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광천 토굴 새우젓
이성수(수필가)
유튜브 방송에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재미가 있어 자주 보게 되었다. 충남 홍성 출신인 자연인이 여러 가지 요리를 선보였는데 요리마다 새우젓을 넣었다. 특히 고기를 요리하는데 새우젓을 꼭 넣었다. 새우젓을 좋아하는 그는 밥을 새우젓 한 가지만으로 먹는다고 했다. 고기를 먹을 때 새우젓을 함께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고 했다.
2박 3일을 자연인과 함께 생활하는 모방송국 개그맨이 집요하게 특이한 자연인의 산중 생활을 녹화하였다.
새우젓 하면 나도 좋아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할머니께서 소화가 안 된다며 늘 고통을 겪으셨다. 병원에 갈 형편도 못되었다. 만만한 게 동네 의원이었다. 의원이라면 병원의사를 떠올리겠지만 면허 없이 한약을 지어주는 사람이다.
할머니는 그 의원에게 가서 소화가 안 된다고 하였더니 한약을 지어주지 않고 새우젓을 식사할 때 함께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의원은 “할머니! 소화 안 되는 것 한약 몇 첩 먹는다고 고쳐지지 안 허유. 그러니 밥 먹을 때 마다 새우젓 조금씩을 드셔봐유. 서너 달만 장복하면 소화가 잘 될꺼유.”
이렇게 의원이 말했다며 할머니께서는 충남 광천에서 새우젓을 사다가 밥과 함께 드셨다. 우리 집 밥상에는 뽀얀 새우젓이 삼시마다 놓이고 할머니는 “새우젓이 소화가 잘 된다고 하니 부지런히 먹어야 히여!” 하셨다.
자연인이 새우젓 한 가지 놓고 밥을 먹는 것처럼 할머니는 새우젓 한 가지 놓고 식사를 하셨다. 나는 새우젓을 좋아하지 않는다. 첫째 이유가 지독하게 맛이 짜기 때문이고 둘째가 하얀 새우에 새까만 눈이 박혀 있어 먹기가 혐오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상에 빠지지 않고 새우젓이 놓이니 먹기 싫어도 먹게 되었다.
할머니는 의사의 말을 믿고 솔선해서 지키셨다. 의원의 말대로 새우젓의 효능이 나타나 할머니의 소화불량증은 씻은 듯이 나았다. 할머니는 70세를 살아도 오래 산다고 할 때 82세까지 소화불량증이 재발 없이 장수하셨다.
할머니의 덕으로 나는 새우젓 애용자가 되었다. 특히 고기를 먹을 때는 소화제로 새우젓을 꼭 먹는다. 새우젓은 천연소화제요. 위염을 낫게 하는 것으로 현대의학도 인정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만 3년 만에 고향에 왔다. 우리 내외와 장남 모두 셋이 일행이 되어 한 달 동안 체류하였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충남 광천으로 새우젓을 사러 갔다. 고향방문 때마다 광천을 꼭 들러 단골 상회에서 새우젓을 사곤 한다. 3년 만에 광천에 왔다.
광천은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하다. 전라도에서 잡은 새우를 이곳 토굴에서 숙성 발효하여 맛있는 새우젓을 팔고 있다. 산속에 땅굴을 파서 일정한 온도(14도)와 습도로 새우젓을 오랫동안 발효시켜 숙성한 새우젓이다. 집에서 30분가량 달려서 광천 단골상회에 도착하였다. 길이 잘 닦여져 있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왔다.
승용차로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인데 나 어릴 적 할아버지 생신 때 종조할아버지가 아침 일찍 출발하여 걸어서 광천에 가서 펄펄 뛰는 생조기를 사 오셨다. 광천은 직선거리로 30리(12km)나 떨어졌지만 길이 산속 소로(小路)라 걷기 힘들었다. 그때 광천은 작은 포구라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산채로 팔고 있었다. 종조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생조기를 사가지고 저녁때야 집에 도착하였다. 냉장고가 없던 때라 생조기는 우물에 저장하여 신선도를 유지하였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 생신날에 생조기국을 끓여 먹었다. 국은 소금이나 간장을 넣어 간을 조절하지 않고 새우젓으로 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혹시 싱거우면 넣으라고 따로 새우젓을 주셨다. 생조기국 한 그릇에 조기 한 마리씩을 넣어 따로 주었는데 새우젓으로 간을 한 간간한 국물 맛과 생조기 한 마리를 통째로 뜯어 먹던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예기치 못한 단골손님이 미국에서 오니 광천 새우젓 상회 주인은 3년 만에 왔다며 커피를 끓여 주고 과일을 대접하였다.
커다란 드럼통에 뽀얀 새우젓이 가득히 채워져 있다. 주인은 우리들에게 새우젓에 대해 안내해 주었다.
“이게 음력 5월에 잡아 토굴에서 숙성한 오젓이고, 이것은 육젓인데 음력 6월에 수확한 산란기의 새우로 담그며, 새우젓 가운데서 제일 상등품입니다. 산란기라 새우가 살이 토실토실하게 쪄 맛이 월등히 좋아요. 육젓은 김장용 젓갈로 가장 선호합니다. 이렇게 흰 바탕에 노란 알집이 있으며, 꼬리와 머리 부위에 붉은색이 섞여 있는데 육젓은 다른 새우젓보다 크고 살이 통통하며 고소한 맛이 나고 오젓보다 값이 배 이상 비싸요. 그리고 저것은 음력 8월에 잡은 새우로 추젓입니다”라고 안내해 주었다.
우리가 볼 때는 오젓이나 육젓이나 똑같이 보였다. 설명을 듣고 보니 산란기의 통통하게 살찐 알밴 육젓이 비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국 친지에게 선물할 새우젓을 10kg짜리 여러 병에 나누어 가득히 담아 주었다. 꾹꾹 눌러 넘치게 채워주었다. 그리고 멸치와 김도 샀다. 미국 시애틀 코스트코(Costco)에서 광천김을 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중고등학교 급식에 한국 광천 김을 주고 있다. 이것은 김의 영양가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새우젓을 많이 팔아주었다고 김과 다시마를 덤으로 잔뜩 주었다. 그리고 우수리도 만원씩이나 받지 않았다.
오징어를 미국 친지에게 선물하기 위해 샀다. 팔고 있는 오징어 중 제일 크고 비싼 것으로 샀는데 그렇게 큰 것 처음 봤다. 오징어가 안 잡혀 값이 금값이다.
돌아오는 길에 광천에서 유명한 맛집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해산물을 넣어 만든 손칼국수인데 새우젓으로 간을 했다며 새우젓을 따로 주고 혹시 싱거우면 더 넣으라고 한다. 이 아주머니를 볼 때 할아버지 생신날 조기국을 먹을 때 혹시 싱거우면 넣으라고 새우젓을 따로 주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 손칼국수 맛은 별미(別味)였다.
“아주머니! 이 새우젓 육젓인가요?”라고 물으니 “물론 육젓이지유. 육젓 아니면 칼국수 맛이 없어 사람이 안 와유”
통통하게 살찐 육젓을 넣어 맛을 낸 칼국수는 다른 집에서 먹어본 칼국수와 확연히 다른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