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십자가 위의 일곱 마디 - 그 첫 걸음 겟세마네의 기도 (2)

전문가 칼럼

[리사운드교회] 십자가 위의 일곱 마디 - 그 첫 걸음 겟세마네의 기도 (2)

십자가 앞에서 드려진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 줄 뿐만 아니라, 그 기도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기도의 모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정 위기의 때, 결단의 때에 저와 여러분이 체험해야 할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기도의 동산에서 혼자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분명, 그 기도의 자리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동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그 처절한 기도의 자리에는 예수님의 기도를 돕는 천사들의 손길이 함께 하였음을 누가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눅 22: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그렇게 겟세마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 심을 체험하는 은혜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를 통하여 생명의 길을 여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중보 하시며 그 생명의 길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소개하면서 우리를 향한 그의 영원한 중보에 초점을 맞추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요. 히 7:24-25)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이런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그 자기 십자가는 오로지 기도로 감당하는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 기도의 자리에서 그렇게도 십자가 지는 것을 슬퍼하시고 두려워하셨을까요? 마치 십자가 지실 것을 모르셨다가 갑자기 알게 되신 분처럼 말이지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요!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말씀하신 예수님 아니셨습니까!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며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요 16: 33-17:1)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 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바로 이때를 위하

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곧 십자가 죽음의 때요! 바로 그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는 때 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고,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겟세마네에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치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두려워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과 왜 꼭 지금 예수님에게 이 겟세마네 기도가 필요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가 두려워하신 것은 그의 육체에 임할 수치와 조롱, 고통이 아닙니다. 물론, 채찍에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는 고통이 인간으로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그것을 아셨던 분 이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7마디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가상칠언의 말씀 가운데 이 한 마디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15: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 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 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또한

하나님이신 것이지요. 그렇게 완전한 인간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도 단 한 가지, 그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되는 경험입니다. 예수 님은 창세 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하나님과 하나이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들을 하셨던 것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내게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이 두려워하신 것은 고난 이나, 죽음 그 자체가 아닙니다. 죽음을 정복하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진정 두려워하셨던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단절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받아야 할 죄 값이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인 것입니다. 여러분,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누리셨던 그 친밀함의 깊이와 감정과 상태를 우리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십자가 위에서 느끼셨던 그 버림받음과 단절의 두려움 역시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뿐입니다. 


바로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자리가 바로 이 겟세마네 기도 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씩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을 생각할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경 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니깐 순종을 못하는 것이지! 그분의 뜻을 알기만 하면 왜 순종을 안해! 왜 못해! 그런데, 오늘 이 겟세마네 기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줍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몰라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이 겟세마네의 기도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마치 그 이름처럼 [겟세마네: 올리브 기름을 짜내는 기름 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하여 당신 안에 있는 모든 피를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짜내어 우리의 심령에 뿌리신 예수님의 삶, 그의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그 기도의 자리에 엎드리신 것이 아니라,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하여 엎드리신 것입니다. 


순종은 그렇게 내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연약하고 또 이기적인 우리가 어떻게 하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내 의지나 결단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 앞에서 힘쓰고 애써 기도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된 은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이 땅에서의 그 마지막 순종을 바로 이 겟세마네 기도로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열매로 이렇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은혜와 영광을 체험한 것이지요. 그 기도의 자리는 이렇게 생명이 잉태하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교회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에게도 변함없이 그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한 바로 이 겟세마네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날마다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오직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담아 믿음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의 그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잃어버린 주의 영혼들이 다시 돌아오는 생명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그 기도의 동산으로 올라가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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