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샬롬교회 컬럼] 창조자의 눈물
요한복음 11:32~35절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거하여 하나님의 세계인 낙원에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며 하나님의 세계를 다스리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세계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창세기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예수님은 되살리는 영(quickening spirit)으로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와 그 창조의 세계에서 다스릴
사람을 되살리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살아난 사람은 다시 하나님의 창조의 형상을 입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스릴 새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죽은 나사로를 향한 울고 있는 사람들의 기록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울고 , 예수님도 울고 계십니다.
발 앞에 엎드리며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여 우는 마리아와 유대인, 예수님의 눈물은 다 슬픔과 상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 슬픔과 상실의 관점이 다릅니다.
마리아와 유대인들은 나사로의 육적 죽음, 육적 사랑의 상실로 인하여 슬퍼하며 울고 있습니다 보통 나사로를 향한 예수님의 눈물을 인간으로서 오셨던 예수님의 인간적인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흘린 눈물은 인간이 인간의 정과 연민을 느끼며 우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고 보기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던 창조자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되살림의 목적으로 오셨을 때, 사실 이 세상은 창세기 1장 1절의 상태와 같습니다. 이미 모든 죽어진 것을 다시 되살리는 영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단순히 육신의 죽음이 예수님께 상실과 슬픔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살아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8:21~22]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어디 두었느냐?” 물으십니다.
“와서 보옵소서.” 그러자 눈물을 흘리시는데, 예수님은 단지 나사로의 육적 죽음으로 인해 우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게 할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던 영생의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친히 손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에 놓여있지 않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영적 무덤에 갇혀 있기에 우신 것입니다.
나사로만을 위해 우신 것이 아니라 영적 존재에서 육적 존재로 떨어져버린 우리 모두를 위해 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영생의 과실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고 다스려야 할 우리가 육신이라는 세계에 갇혀서 육신의 보이는 현상을 전부인 것으로 보고,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아래 지배를 받고 있는 그 영적 무덤’을 보고 우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세계에서 추방당했을 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슬픔과 상실로 고통스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낙원을 모르는 자가 아니였습니다 낙원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아는 자들이었고 하나님안에서 충만을 경험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화염검 사이로 두고 낙원을 건너갈 수 없는 그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다스릴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 사람을 지으셨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보기 좋았고 기뻐하셨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더이상 다스릴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을 창조 세계에서 추방했을 때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다 상실한 것입니다. 낙원의 상실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거저 받았지만 하나님은 직접 그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누구의 상실이 더 크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다 보니 아담과 하와의 슬픔만을 생각하지만
그 세계를 직접 창조하신 자의 상실과 슬픔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슬픔과 상실은 어떠했을지를 상고해본다면 오늘 예수님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조자 하나님은 자신의 작품을 반드시 되찾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직접 되살리러 오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그곳에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하여 하나님의 세계를 다스릴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일으키고 완성하시려, 하나님 창조 세계를 다시 시작하시러 오셨습니다.
나사로의 시체와 무덤은 하나님의 옛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셨지만 타락한 옛사람과 옛사람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고 내쫓아 보내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고 사랑하셨던 세계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을 보고 우셨던 것은 저주로 변했지만, 타락 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세계의 상실에 대하여 우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세계는 다시 창조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하신 말씀은 단순히 피조물인 우리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하셨던 그러나 인간의 교만과 거역함으로 상실과 저주로 점철됬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의 기쁨으로 인해 창조자이신 하나님 스스로도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3:18 개역한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즉 성령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냐면, 우리 안에 창조된 새 사람을 새 하늘
과 새 땅에 둘 것이며, 이 새 사람의 탄생의 기쁨 때문에 옛것의 타락으로 인한 상처와 저주도 다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도 그럴 것이고 창조자인 나 하나님도 그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새 사람의 회복과 완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새 사람의 신분을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옛 세계가 되어버린 첫 것은 한번 파괴되었지만 둘째 세계, 이것은 절대 파괴되지 아니할 것이며 무너질 수 없는 것이다,
영원히 함께하고 사랑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신부와 남편 그리고 장막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늘 샬롬 교회 haneulshalom(장로회)
김 이스라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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