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함박눈이 내리는데....”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함박눈이 내리는데....”

비가 오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 있지만 눈이 오는 것은 대개 모두 좋아한다.


 비가 오면 하늘 색깔도 그렇고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면 좀 지저분한 생각이 드는데 눈은 그렇지 않다. 하얀 눈은 일단 지저분하거나 보기 싫은 것들을 하얗게 덮어버린다. 그래서 세상이 모두 깨끗하게 보이고 마음마저 산뜻해진다.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눈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눈은 우선 그 색깔이 곱고 눈이 오는 모양이 보기 좋다. 오늘 아침에 교회에 가는데 눈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별로 불평은 나오지 않았다. 비가 아닌 눈이 오기에 그런가 보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눈이 그치지를 않고 계속 오고 있었다. 


눈발이 차창을 마구 치는 바람에 윈도우 쉴드가 버겁게 눈을 걷어내고 있다.집에 도착하여 교회에서 가지고 온 피자를 먹는데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는 눈은 보기 좋다.비가 섞여서 오기 때문에 눈이 쌓이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눈이 쌓이면 좋겠는데 말이다. 


금년 들어 눈이 쌓이게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늘을 보면 구름이 얕게 내려앉아서 눈이 많이 올 것 같기도 하다. 겨울에는 역시 눈이 와야 제격이다. 맑은 날씨에 찬 바람이 싸늘하게 불면 밖에 나가기가 싫다. 겨울 하늘이 높게 보이면 추운 날씨고 구름이 얕게 드리우면 눈이나 비가 온다. 


겨울비는 좀 처량하고 을씨년스럽다. 캘리포니아 동북 쪽 레이크 타호에 살 때 눈이 엄청 많이 온 겨울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큰 식당을 하고 있어서 늘 샌프란시스코나 리노로 식료품을 사러 가야만 했다. 


그해 겨울에는 유달리 눈이 자주 많이 왔다. 그렇다고 장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장 보러 가는 일이 큰 걱정이고 문제였다. 한 번은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음식 재료를 사가지고 돌아오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레이크 타호까지 날씨만 좋으면 두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눈이 오면 차들이 벌벌 기기 때문에 시간이 배 이상 걸린다. 그 길은 산을 깎아서 만든 길이기에 한 쪽은 수 백 피트 낭떠러지이다.


 만약에 차가 그리로 구르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 길이 양 쪽으로 차 한 대씩만 다니는 좁은 길이라 속력을 놓지도 못한다. 간신히 우리 음식점까지 왔는데 등에 땀이 흥건히 배었다. 우리는 그 당시 북경식 중국요리 식당을 했는데 그 동네에서는 가장 큰 중국식당(300석)이었고 중국요리사가 4명이나 있었다. 나중에는 나도 북경요리를 배워서 거들었지만 손님이 늘 가득했다. 


우리 식당에 단골로 오는 손님 중에 하라스(Harrah's Lake Tahoe Hotel) 호텔 사장(Harrah)이 있었다.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아주 잘생긴 미남이기도 했는데 북경식(만다린) 음식을 유난히 좋아했다. 원래 뷔페(Buffet) 식당으로 하던 큰 식당을 우리가 전형적인 북경식당으로 개조했다.


 그 도시에 중국 식당이 하나도 없었기에 장사는 아주 잘되었다. 한 번은 중국 음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가까운 리노(Reno)로 가는데 눈이 오기 시작하더니 금세 자동차 바퀴가 묻힐 정도로 쌓였다. 길이 잘 안 보이고 해는 거의 저물었는데 다니는 차도 별로 없었다. 


운전 실수로 내 자동차가 오른 쪽 길가로미끄러졌다. 다행히 눈이 쌓여서 나는 다치지 않았고 차도 굴러 떨어졌지만 쭈그러진 데도 없었다. 가게로 전화하여 구급차를 보내라고 했다. 작은 도시이어서 구급 차량이 두 대 뿐이었는데 모두 사고 현장으로 나가서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급차가 왔을 때 내 차는 거의 눈에 파묻혀 있었고 나는 차 밖에서 구급차를 기다렸다. 구급차마저 눈 속에 빠지자 근처 공군기지로 연락하여 헬리콮터가 와서 내 차를 달고 가게 마당에 내려놓았는데 나는 차 안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눈을 평소에 좋아했지만 이때부터는 눈이 무섭고 싫어졌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지금은 웃어 넘기지만 그 당시엔 꼭 눈 속에 파묻혀 죽는 줄 알았다. 그 다음 해 봄에 식당을 팔고 샌프란시스코로 나왔다. 마치 미국 무역회사에서 무역사를 뽑는다고 해서 무역업무를 시작했다.


 그 당시 많은 한국인이 괌에서 건축업을 하고 있었기에 건축 자재를 구입하여 괌으로 수송했다. H건설 무역부에서 일할 때 무역사 자격증을 따놓은 것을 아주 잘 써먹었다. 오늘처럼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서 혼자 빙그레 웃는다. 


그 때 일을 추억하면서 함박눈이 지금도 그때처럼 펑펑 쏟아지는 퍼시픽 하이웨이를 달려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물론 자동차 운전은 아내가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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