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2)
신약 성경에서 교회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언급되는 곳은 마태복음 16장입니다. 예수님의 입술을 통하여 이렇게 선포됩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땅에 그 누가 하나님의 교회를 향하여 감히 내 교회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 영광스러운 교회를 바라보며 누가 감히 내가 세우리라 당당하게 주장 할 수 있을까요!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고, 마음 깊이 새겨지는 것 아닐까요! 예수님은 교회를 그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교회인 우리를 진정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꿈이었고, 이 땅에 오신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가장 낮은 자리 그 Basement
에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가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직 예수님으로 충만합니다.
올 한해도 저와 여러분은 변함없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 한해 우리는 무엇으로 충만해야 할까요? 교회인 나를 위하여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예수님 한 분 아닐까요! 예수님은 그렇게 당신만을 의지하는 그 한 사람을 성숙한 주님의 교회로 지금도 세워가고 계십니다. 이처럼 영광스러운 교회는 제자들을 향하여 던지신 이 단순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래,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너희들은 도대체 왜 나를 따르느냐? 나를 어떻게 생각하며 따르는 것이냐? 예수님은 그 이유를 묻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질문이요! 또한, 그 질문의 무게와 깊이를 고려한다면 분명 예수님은 모든 유대인들이 신앙의 중심으로 여기는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이 질문을 던지셨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바쳐진 그 화려한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로마 황제의 신전과 우상의 신전이 가득한 그 도시 한 복판에서 예수님은 둘러선 12명의 제자들을 보시며 이러한 의도로 물으셨던 것입니다. 너희도 보이는 저 사람들처럼 그러한 이유와 목적으로 나를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냐? 그들의 삶의 목적과 이유, 그 동기와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땅을 예수님의 교회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은 삶의 매 순간, 그 중요한 선택 앞에서 우리를 향하여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계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단지, 이 일이 내게 어떤 유익이 될까?
이러한 삶이 우리 가정에는, 자녀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고민만으로는 과연 내가 예수님의 교회로 치열하게 세워져 가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매 순간 그 분의 교회로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질문들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분의 참 교회라면 말이지요! 도대체 예수님은 이 순간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원하실까? 이렇게 사는 이 모습을 보시며, 예수님은 뭐라 하실까?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일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내 삶의 유일한 목적과 이유가 될까? 매 순간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묻고, 고민하는 삶이 진정 교회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나는 교회입니다! 내가 교회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로 외치고 주장한다 해서 내가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란 예수님과 내가 맺어가는 그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진정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나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대천덕 신부님에 대한 짧은 이야기입니다.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을 설립한 대천덕 신부님은 영국 성공회 출신 목사입니다. 가르침과 삶이 늘 한결 같아서 교계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셨던 분입니다.
목사님은 하루의 일과를 늘 기도하며 시작합니다. 오늘은 무엇을 할지, 누구를 만날지, 그 사람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예수님께 묻고 그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 날은 마침 예수원 식구들을 위하여 장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평소처럼 목사님은 무슨 반찬거리가 필요한지 기도하면서 하나 하나 체크 리스트를 만드셨답니다. 콩나물, 두부, 어묵, 생선 등 그리고 만들어진 그 리스트를 가지고 장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돼지고기 진열대 앞에서 그렇게 그 고기가 사고 싶어 발 걸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하다! 이걸 어떻게 하나? 분명 기도 시간에 예수님은 돼지고기에 대해서 아무 말씀도 없으셨는데! 이 고기를 사야 하나, 사지 말아야 하나! 신부님은 그 순간 장보던 것을 잠시 멈추고 그 마켓을 몇 바퀴를 도시면서 예수님께 묻고 또 물으셨다 이야기합니다. 평소 궁금해 하던 대천덕 신부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고 싶어 책을 읽었는데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니, 돼지고기 하나 조차도 마음대로 못 사나?
그러고는 책을 덮었는데 그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돼지고기 하나 사는 것 조차도 그렇게 신중하게 예수님께 묻는 분이시라면, 하물며 삶의 그 모든 결정 앞에서 그분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시는가!
문득 그 마음과 삶의 자세가 깨달아져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서부터 머리 되신 예수님께 진지하게 묻고 살아가는 교회라면 분명 하나님께서 올 한해 여러분을 눈 여겨 보시고, 아름다운 교회로 차근차근 빚어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대천덕 신부의 이야기는 오래 전 읽은 기억으로 주제에 맞도록 각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