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칼럼] 서울 근교의 갈대밭 오솔길

전문가 칼럼

[동열모칼럼] 서울 근교의 갈대밭 오솔길

1,000만 인구가 밀집한 서울은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생각되지만 시내의 곳곳에 자연 녹지대가 있고, 외곽에는 울창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 공기를 정화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상쾌하게 하니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한강 북쪽에는 북한산, 도봉산, 북악산, 불암산이 솟아 있고, 시내의 중심부에는 남산이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한강 남쪽에는 대모산, 관악산, 우면산, 청계산의 연봉이 감싸고 있다. 


이들 산 계곡에서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갈대가 우거져 시민들의 휴양지가 되고 있다.  그 갈대밭이 가을철에는 하얀 이삭이 패서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 바람에 파도치는 풍광은 晩秋의 정취를 더욱 짙게 하기 때문에 이 갈대밭 오솔길은 시민들의 사람을 독차지 하고 있다.   


 나도 덩달아 여가가 생기면 집에서 가까운 양재천(良才川)의 갈대밭 오솔길을 걷는다. 서울시의 남부 지역을 흐르는 양재천은 청계산 계곡에서 시작해 경기도 과천을 지나 서울 서초구 우면동을 거쳐 강남구 대치동에서 탄천과 합류해 한강으로 흐르는 약 40Km 길이의 하천이다. 


양재천은 본시 평지보다 20여 미터나 깊은 바닥을 흐르기 때문에 양쪽의 제방이 유달리 높게 보이고, 그 제방에는 나무가 우거져 주변의 높은 빌딩이 보이지 않아,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깊은 계곡 같은 느낌을 준다.  


갈대밭 사이를 흐르는 냇가에는 곳곳에 버드나무도 끼어있어 아득한 어린 시절에 뛰놀던 고향의 정취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양재천의 자연 풍광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봄에는 제방의 높은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냇가에는 버들강아지의 부드러운 솜털이 봄의 촉감을 더해주며, 여름철에는 제방의 우거진 나무 그늘이 시민들에게 시원한 피서지를 마련해 준다.  


가을철에는 갈대밭이 시민들을 유혹하고, 겨울철에는 그 넓은 갈대밭이 누렇게 물들어 황량한 대평원의 정취를 선사한다. 


양재천은 이렇게 계절에 따라 색다른 풍치를 나타내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감흥을 준다. 특히 가을철에 하얀 이삭으로 물결치는 갈대밭 오솔길을 걸으면서 창공에 둥실 떠 있는 뭉게구름을 쳐다보면 그 구름이 유별나게 내 가슴을 울리며, 세파에 오염된 내 마음을 씻어주고, 값진 삶의 지혜까지 암시해 준다.  


저 구름은 늙어가는 이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여생을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그마한 보람이라도 느낄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게 한다. 저 뭉게구름은 또한 아름다운 옛 추억을 더듬어 보게 하고, 내 곁을 영원히 떠나간 그리운 얼굴들을 떠오르게 한다.  


양재천의 굽이굽이 이어진 갈대밭 언덕길이 이와 같이 나를 유혹하는 또 하나의 사연이 있다. 그것은 이 길을 걷노라면 내가 지난날 미국 생활을 할 때 Federal Way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유서 깊은 BPA Trail의 굽이굽이 이어진 언덕길을 걷던 아름다운 추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BPA Trail은 그 위를 지나가는 고압선을 보호하기 위해 높게 자라는 나무는 모두 베어내 시야가 탁 트인 구릉지에 갈대밭과 초원을 조성하고, 그 사이에 오솔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이곳은 옛 고향의 언덕길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나는 지난날 그 근방에 살 때 여가가 생기면 이 BPA Trail의 오솔길을 걸었던 것이다.    


이 BPA Trail의 오솔길에서 내 마음을 그렇게도 사로잡던 뭉게구름이 이 양재천 갈대밭 상공에도 꼭 같이 떠 있기에 이 양재천이 더욱 마음에 든다. 그래서 이 양재천 갈대밭 오솔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저 뭉게구름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지나간 미국 생활을 더듬어 본다.  


이렇게 대자연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양재천은 서울의 명물로 널리 알려진 청계천과 매우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청계천은 한강에서 끌어올린 물인데다가 주변의 모든 시설도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공 하천이기 때문에 이곳에는 자연미가 보이지 않고 오직 조형미뿐이다.  


이와 반대로 양재천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꾸밈 없는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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