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폴, 정말 미안해! (2)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폴, 정말 미안해! (2)

<지난 호에 이어>

마침 아들아이가 살다가 다른 주로 가게 되면서 비워둔 집이 단층집이어서 아들아이 집을 가보니 여기저기 수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집이 너무 어두워 보여 방마다 창문을 하나씩 더 내고 하나뿐인 화장실에도 천장에 천창도 내고 작은 스토리지를 변경해 화장실 하나 더 내고 부엌과 거실과 막힌 담도 헐어내 벽을 터버리니 밝고 아주 환한 집이 되었다. 너무 오래된 집이어서 전기선도 모두를 새로 갈아야 했다. 


집 안팎으로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나니 집의 구조가 컬티샥 언덕에 자리를 잡았는데 허술했던 이 단층집이 언덕 위의 빨간 대문집 아주 예쁜 집으로 변신했다. 그야말로 ‘우리 집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집이 예쁘게 변했다. 살던 집은 깨끗이 치우고 수리할 부분은 수리하고 마켓에 내놓았다.


새로 리모델링 한 단층집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 며칠 후부터 공연히 우울해지고 눈물이 나면서 우울증이 왔다. 물론 우울증의 원인 중에 무릎 통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두고 온 집에 대한 그리움, 익숙했던 지역에 대한 편안함, 그리운 이웃들, 늘 아침마다 돌보며 가꾸었던 많은 과일나무와 꽃들에 대한 아쉬움, 사무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예전에 살던 집으로 운전해가고 있는 나를 보고 내가 왜 이러지?


또 이때 사랑하는 둘째 오빠가 먼 곳으로 떠나버리셨다. 오빠를 떠나보내는 데 가고 싶었으나 두 다리의 통증으로 먼 길을 갈 수가 없어 오빠의 마지막 길도 배웅을 못 해서 엉엉 울고 말았다. 오빠는 나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이었기도 하고 친한 친구 같기도 하고 나의 인생길의 좋은 선배 같기도 했었다. 차를 타고 새로운 집으로 운전해오는데 그냥 뭔지 모를 가슴이 콱 막힌 것 같은 슬픔이 몰려오면서 가슴앓이를 시작했다. 


아하! 헤어지기는 어렵구나.

몇 년 전 함께 교회 생활을 하던 폴이 생각이 났다. 폴은 머서 아일랜드에 아주 좋은 집에 사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는데 60대 초인 아내가 치매에 걸리자 70대인 폴이 아내를 혼자서 돌보며 그 큰집에서 살고 있었다. 백인 위주의 교회를 다니면서 몇 사람 안 되는 동양인인 나를 보는 폴이 어느 날 자기 집에 들러달란다. 자기 아내 캐리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며….


시간을 만들어 폴과 캐리의 집을 방문해보면서 나는 경악했다. 머서 아일랜드의 그 아름다운 장소에 자리 잡은 폴의 커다란 집안은 세상의 물건이란 물건이 다 모여있는 듯 위아래층이 꽉 차 있고 아내가 움직일 줄 모르니 모든 방문은 다 잠가버리고(방마다 물건들로 꽉 차있었다) 폴은 나에게 자기네 집을 청소해줄 사람을 구해달라며 물건을 다 치우고 싶다고 하는데 돈이 적게 들 수 있는 곳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폴의 예산 가지고는 이 엉망진창인 집을 치워줄 업체는 물론 없어서 나는 교인들과 함께 상의해서 날을 잡아 폴의 집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치우는데 아무리 치워도 물건이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다. 폴의 집안 5 베드룸, 3 배스룸에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이 물건들로 산을 이루고 있으니 우리가 아무리 치우려 하여도 치울 수가 없었고 또 우리가 치우려고 하면 폴이 내려와 이건 치우면 안 되고 저건 이유가 있어서 버리면 안 되고….


거의 두 달간 매주 치우면서 폴에게 잔소리하기 시작했었다.

