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주 칼럼] 보약 한 사발

전문가 칼럼

[문성주 칼럼] 보약 한 사발

가을 아침 나의 창문에 비쳐온 광경. 옥색 화판에 노랑, 다갈색, 진갈색, 적갈색, 붉은색의 멋진 수예 한 폭이 빛나고 있다. 실바람의 속삭임에 잎새들이 하늘하늘 춤추고. 그 옆에는 유럽풍의 지붕을 한 소담한 창고가 하나 단아하게 서 있고. 찬란한 가을의 고요함이 뒤뜰을 덮고 있다.


잔잔한 평안과 즐거움이 피어올랐다. 엊그제 들은 Three Tenors의 우렁찬 명창을 들었을 때도 느꼈던 평안과 그윽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듯이. 스펀지 같은 우리의 마음은 선과 아름다움에 보약 같은 보신효과를 보는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역사 속에 있었던 보약 같은 아름다운 얘기 한 토막을 나누고 싶어졌다.



<덕필유린(德必有隣)>

조선 철종 때 경상도 상주 땅에 서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그냥 ‘서선달’이라고 불렀다. 

원래 선달이란 과거 시험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사람은 무슨 급제와는 관련이 없었고 그냥 사람이 심성이 착하고 무던해서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서선달은 남의 땅을 빌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는 봄이 왔어도 그해 농사를 지을 비용이 없을 정도로 곤궁하였다. 생각다 못한 그는 부산 쌀가게에서 장부를 담당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큰아들을 찾아갔다. 효자 아들은 주인께 통사정하여 6개월 치 월급을 가불 받아 아버지께 드렸다.

서선달은 10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느 고개를 넘던 중 그만 돈을 흘려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때 반대쪽에서 고개를 넘어오던 한 양반이 이 돈 꾸러미를 발견했는데 세어보니 백 냥이나 되는 큰돈이었다.


한편 서선달은 30리는 더 가서야 돈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는데 전 재산을 잃어버렸으니 눈앞이 깜깜했다.


그런데 다행히 돈을 발견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었다. 횡재라고 좋아하는 하인에게 일러 말했다. “잃은 사람은 반드시 찾아온다. 목숨같이 귀한 돈을 잃은 그 사람은 얼마나 속이 탈꼬!!” 그 노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몇 시간이고 돈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과연 한 참 후 서선달이 얼굴이 흙빛이 되어 나타났다.


주운 돈을 서선달에게 돌려주자 서선달은 “어른께서 제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하며 돈을 찾아준 은혜를 갚겠다며 사례를 하려 하는데, 그 노인은 “은혜랄 게 뭐가 있소. 당연한 일인데” 하고는 펄쩍 뛰며 사양을 했다.


그는 주운 돈 100냥을 서선달에게 전달해 준 뒤 가던 길을 갔다. 서선달도 다시 집을 향해 갔고 이윽고 어느 강가에 이르렀다. 그때 마침 한 소년이 물에 빠졌는데 구경꾼은 많아도 누구 하나 뛰어들어 구해 줄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그때 헤엄을 못 치는 서선달이 외쳤다. “누구든지 저 소년을 구해내면 백 냥을 주겠소”. 그러자 어느 장정이 뛰어들어 소년을 살려냈다. 죽다 살아난 도령이 선달에게 말하기를 “정말 고맙습니다. 어른이 아니었으면 저는 수중고혼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희 집은 안동에서 제일 큰 부자인데 함께 가시면 백 냥을 갚아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서선달은 무슨 사례를 받고자 한 일은 아니었으나 자기의 사정도 있는지라 같이 안동까지 가게 되었다. 안동의 총각 집은 과연 고래 등 같은 부잣집이었다. 


그때 소년의 부친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런데 그 부친이란 사람은 다름 아닌 서선달의 돈을 찾아준 바로 그 노인이었다. “온 재산을 털어 제 아들을 구해 주시다니 당신은 진정 의인이요. 정말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댁의 아드님은 어르신께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제가 돈을 잃었다면 무슨 수로 살렸겠습니까?”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7대 독자 외아들을 살려주신 은혜 백골이 되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안동 권 부자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살려준 보답으로 돈 천 냥을 나귀에 실어 서선달에게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서선달이 사는 상주 고을을 찾아와 백섬지기 전답까지 사주고 돌아갔다.


이 일은 후에 조정에까지 알려져 안동과 상주 두 고을은 모두 조정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들을수록 마음을 따스하게 해 주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도 같고 온몸을 훈훈하게 해 주는 보약 한 사발보다 더 마음의 보신이 되지 않는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종전과 달리 금년에는 각 가정에서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며 청교도들의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사랑과 믿음을 생각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Happy Thanksgiving to Everyone!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딤전 1:5)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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