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에미(2)
<지난 호에 이어>
할머니는 지저분하게 썩어가는 야채와 과일들을 주워 모아 버리려는 내 손을 잡으시더니 “아니, 이걸 버리면 안돼요”라고 말씀 하시면서 눈가에 눈물이 비치셨다. 나는 할머니의 눈가에 비치는 눈물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놀래서 “할머니 아니 왜 우세요?”
라고 말하며 “할머니 미국 정부에서 매달 웰페어를 드리시잖아요? 방값을 제외하고도 돈이 넉넉하게 남아서 그 돈으로 드실 것 실컷 사드시면 되는데 왜 이런 것들을 드세요?”라고 조심스레 물어보니 “레지나 선생님 내 애기를 좀 들어주려우?”
하며 할머니가 터놓은 얘기는 “사실 내가 한국에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다우, 그런데 딸은 그래도 시집을 가서 지 밥벌이는 하고 사는데 아들놈이 나이가 사십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지 밥벌이도 못하고 살고 있으니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먹고 살면서 정부에서 주는 돈은 한국의 아들에게 보내는 중이라우!”
나는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 정부에서 주는 돈은 할머니가 이곳에서 먹고 사시는 데 사용하시라고 주는 돈이지 아들을 도와주라고 주는 돈이 아니에요. 절대로 아들에게 돈을 보내시면 안 됩니다.”
할머니는 내 손을 붙잡으시더니 “아니, 그런데 어쩌우! 아들이 굶고 있는데 내 배를 채울 수 있겠우?”
“할머니 안 돼요. 이런 버리는 상한 것들로 음식을 만들어 드시면 안 되고요, 아드님께 돈을 보내시는 것을 정부가 알게 되면 할머니 지원금이 끊어집니다.”
할머니는 “그러니까 내가 레지나 선생님에게만 말하지 않우!”
“할머니 저희는 할머니의 상황을 보고해야만 해요.”
할머니는 내 손을 잡으시더니 “레지나 선생님도 자식이 있지요, 그 자식이 배곯고 있는데 어찌 에미가 밥을 먹겠수! 부탁이유! 그냥 놔둬유”
이날 할머니 아파트를 방문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주정부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내 배가 부른 것보다 내 아들이 따순 밥이라도 해먹을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런 것을 먹어도 행복하다우! 부탁이유!”
그리고 “이런 음식을 먹어도 나 이렇게 잘살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어오셨다.
모른 체 해주기를 바란다고…
내가 할머니 문제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 며칠 사이에 별안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며칠째 방 안에서 안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서 안전요원을 불러서 할머니의 방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며칠 전 심장마비로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너무 놀라고 무섭기도 하고 내가 제대로 관리를 헀었나라는 자책감에 엄청 많은 시간을 괴로워하고 어려웠었다. 할머니의 별안간 죽음을 조사하고자 할머니의 시신은 병원으로 실려 갔고 메디컬 검사관이 정확한 사인을 조사한 끝에 심장마비로 결론을 짓고 나에게 연락이 왔다.
할머니의 시신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나는 할머니가 이미 전에 알려준 할머니의 자식들 아들딸에게 전화를 했다. 먼저 딸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며 할머니의 시신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나에게 할머니의 딸은 엄마는 내게 해준 것도 없이 미국 남자와 결혼을 해서 떠났는데 내가 왜 엄마 시신을 책임지냐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을 하고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미군 부대에서 빨래를 도와주면서 살고 있다가 자식들이 18살이 되자 자식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되고자 미군 부대에서 자기를 좋아해 주던 나이가 든 직업 미군하고 결혼을 해서 미국에 왔으나 총각이 나이 먹은 여자와 결혼을 해서 왔다며 구박을 하는 시집 식구들과 자기보다 젊은 남편의 술 주사를 견디지 못하고 겨우 도망쳐 나와 거리를 헤메이다가 시 정부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살던 중이었다.
너무나 기가 막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할머니가 오랜 시간 자기의 정부지원금을 방값만 제하고 보내주었던 할머니의 아들 집으로 전화를 거니 아마도 아들의 아내인 듯한 여자가 몇 시간 후에 다시 전화를 해달라고 해서 그 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걸었다.
당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찌해야 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아들은 “알아서 하세요!”라고 대답을 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너무나 놀랍고 분하고 화가 나서 다시 전화를 걸며(국제 전화) “야, 이 왕싸가지 자식아 너네 엄마 시신을 왜 내가 알아서 하니?
그리고 너 같은 후레자식도 있냐”고, “네 엄마가 너를 위해서 먹지도 못하고, 써보지도 못하고 너에게 돈을 보내는 것을 내가 진작 말렸어야 하는데 못 말린 게 한이 된다”며 아주 무섭게 톤을 낮추어서 말을 하는데 전화는 또 끊어졌다. 아하, 이 후레자식 놈에게 내가 크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야 하는데….
할머니의 시신은 연고자 확인을 하는 퍼블릭 광고를 내보내기까지 두 달을 더 병원 시체실에 안치되어 있다가 화장을 한다며 화장을 마친 재를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매디컬 검시관에게 재를 내게 보내달라고 답을 하니 화장을 한 할머니의 시신은 재로 변하여 그날로 작은 박스에 넣어져서 내 사무실로 왔다.
할머니의 시신이 재가되어 내게로 온 작은 박스를 가슴에 안으니, 할머니의 재는 아직도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