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기드온칼럼] 이스라엘 방문 후기_끝
마지막 날이 되니 여러 가지 질문들이 더 많이 생겨났다. 왜, 황금돔의 자리는 무슬림이 차지 했을까? 이삭을 바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눈물과 감격의 자리이자 수만 시간에 걸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던 유태인들의 성전이었던 그 엄중한 자리, 그러나 무슨 배짱으
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면서 그 죗값은 후손들에게 돌리라는 외침들이 있은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성전 휘장이 둘로 갈라졌음을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 채, 통곡하고 있는 유태인들이 과거의 성전을 자신들이 그렇게 어렵게 찾은 나라의 가장 사모하는 그 땅 그곳을 왜, 무슬림이 차지했을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님은 그렇게 되도록 허락하셨을까? 지금 유태인들은 자신들이 2,0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떠돌아다닌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하여 알아봤더니, 그들은 아직도 여전히 로마제국의 이스라엘 파괴로부터 시작된 정치적 탄압과
여러 가지 고대 유대교와 지금의 유대교의 차이점으로, 유대교의 성서 해석 방법, 유대인 사회 구조와 가치관, 인종차별 등으로 여기고 있다.
이렇게 유태인들이 나라를 잃은 원인에 대해 이러한 외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하나님께 대항했거나 그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고(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황금돔을 유태인들이 차지 못하도록 2,000년간이나 무슬림에 손에다 잠시 넘기신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으로 성전은 예수님이 자신이 되셨고, 더 이상 제사를 드리는 구악의 성전은 무너졌기 때문에 유태인들이 과거로 회귀할 수 없도록 아예 금지된 구역으로 만들어 버리신 것이 아닐까!
왜, 이런 골짜기 같은 산지에 예루살렘 성전을 두셨을까?도 큰 의문이었다. 도로와 차가 없던 그 시절은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리려면 강도와 짐승 그리고 더위와 먼지 나는 드라이한 돌들과 바위를 생명을 걸고 넘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구나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 자체가 생명을 걸어야 할 기막힌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자, 지금 드리는 예배가 감격스러움과 절실함이 옛날만큼은 못하지 않는가라는 좀 죄송하고 부끄러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예배란 생명을 걸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예루살렘은 점점 멀어져 가는 나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우리들로부터 경배와 예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셔서 우리의 성전이 되신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그 신비로운 비밀과 가치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여러 종교로 분할되어 공존하는 예루살렘은 지금까지 유태인들이 그 조상들이 버린 참 성전 예수그리스도께로 돌아오기를 수천 년을 인내로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에게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았습니다"(계21: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