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가장 큰 유산(2)
<지난 호에 이어>
어려서 죽은 딸과 부인인 이본느 여사와 합장한 회색 화강석의 간소한 무덤이라고 한다. 그가 떠나던 날은 가을비가 추적대며 내렸는데 그의 고향으로 향한 장례 행렬에는 50만의 추도객 이 정중히 옷깃을 여미고 비를 맞아가며 뒤따랐다고 한다.
그곳을 찾는 관광객이나 프랑스 국민은 그 무덤이 마주한 골짜기 입구를 지날 때 모자를 벗고 목례를 한다는데, 그 목례는 과연 누구에게 향한 인사일까! 150m 높이의 웅장한 대리석 십자가를 보고 모자를 벗는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훗날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할 것인가에 대해 신은 우리에게 막중한 숙제를 주었다.
이 숙제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평점이 나오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나타나게 된다. <LA Times>의 ‘Dear Abby’의 필자 애비 게일 반 베렌은 지난 20년간 자신은 항상 운전면허증과 함께 장기 기증자 카드를 가지고 다녔음을 밝히며, 자신이 죽은 후 장기를 기증하는 일 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의 칼럼에 쓴 것을 읽은 일이 있다.
정말로 가슴이 뭉클한 내용이었다. 죽은 다음의 육체(장기 포함)는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것인데 자신의 장기로 죽어가는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느냐고 술회했다. 자신을 희생하여 이웃을 돕는 순수한 희생정신이야말로 예수의 십자가 희생이 아니고 무엇일까?
LA에서 얼마 전 21세의 나이에 등반 사고로 사망한 데이빗 김군의 아름다운 희생정신도 예외는 아니다. 평소 산을 좋아하던 그는 암벽등반 도중 추락하여 머리를 다친 후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었던 김군은 밝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로 친구들과 이웃, 그리고 스승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살아있을 때도 해마다 적십자사를 찾아 헌혈을 실천한 정기 헌혈자였다고 한다. 그가 16세 되던 해 받은 최초의 운전면허증 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죽은 후 내 몸은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이기 바란다.”
이 오렌지색 스티커가 죽는 날까지 붙어 있었다고 한다. 부모도 자식 잃은 슬픔이 크지만 그의 갸륵한 뜻을 기리기 위해 그대로 병원에 기중하였다고 한다. 김군의 때묻지 않은 영혼은 이미 하늘나라에 갔지만 그의 육신은 한 줌의 흙으로 간 것이 아니고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
말하자면 그는 지금도 수많은 이웃들의 눈과 뼈와 장기로 살아서 숨쉬고 있다. 이런 생명을 이어받은 사람들로부터 감사와 눈물의 편지가 주인 없는 집으로 매일매일 배달된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는 땅이 부족하여 인간이 죽어서 문힐 곳도 없다고 하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조상들의 무덤을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놓고 많은 땅을 차지하며 심지어는 묘지기까지 둔다고 한다.
또 권력 있는 사람이나 땅 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땅을 사들여서 아름다운 산천을 뭉개어 골프장을 만들었다. 울창하던 산이 갑자기 벌거숭이가 되어 소낙비가 두어 시간만 내리면 물 사태가 나고 집이 떠내려간다. 자연을 이렇게 파손하고 생명을 앗아가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나라가 이것을 벌로 다스리지 않으면 반드시 하늘이 다스릴 것이다. 이번에 개혁을 부르짖는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니 이런 무법천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죽음에 대한 큰 숙제를 남겨주고 간 데이빗 김군, 드골 대통령, 애비 그리고 의사 윌리엄스에게 우리도 답변을 하고 떠나야 할 것이다. 데이빗을 떠나보내던 날 그 고별의 자리는 비록 몸의 형체는 없었으나 좋은 관에 누워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별 자리보다 더욱 숙연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시편 23편만이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과 함께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실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윗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