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기드온칼럼]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사명(3) "유대인 디아스포라 역이민 정책"
2차 세계 대전 이후 한민족과 유대인은 각기 독립국가를 이룬다. 한민족은 성경 위에 나라를 건국했고 유대인은 이스라엘을 재건했다. 두 나라 건국은 정치적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영적으로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한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행1:6)" 이 '때'의 의미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이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이스라엘 독립'은 분명 세상 끝날의 징조라 여겨진다. 이제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역할은 마무리되었다. 이제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사명만이 남아있다. 이 시점에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살피고 그들의 역할을 숙지함은 한민족 디아스포라가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점검이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역사는 성경에 잘 나타난다.
아시리아인의 왕 살만에셀이 북이스라엘왕 호세아 9년, 기원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을 정복해 히브리인들을 중동 전역에 흩어버린다. (왕하17:6, 24; 18:11) 그러나 이들은 역사의 페이지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이들을 '디아스포라'라 칭하지 않는다. 두번째 유대인들이 흩어짐은 BC 605년 바벨론의 1차 예루살렘 침공 이후 유대인 포로들이 대거 바벨론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때 다니엘은 포로로 바벨론으로 이주한다.
세번째 유대인의 흩어짐은 기원전 597년 예루살렘2차 침공에서 여호야긴왕이 항복하면서 이루어진다. 그 후 기원전586년 바벨론의 제3차 침공으로 남유다는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이때 네번째로 유대인들이 흩어지게 된다. (대하36:20) 이들은 바벨론제국 곳곳에서 유대인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게 허락받았다. 이것이 바벨론과 중동 지역 중심의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이다.
남유다의 멸망으로 일부의 유대인들은 이집트로 도망쳐 나일 삼각주에 정착한다. 따라서 597년 이후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두 그룹이었다. 하나는 바빌론과 중동지역 디아스포라, 또 다른 하나는 이집트를 중심으로한 디아스포라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의 키루스(고레스)는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바벨론에 남아 있기로 결정한다.
북이집트에 있던 많은 유대인들은 이집트 엘리판틴(Elephantine)이란 섬에서 용병으로 살기도 했다. 초기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종교와 그들의 사회적 관습을 유지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페르시아인과 유대인 모두 자신의 법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제국을 거치면서 예루살렘 근교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은 셀레우코스 제국의 통치를 받다가 마카베오 반란을 일으켜 잠시 하스몬 왕조를 세운다.
하스몬 왕조의 패권정책으로 모압, 암몬, 에돔, 갈릴리 인들이 반강제로 유대교로 개종하게 된다. 또한 그리스계 이주민들도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에 매력을 느껴 유대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이후 유대인들은 로마에 의해 합병되어 예수그리스도의 시기에는 로마 보호령 상태였다¹. 유대는 자치권을 인정받아 유대인 왕을 세울 수 있었고 종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무역규제, 세수극대화 등 로마총독의 폭정으로 66년 '유대독립전쟁'을 일으킨다.
그 결과로 예루살렘은 주후 70년에 디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고, 유대인들은 로마제국 전역으로 흩어지게 된다.
1945년 9월2일 세계2차 세계대전은 종결되고, 1948년5월14일 유대인은 팔레스틴 지역에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현재, 독립국가로써 주권을 회복한 이스라엘은 '유대인 역이민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17년12월16일, 45대 미국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70여년의 대중동정책을 뒤집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했다.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완전한 나라 회복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대 사명을 주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 이 말씀은 '유대인 사회에서 이방인 사회로' 나가라는 복음전파사명이다. 하나님은 사명만 주시지 않고 최적의 사람들을 예비해 두셨다. 바로 '유대인 디아스포라'다. '디아스포라'는 포괄적으로 한가지 특징을 갖는다.
이중 언어와 이중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다른 두 지역 안에서 하나님나라 가치를 세상나라에 연결해 줄수 있다. 이들은 '복음의 교두보'다.
디아스포라 바울은 히브리인으로 로마시민권을 가졌다. 바울은 헤브라이즘(Hebraism)과 헬레니즘(Hellenism) 철학에 능통했다. 바울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중언어자다. 그래서 바울은 히브리 민족에게 주신 복음의 그림자인 율법, 절기, 제사문화 등을 정확히 이해해 이방인들에게 간단 명료한 개념으로 헬라어를 통해 설명하고 전달할 수 있었다.
동서양을 연결할 수 있었던 바울은 유대인 디아스포라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다. 복음의 물결은 소아시아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통해 이방인 사회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이 복음은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태평양을 넘어 한국으로 흘러와 멈춰섰다.
1866년 토마스 선교사에 의해 전해진 복음은 평양성에 성령의 부흥을 일으켰다. 하지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황무하게 되었는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영적부흥의 흔적을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
3대 세습 독재정권이 총칼로 그 땅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복음의 문을 막아서고 있다. 내년이면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이한다.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의 황무함을 바라보며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만에 그치리라 (단9:2)"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악을 자신의 죄로 알뢰며 하나님 앞에 독대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 다니엘처럼,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정전 70주년을 앞두고 일제 강점기 중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로 일왕(日本王)을 하나님보다 더 높은 신이라고 인정하며 배교했던 우상숭배의 죄악을 우리들의 죄로 아뢰며 하나님 앞에 독대해야 한다.
회개하는 한민족에게 기쁨의 희년(쥬빌리)을 주시리라.
디아스포라 회개의 기도는 한민족 복음통일을 앞당기며 동양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한민족으로 하여금 세계선교의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아직 복음전파의 후반전이 남아있다. "한반도에서 유라시아를 지나 땅끝 예루살렘까지". 필자는 1세대 '한민족 디아스포라'가 고난과 슬픔의 역사 가운데 먼저 보냄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나라 영광을 위해 바울과 같은 '한민족 디아스포라' 2세, 3세가 준비되고 있음을 확신한다.
¹ 유대는 기원후 63년에 로마제국의 보호령이 된다.(실제 연도는 역산상의 오류로 조금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