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하늘로 이사한 김동길 선생님(2)”
<지난 호에 이어>
친구야!“인생 별거 없드라.../ 이래 생각하면 이렇게고 저래 생각하면 저렇고/ 내 생각이 맞는지 니 생각이 맞는지 정답은 없드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내가 잘나 뭐하고 니가 잘나 뭐하나/ 어차피 한 세상 살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건데/ 이 세상 누구도 영원한 삶은 없다네./ 화 낸들 뭐하고 싸운들 무엇하나/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뼈에 박히고 가시가 있는 말들도.../ 우린 씹어 삼킬 나이와 가슴이 있잖아.../ 때로는 져주고 때로는 넘어가 주고/ 때로는 모른척 해주자/ 그게 우리 아닌가 어차피 우린 친군데 그게 무슨 소용있겠나/ 이왕 살다 가는 세상 그 무엇이라고~/ 안되는거 없고 못할 것도 없다. / 여보게 친구 어느덧 우리 인생도 이제 가을이 되었네그려.../ 꽃피는 봄 꽃다운 청춘/ 그 좋았던 젊은 날들 이제 석양에 기울었지만/고운 단풍이 봄 꽃보다 낫다네./ 돌아보면 험난했던 세월/ 자네는 어떻게 걸어 왔는가?/ 모진 세파에 밀려 육신은 여기저기 고장도 나고/ 주변의 친구들도 하나 둘씩 단풍이 들어/ 낙엽처럼 떨어져 갈 가을 인생의문턱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힘든 세월/ 잘 견디고 무거운 발길 이끌며 여기까지 잘 살아 왔으니/ 이제는 얽매인 삶 다 풀어놓고/ 잃어버렸던 내 인생 다시찿아 숙제같은 인생 축제처럼 살자./ 남은 세월 이제 후회없이 살아가세나./ 인생 나이 60~70이 넘으면 남과 여, 이성의 벽은 무너지고/ 가는 시간 가는 순서 다 없어지니/ 부담없는 좋은 친구들 만나 말동무 하며/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고 마음껏 즐기다/ 언젠가 나를 부르면 자연으로 흔쾌히 돌아가세나.../ 친구야!/ 인생 별거없드라.../ 이래 생각하면 이렇고 저래 생각하면 저렇고/ 내 생각이 맞는지 니 생각이 맞는지 정답은 없드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내가 잘나 뭐하고 니가 잘나 뭐하나/ 어차피 한 세상 살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건데/ 이 세상 누구도 영원한 삶은 없다네./ 화낸들 뭐하고 싸운들 무엇하나/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뼈에 박히고 가시가 있는 말들도.../ 우린 씹어 삼킬 나이와 가슴이 있잖아.../ 때로는 져주고 때로는 넘어가 주고/ 때로는 모른척 해주자/ 그게 우리 아닌가 어차피 우린 친군데/ 그게 무슨 소용있겠나/ 이왕 살다 가는 세상 그 무엇이라고~/ 안되는거 없고 못할 것도 없다./ 여보게 친구 어느덧 우리 인생도/ 이제 가을이되었네그려.../ 꽃피는 봄 꽃다운 청춘 그 좋았던 젊은 날들/ 이제 석양에 기울었지만 고운 단풍이 봄꽃보다 낫다네./ 돌아보면 험난했던 세월/ 자네는 어떻게 걸어 왔는가?/ 모진 세파에 밀려 육신은 여기저기 고장도나고/ 주변의 친구들도 하나 둘씩 단풍이 들어/ 낙엽처럼 떨어져 갈 가을 인생의 문턱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힘든 세월/ 잘 견디고 무거운 발길 이끌며 여기까지 잘 살아 왔으니/ 이제는 얽매인 삶 다 풀어놓고 잃어버렸던 내 인생 다시찿아/ 숙제같은 인생 축제처럼 살자./ 남은 세월 이제 후회없이 살아가세나./ 인생 나이 60~70이 넘으면/ 남과 여, 이성의 벽은 무너지고 가는 시간 가는 순서 다 없어지니/ 부담없는 좋은 친구들 만나 말동무 하며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고 마음껏 즐기다/ 언젠가 나를 부르면 자연으로 흔쾌히 돌아가세나...”
김동길선생님의 시 “친구야”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반복되는 귀절도 그대로 옮겨 적었다. 평소에 그분을 참으로 많이 존경하고 좋아했는데 94세를 이 땅에 살다가 하늘로 거처를 옮겼다. 아마 거기서도 나를 내려다 보시고 계실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스승이 두 분 계셨는데 두 분 모두 하늘로 거처를 옮겼다. 머지않아 나도 그곳으로 가서 두 분 스승님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하늘에서의 생명은 영원무궁하다. 김 선생님을 모시고 이곳 시애틀에서 강연회도 몇 차례 가졌다. 그때마다 청중이 꽉 차서 뒤에 서서 듣는 사람들도 많았다. 강연이 끝나면 청중들이 다음에는 언제 강연회를 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거의 해마다 강연회를 연거푸 했다. 근처 오리건에서도 요청이 와서 거기서도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제 그런 멋진 강연을 하늘에서나 들을 수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 시절 어느 해 겨울에 캐스케이드 산에서 눈썰매를 함께 타고 산을 누비며 청솔가지를 꺾어서 불을 지펴 라면을 끓여 먹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먹은 라면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주소를 하늘로 옮기신 선생님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힌 채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