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주 칼럼] 나를 부끄럽게 한 친구 - 시애틀한인로컬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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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주 칼럼] 나를 부끄럽게 한 친구 - 시애틀한인로컬종교칼럼

한 지역에서 오래 살다보니 자연히 지인도 많게 되고 다른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도 적잖이 늘게 되는 것 같다. 일전에 다른 교회를 섬기고 있는 한 친구를 만났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외에는 서로의 일정으로 거의 일년 가까이 만나지 못한 것 같다. 바쁜 년 말을 보내고 오래 만

에 그 친구가 우리 집을 찾았다. 

너무나 반가웠고 기뻤다. 그간의 친구의 안색을 살펴보니 희고 깨끗하고 주름도 별로 없었고 오래전 모습과 별다름 없이 깨끗하고 고운 고전적 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좀더 자세히 보니 건강이 전보다 훨씬 더 좋아 보였다. 나이 들어 좋은 건강을 누림은 진정 축하할 일이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지난 애기 현재 얘기 순서 없이 이런저런 애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떠나면서 친구는 내일 자기 집을 꼭 찾아달라는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왜냐고 하니 친구는 나의 단발머리의 스타일을 바꾸어 보고 싶다고 하면서 일어났다. 하긴 요즘 나로서는 머리에 신경 쓸 여지가 없었기에 누군가가 신경을 써줌에 우선 고맙고 감사했다. 모두가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 자기 머리 신경 쓰기에만도 버거운데 웬 남의 머리에 신경을 다 쓰다니 게다가 부탁받은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헤어 커팅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헤어 커팅에 전문가인 친구의 제안이라 오히려 기대가 가고 고마웠다. 

다음날 아침 오래 만에 가려니 웃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하며 약속시간 보다 약간 늦어지긴 했어도 친구내 집을 찾아갔다. 근대 입구부터 웬 팥죽 냄새가 구수하게 번졌다. 친구는 반갑게 맞으며 우선 나를 식탁으로 안내. 자기가 오늘 내 생각을 하며 팥죽을 쑤었다고 하였다. 자기도 팥죽을 좋아하여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진짜 맛있게 쑤는 방법을 터득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친구는 우선 빨간 팥죽을 내놓았다. 첫 숟갈을 든 나는 깜짝 놀랐다. 팥죽은 우리 한인들이 대부분 선호하는 음식이므로 흔히들 많이 들곤 하는데. 이 팥죽은 특이하게 맛이 있었다. 팥알 하나하나가 자신의 전부를 송두리째 쏟아 낸 맛이라고나 할까. 정말 맛있게 한 그릇을 잘 끝냈다. 우리 집 낭군 생각이 날 정도로 친구의 솜씨는 좋았다. 듣고 보니 그렇게 팥죽을 쓰려면 스토브 앞에서 적어도 한 시간 반 플러스 40분간 신경 써 저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적잖은 시간과 정성을 요한 음식이었다. 

그 후 우리는 자리를 옮겨 친구의 지시대로 나는 의자에 앉았다. 친구는 예전에 미용 가계를 운영한 적이 있는 전문 미용사였다. 요즘 나의 머리는 말씀이 아니었는데 이 친구는 나를 본이래 줄곧 나의 헤어스타일을 위해 마음속으로 스터디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전문인답게 삽시간에 나의 머리를 단아하고 깨끗하게 스타일리쉬한 헤어커팅을 해 주는 것이었다. 머리를 다 깎고 나서 나의 머리를 쳐다보는 친구의 얼굴에는 예쁜 미소가 활짝 번져 머리의 주인공인 나보다 더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참으로 나무나 고마운 친구. 사실 친구는 그날 다른 약속들도 있었지만 바쁜 일정에서도 시간을 기쁘게 할애해 준 것이었다.

그뿐인가 나의 귀가 길에 진미 죽과 미역국을 ToGo-Box 두통에 담아 주었다. “내가 맛있게 들었으니 됐어요. 이렇게 안 주셔도 되요” 라고 아무리 말해본댔자 들을 친구가 아닌 줄 알기에 할 수 없이 들고 왔다.

그리고 후에 그 죽을 드신 나의 낭군님 역시 “그 죽 참 맛있게 쑤었네”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그 죽의 호평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던 것.

대부분의 남성은 조금이라도 긴 머리를 선호하는데 짧은 머리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이 나의 낭군에게 어떻게 보일까 싶어 염려 반을 안고 왔는데 나의 낭군님이 “당신 머리 예쁘게 깎았네”라고 하여 일단 안심이 되었다. 하긴 나의 낭군님이 들 좋아한다고 하여도 어쩔 수 없었을 텐데 다행히 좋아하시니 이 또한 다행이라 싶었다. 아무래도 전보다 많은 시간을 낭군님과 대하게 되는데 이왕이면 부부간에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므로 대소 간에 서로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닐까 싶어 사소한 헤어스타일 하나라도 서로간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 스타일이 좋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해가 지고 하루를 점검하는 나의 일기장 앞에서 나는 친구를 생각하며 무척 고마운 중에도 나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솜씨도 있어야겠지만 할일 많고 바쁜 세상에 누가 두세 그릇의 죽을 쑤느라 두 시간 이상을 불 앞에서 서성거릴 것인가? 내가 그녀였다면 어떠했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자기의 할 일 마치기만도 바쁜 세상에 남의 머리까지 그리 신경 써 줄자가 누구일까? 내가 그녀라면 어땠을까? 간단히 사서 들던지 대접하거나 하지 않았을까? 늘 많이도 듣고 읽는 아가페 사랑을 난 얼마나 실천하면서 사는 자인가? 생각 할수록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 친구야 말로 날 부끄럽게 하였다. 내 내면을 드려다 보게 만든 그녀의 말없는 실천적 사랑. 아무 이해상관이 없이 그녀는 말없는 사랑의 실천자였다. 그리스도의 손발이 되어 필요한 자에게 사랑과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처럼. 

신앙생활을 한다는 나 자신을 드려다 볼수록 너무나 아니올시다였다.

결국 나는 주님께 무릎 꿇고 회개의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주님, 주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아직도 너무나 ego-centric한 나의 허물과 죄악을 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귀한 분들 한태서 많은 사랑을 받기만 하고 아직 사랑의 수고나 실천에 있어 너무나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진실한 사랑의 실천자가 되게 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 드립니다. 아멘.” 

친구의 삶 속에 사랑의 실천자로, 나의 마음속에 더욱 풍성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필요를 보게 해 주신 성령님께 마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사랑의 본체이신 주님을 더욱 닮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진정 바라면서 그날의 일기를 마칠 수 있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살전 1:3)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빌 3:17)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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