 사랑과 긍휼에서 지선은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지선은 자신이 입원하고 있는 동안 중환자실에서 17명이 죽어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 수십 차례의 성공적인 수술로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을 때 그녀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고 남은 사람은 오직 주님을 위해서만 살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손가락이 거의 다 타서 업어졌어도 글씨를 쓸 수가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녀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셨다고 고백했다. 지선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서 교회에 나갔는데 아이들이 “와! 저기 괴물 좀 봐라!”라고 외쳤다.
그때부터 지선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제발 제가 사람으로 보이게 해주세요” 3년 후 교회에 갔는데 그때는 아이들이 “엄마, 저기 이상한 사람이 왔어”라고 했다. 지선은 그때 하나님께 감사했다, 사람으로 보이게 해 주심을….
지선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다. 사고 전에는 시집 잘 가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기에 더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 앞에 지선 양과 같은 환란이 닥쳐도, 그보다 더한 불행이 닥쳐도 내가 온유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에 목말라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그것이 곧 천국임을 알아야 한다. 나의 연약함을 알기에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끌어안고 아픔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곧 천국을 누리는 삶이다. 우리에게 긍휼히 여길 수가 있는 환경을 주신 것이 곧 복 있는 삶임을 우린 깨달아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간직하면서 한 평생을 살아가자.
그것이 가장 복 있는 자라고 하셨으니…. (내용 일부 정병국의 저서, “삶의 찬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