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나는 복음의 빚진 자라
“나는 복음의 빚진 자라.”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며 트루기아의 험한 산을 짐승들과 온갖 위험 속에 복음을 전하러 다녔고 로마에도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하며 부득불 해야 할 일이라고 하였다. 그 울창한 길을 관광버스를 타고 가보았는데 바울 사도의 죽음을 무릅쓴 그 고생을 생각하며 너무나 감격하였다.
오늘날 나부터 과연 크리스천들이 “나는 복음의 빚진 자라.”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나부터 아닌 것 같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자녀들이 “엄마는 왜 그렇게 선교비 때문에 애쓰세요? 은퇴하셨으니 여행이나 다니고 쉬면 좋잖아요?”라고 한다. 해마다 아들 가족과 세계 좋은 곳에 여행을 많이 다녔다. 회사에서 그렇게 여행 비용을 대준다고 한다.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하지만 그것으로 족하고 이 땅에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저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를 생각해 보고 그곳에서 훨훨 날아다니며 영원히 살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나는 비싼 외식도 머리도 화장에도 돈을 안 쓰고 알뜰살뜰 사는데 남편은 쓴 휴지도 말려서 다시 쓰라고 버리지 않고 더 철저한 절약가로 도대체 버리는 것이 없고 내가 버리면서 화를 낸다.
“복음의 빚진 자처럼 사는가?” 나는 글은 쓰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전도를 잘 하지 못해서 마음이 괴롭다. 물론 애쓰고 복음을 전파하기도 하지만 빚진 자의 마음은 아닌 것 같고 쉽지 않다. 그래서 회개하며 이 글을 쓴다.
빚진 자는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는가? 사채를 쓴 사람들이 숨어 살고 도망 다니고 장기를 떼어 팔고 온 가족들이 두려워 떨며 산다. 성경 속에도 빚진 자가 나온다.
선지자의 생도가 빚을 져서 아들이 종으로 팔려가게 되자 그 어머니가 엘리사에게 호소하니 엘리사가 그릇을 얻어 오라고 해서 그릇마다 기름을 채워서 팔아서 빚을 갚고 생활하라고 하였다. 빚을 지면 자녀들을 노예로 팔아야 한다.
옛날 남편의 집은 마포에서 기와공장을 했는데 기와를 가져가고 오래도록 값을 지불하지 못한 곳으로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빚을 받으러 갔는데 가서 보니 너무나 가난하고 굶고 있어서 말도 못 꺼내고 바라보다가 그냥 나와서 동네 쌀가게에 들러 돈을 주고 쌀을 그 집에 갖다 주라고 했다는 말을 남편에게서 듣고 시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산 교육을 시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참 좋은 나라로 빚을 많이 지고 파산 신고를 하면 그냥 끝난다고 하니 너무 좋은 나라이다. 빚진 자는 빚을 못 갚으면 종으로 팔려가야 한다. 바울은 로마로 복음의 빚진 자로 죄수로 가서 감옥에서 살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는데 오늘 바울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만큼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고 하늘에서 해 같이 빛날 것이니 그렇게는 살지 못하면서도 너무 부럽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세계적으로 자기가 복음의 빚진 자라고 하고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 복음을 전했다. 특히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겠다고 결심하고 쫓아다니고 방해했다. 제일 전도하기 어려운 것은 내 나라, 내 가족, 친척이라고 바울은 나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끊어질지라도 내 나라 백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소원했는데 어쩌면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모질게 바울을 박해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빚진 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주셨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빚진 자)를 사해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빚을) 용서해 주소서.” 하라고 하셨다. 우리의 마음속에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의 죄 또한 용서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나는 과거에 나에게 빚진 자를 너무나 미워하고 악착같이 받으려고 애쓴 적이 있는 것을 회개한다. 그 여자가 사치하면서 빚을 갚지 않는 것이 못 견디게 미웠다.
나에게 빚을 넘긴 얄미운 동료도 너무 미웠고 그물에 걸린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그때 너무 괴로웠었다. 그래서 성경에 보증을 서지 말라고 한 것을 실감했다.
성경에서 빚을 갚을 수 있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첫째, 채주(債主)가 불쌍히 여기고 전부 탕감해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일만 달란트 빚을 졌는데 도저히 갚을 수가 없어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왕이 불쌍히 여기고 다 감해 주고 그 사람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 사람이 가다가 자기에게 100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서 빚을 갚으라고 호령하지만 지금 돈이 없다고 다음에 꼭 갚겠다고 사정을 하는데 저를 감옥으로 보냈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왕에게 가서 고하자 왕이 다시 그 사람을 불러다가 “내가 일만 달란트를 감해 주었는데 너는 고작 100 데나리온으로 사람을 옥에 가두느냐? 너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있어라.”라고 감옥에 가두었으니 그 사람은 평생을 감옥에 살게 되었다.
우리의 죽을죄를 주님께서 다 용서해주시고 구원을 주셨는데 나에게 빚진 자를 내가 용서해주지 못한다면 나도 영영 뜨거운 지옥 감옥 속에 가야 하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둘째, 이스라엘은 50년째 희년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그때 모든 빚을 다 탕감을 받는다고 한다. 청교도의 나라 미국이 50년 되는 희년의 해에 강제로 잡아 왔던 노예들을 다 풀어주었더라면 얼마나 멋진 복 받은 나라가 되었을 것인가?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면 그 자녀도 노예이고 흑인을 짐승처럼 주인의 소유물로 취급하고 가축병원에 가게 하고 비참하게 대접했던 과거를 우리는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남부 미국인들이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흑인들을 종으로 부리면서 그것을 합법적으로 한 것은 얼마나 자신들을 합리화시키고 부를 위해 욕심을 부렸는가를 회개해야 하는데 오늘 우리는 그때 백인이었다면 어찌했을까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소경으로 태어났다면? 벙어리나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괴롭고 슬플 것인가? 아름다운 산천을 주시고 걷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연에 써주신 사랑의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감격해 보았는가?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감사한가? 받은 복을 세어보며 주님의 사랑의 빚진 자로 이 사랑의 빚을 남은 생애 동안에 갚을 수 있기를 소원하며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