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기드온칼럼] 이스라엘에서 복음통일을 만나다 (첫 이스라엘 방문후기#2)
_ 창가에 서서 넋을 잃고 갈릴리 호숫가에 일출을 보면서, '어쩜 생각만큼의 호수의 크기와 분위기일까?' 아마도 누군가를 무엇을 오랫동안 생각하고 흠모한 상상은 예상외로 같은 것일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저 맑은 호숫가에서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설파하시고, 밤이 새도록 제자들과 함께 고기를 잡으시면서 갑작스런 돌풍을 잠재우시고 또, 걸어오시기까지 하셨다니...
이런 생각으로 묵상을 한 후, 한국에서 온 130여명의 모임에 참석했다. 아니 청년들이 이렇게나 많이 부모세대들과 함께 어울릴수 있구나, 조금 놀랬다.
이스라엘 선교사님들의 강의 중에..."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이스라엘일 수 었던 것은 바로 안식일에 온 가족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토라를 읽음으로써 가능했다"라는 말에 마음이 뭉클했다.
그렇구나 나라가 없이 근 2,000년을 세계도처를 떠돌아다닌 그들이 이렇게 견고한 나라가 된 것은 그냥 하나님이 지켜주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 말씀 - 토라를 매주 안식일에 모여서 들려주었기 때문이구나...
역시 말씀은 세대를 단단하게 연결하고 묵는 힘이 있고 민족의 역사적 가치를 공유하게 한다. 그러나 세상문화와 가치는 세대를 흩어놓고 각자 따로 분리시켜 역사적 가치를 무익하게 하고 대립하게 한다. 이 계명을 여호와 하나님은 수없이 강조했다.
쉐마(히브리어: שמע ישראל, 이디시어: Sh'ma Yisroel ‘이스라엘아, 들으라!’. ‘셔마’ 또는 ‘셰마’, '쉐마' 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는 신명기 6:4-9, 11:13-21에 기록)... 우리에겐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함께 공유할 우리만의 역사적 쉐마의 내용(말씀)이 있는가?
솔직히 없지 않은가! 여호와의 말씀이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전역사를 통해 전세대에 모두 적용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비록 아직까지 유태인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보고 있지만 이들이 그 분을 받아드리게 되면, 수천년전의 예언은 성취되고 말씀은 완성된다.
와 보라! 확실히 시공간은 말씀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한다. 성령님의 초월하시는 임재로 더욱 그렇다. 강의 후, 부모와 자녀세대들이 함께 찬양을 하며, 기도를 드렸다. 아, 이런 세대간 연합의 간절함이 놀랍고 감사했다. 밤 11시가 넘었다.
이 모임을 인도하는 이용희 교수께서 "목사님, 내일 주일예배 말씀 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아, 네에~~" 어떤 말씀을 갈릴리 호숫가에서 내가 전해야 참석한 이들에게 감동이될까..." 약간의 부담감이 깜깜한 갈릴리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듯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