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세월이 주는 지혜”
우리는 보통 생각하기를 인생의 스승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세상을 오래 살아오면서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리고 항상 나를 가르치는 것은 말없이 흐르는 세월(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의 정답도 흐르는 세월(시간) 속에서 찾게 되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의 메시지도 거짓 없는 시간을 통해서 찾았다.
언제부터인가 확실히는 모르지만 흐르는 시간을 통해 삶의 정답을 찾아가고 있다.
시간은 나에게 큰 스승이다. 어제의 시간은 오늘의 스승이었고, 오늘의 시간은 내일의 스승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가장 낭비하는 시간은 방황하는 시간이고, 가장 교만한 시간은 남을 깔보는 시간이며, 가장 통쾌했던 시간은 승리하는 시간이었고, 가장 지루한 시간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가장 서운했던 시간은 이별하는 시간이었다.
가장 겸손한 시간은 자기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시간이고, 가장 비굴한 시간은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시간이었으며, 가장 불쌍한 시간은 구걸하는 시간이었다.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은 최선을 다하는 시간이었고 가장 현명한 시간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시간이며, 가장 가슴 뿌듯한 시간은 성공한 시간이고, 가장 달콤한 시간은 일한 뒤에 휴식 시간이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바로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무엇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묵묵히 쉬면서 천천히 가라. 오는 인연 막지 말고 가는 인연 붙잡지 말라. 놓으면 자유요, 집착함은 노예이다. 이 세상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다. 짐을 내려놓고 쉬어라. 쉼은 곧 수행이고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결코 쉼은 삶의 정지가 아니다. 쉼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고역일 뿐이다. 그릇은 빈 공간이 있어야 그릇이 되는 것이다. 지친 몸을 쉬는 방도 빈 공간을 이용하게 된다.
빈 것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삶에 꼭 필요한 것이다. 쉼은 삶을 더욱 살찌게 한다. 쉼은 삶을 더욱 빛나게 한다. 풍요와 자유를 함께 누려보라. 쉼이란 곧 놓음이다. 쉼은 또한 마음이 해방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도 손님으로 왔다가 잠시 쉬어갈 뿐이다. (이상 법정 스님의 말)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불행이란 우산을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 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 속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연인이란 비 오는 날 우산 속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요. 부부란 비 오는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우산이 되어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피천득의 ‘비와 인생’에서 발췌) 오늘 칼럼에서는 우리들의 선배 두 분의 글을 인용하면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나도 어느새 80 중반을 달리고 있다. 80대는 80마일로 세월이 흘러간다고, 김동길 교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맞는 것 같다.
요즘엔 너무 빨리 세월이 지나간다. 쏜 살처럼 그렇게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60대와 70대는 그냥 꿈에 지나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다. 분명히 60대와 70대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닌 것처럼 어느새 지나갔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우리에게는 많은 스승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김동길 교수님과 김형석 교수님은 우리들이 젊었을 때 지식을 전해주는 것 이외에 인간이 한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건과 일들을 많이 말씀해 주셨다. 그분들의 가르침으로 우리는 성장하였고 사회에서 한 몫을 단단히 하게 되었다. 정말 천구 같은 교훈과 인생론을 이야기해 주셨다. 양주동 박사와 최현배 박사, 김윤경 박사들로부터는 학문의 고귀한 진리를 배웠고 인간이 한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런데 그런 귀한 진리와 학문도 세월이 주는 교훈만큼 우리를 성장시키지는 못한듯하다. 학문의 길은 멀고도 끝이 없지만 그런 학문의 길은 세월이 주는 것만큼의 감동과 진리의 길을 열어 주지는 못했다. 어느 학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라도 그런 분의 교훈보다 세월이 말없이 주는 교훈이 더욱 값지고 진지하다. 세월만큼 빠른 것도 없지만 우리네 삶의 길이 또한 빠르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느새 우리 인생의 가을이 오고 이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알몸으로 추위를 견디다가 봄에 다시 피어나는 꽃들처럼 우리 인생도 그럴 수는 없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세월이 주는 지혜가 그 답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