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회계사] 팽창주의와 자유 9
칼럼 774호(팽창주의와 자유 1)부터 지난주 칼럼(781호)까지 8개의 칼럼에서 본 바, 이 시대에 살아있는 팽창주의는 독재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독재자는 자유를 억압하고, 자유를 잃은 민중은 자유의 가치를 모르고 산다.
명분 없는 전쟁터에 끌려가 의미 없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자유가 아쉬움을 깨닫는다. 전선의 저편에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을 보고, 러시아 군인은 자유의 가치를 배운다. 적지 않은 러시아 군인들은 항복하고 있고, 항복한 자 중 상당수는 “자유 러시아” 부대를 편성하여 푸틴 군대에 맞서 싸우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쪽으로 넘어와 있는 과거 푸틴의 군인들은 잘 쓰면 러시아와 세계의 미래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 자유 러시아 부대원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유의 가치를 체감했고, 자유를 지키는 방법을 배울 시간이 충분히 있고, 가르치는 것을 배울 의무도 있다. 이들이 자유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얻고 나면, 전쟁이 끝나고 절차를 거쳐서 러시아로 돌아갔을 때 새로운 언론과 정치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 이들이 배울 것은 많지만, 기둥이 되는 주제는 자유다. 이번 전쟁에서 나타난 유엔의 거대한 힘의 근본도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다.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분명해진 것은 2022년 9월이었지만, 그 승패는 4월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2022년 4월 28일, 칼럼 752호에서 소개된 우크라이나 렌드 리스 법(Ukraine Democracy Defense Lend-Lease Act of 2022)이 미국 하원에서 417대 10으로 통과된 것이다. 그 이전 상원에서는 100대 0(영)으로 통과되었다. 이 절대다수가 확보된 것은 명분과 승산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명분: 유엔총회가 두 개의 결의문을 통하여 선악을 명백히 규정해 주었다. 찬반 국가 수가 141대 5로 결의된 3월 2일의 결의문은 러시아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어 140대 5로 결의된 3월 24일의 결의문에는 민간인을 해치지 말라 하는 요구가 추가되었다.
승산: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대가 일치단결된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정부의 부패가 군대의 기능을 마비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예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았으니, 미국은 의심 없이 지원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위 승산의 계산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부패다. 독재자는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여 민중으로 하여금 그들의 권리를 모르게 만든다. 독재자가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법”이기 때문에, 민중은 법이라는 것이 대하여 적대감을 가진다. 독재자가 없어진 다음에도, 민중은 법을 적대시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법이 허술하여 부패가 심해져도, 민중은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부패는 어디에도 있지만, 많고 적고의 차이에 따라 민중의 번영과 행복의 정도는 달라진다. 독재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부패 수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통계에 의존하여 “공평성”을 판단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보며 그들은 자본주의의 절망을 느낀다. 그들의 눈에는, 공평성은 재산의 크기에만 달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극단적 부자들이 사회에 재산을 환원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렇게 함으로써 그 부자들이 더 행복해지는 이유를 생각해 내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장벽을 넘어서 옳은 지식을 전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포로로 잡힌 사람들은 우선 따뜻한 음식의 고마움을 느꼈다. 그들에게는 강제 교육 프로그램이 먹혀들 수 있다. 포로로 잡히기 전에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것은 부패 때문이다. 그 일이 그들에게 절실하므로, 푸패의 문제와 해결책을 알리는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부패로 부의 자유가 절실한 국가는 러시아만이 아니다. 토인비는 내부 불만 세력과 외부 불만 세력이 문명을 망하게 한다 했지만, 그 두 가지 문제의 기저에는 부패가 있다. 세상을 망하게 하는 것은 부패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한 사람들이 이미 뭔가를 시작한 것 같다. 그 실마리는 2021년의 신 대서양헌장 속에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