“폴 이 집 그냥 팔아버려, 너 이 집 팔면 엄청 많은 돈을 받을 거야! 그 돈으로 캐리랑 작은 콘도 하나 사서 편안히 지내, 도대체 이게 뭐야?” 폴은 방마다 히터를 새로 만들어놓고 오직 방 하나만 히터를 틀어놓고 그 을씨년스럽고 후적후적 비가 내리는 날에도 방 하나만 히터를 켜놓고 살고 있었다. 


자기들의 예산 가지고는 이 큰 집의 전기세를 감당할 수가 없다며 음식도 요리를 못 한다며 코스코에서 얼린 음식을 사다가 마이크로오븐에 덥혀 먹는 중이었다. 우리 그룹들은 이 집을 정리를 하다하다 지쳐가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왜 이 큰집에 그냥 살고 있냐고? 그냥 팔아버리고 작은 콘도나 단층집으로 이사를 하지!”


폴은 우리의 말에 대답했었다.

“레지나, 우리 부부가 이곳에서 아이들 셋 다 키우고 산 지가 40년이 넘는데 어떻게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있겠어?” 폴을 설득하는데 일 년이 되어가는데 폴의 아내는 치매가 심해져서 양로원으로 옮겨가고 그 큰집에 폴만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었었다. 나는 혼자 있는 폴 집을 찾아가 보며 방문할 때마다 잔소리하고 내 생각에는 꽤 괜찮은 충고를 했었다. 

“폴, 이 집 정리하자고? 내가 도와줄게”


폴은 내가 물어볼 때마다 “그럼 내 이 모든 것들은 어떻게 하고?”

그때에는 폴의 말뜻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무릎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살던 집을 떠나 아주 새롭게 단장한 단층집 뒷마당에는 너구리 가족들이 지나다니고 아침마다 다람쥐가 찾아와 곁을 맴돌며 연못가엔 우리 금붕어 가족들이 반기는 예쁜 꽃나무들이 환하고 웃고 있는 이 새로운 집에 왔어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을…. 


그리고 폴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폴이 살던 곳에 대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너무나 미안해서 이미 세상을 달리한 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폴, 정말 미안해!

그래, 왜 내가 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걸까? 

정말 미안해! 

나는 폴이 그 넓고 망가져 버린 집안에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집 안을 정리해주며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너를 도와주는 것인데 내 마음대로 그 집을 떠나라고 했으니 네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폴 미안해!


정신과에서 일하다 보니 정신줄놓고 헤매는 노숙자들도 우리 프로그램에 많이 오게 된다. 사무실 아웃리치 직원들이 노숙자 생활을 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우리에게 인계하면 우리는 매주 이들과 만나며 상담도 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주는데 그중에 가장 첫 번째가 약을 먹게 하는 것과 살 수 있는 아파트나 쉘터를 제공하는 일이다.


그래도 그룹 쉘터는 괜찮다. 그런데 이들을 개인 아파트에 입주하게 해주면 90퍼센트의 우리 정신 질환 고객들이 도로 밖으로 나가버리거나 아니면 아파트 안에서도 텐트를 치고 밖에서와 마찬가지로 방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다. 오랜 시간 거리 생활을 하면서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을 그대로 재현해놓거나 그들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을 그리워하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가 모퉁이로 나가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자리한다. 


왜냐면 그들에게 그곳은 가족인 것이다. 그들에게 그곳은 울타리인 것이다. 새로운 것, 좋은 환경이 아니더라도 내가 정든 곳 내 친구가 있고 늘 익숙한 그곳이 내 집인 것이다.

내가 이사를 와서 느끼는 우울증의 원인 중의 하나는 예전의 것에 대한 그리움인 것이다. 폴을 생각해보며 정말 미안해서 그리고 이제야 폴의 심정이 생각이 나서 폴에게 얘기를 해본다.

폴, 폴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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