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회계사] 팽창주의와 자유 2 (레닌)
팽창주의를 증오하는 레닌의 입장은 1914년 1차대전 발발 직전에 쓴 그의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논문의 이름은 The Right of Nations to Self-Determination (민족자결권)이며, 그 논문의 초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인용되어 있다. 이것은 1896년 런던에 모인 공산주의자들 집단(London International)의 결정사항이며, 인용문에 나오는 Congress는 그 공산주의 집단의 의회를 말한다.
“This Congress declares that it stands for the full right of all nations to self-determination and expresses its sympathy for the workers of every country now suffering under the yoke of military, national or other absolutism.
본 의회는 모든 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하며 이를 선언한다. 또, 지금 군국주의, 민족주의 기타 절대주의의 멍에 아래 시달리는 모든 국가의 노동자들과 공감하며 이를 천명한다.
This Congress calls upon the workers of all these countries to join the ranks of the class-conscious—those who understand their class interests -- workers of the whole world in order jointly to fight for the defeat of international capitalism and for the achievement of the aims of international Social-Democracy.
본 의회는 그러한 모든 국가의 노동자들이 계급 의식을 가져서, 즉 자기 계급의 이해관계를 이해하여, 국제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국제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함께 싸우기를 촉구한다.”
레닌이 그의 논문 초두에 저것을 제시한 것은, 마르크스로부터 도도히 내려오는 반 팽창주의 정신에 합류하기 위함이었다. 팽창주의의 반대말은 주민집단 자결주의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사람들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은 주민집단은 ‘민족’이었다.
그래서, 주민집단 자결주의는 흔히 민족자결주의라 불린다. 저 인용문의 시대에 사용된 민족들(nations)이라는 표현은 지금은 주민집단들(peoples)이라는 말로 바뀌어 있다. 하나의 지역에 뜻을 같이 하는 여러 민족이 사는 경우도 많고, 같은 민족이라도 지역에 따라 달리 생각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반영하여 그러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레닌은 민족자결주의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러사아와는 별도의 국가로 인정했다. 만일 그가 민족자결주의를 무시했다면, 그냥 소비에트 연방 아닌 거대한 “러시아 인민공화국” 속에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쓸어담으려 했을 것이다.
위 인용문의 단호함에 비교했을 때, 윌슨(28)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는 오히려 그 색채가 흐릿해 보인다. 거의 같은 시대에 나타난 소위 “월슨의 14개조 (Wilson’s Fourteen Points)라는 연설문에 있는 민족자결주의 부분을 인용해 본다.
“A free, open-minded, and absolutely impartial adjustment of all colonial claims, based upon a strict observance of the principle that in determining all such questions of sovereignty the interests of the populations concerned must have equal weight with the equitable claims of the government whose title is to be determined.
‘어떤 지역의 주권에 관한 모든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서, 해당 주민집단들의 이해는 장차 그 지역을 통치할 정부의 정당한 청구권과 동등한 무게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식민지에 관한 각국의 모둔 청구권은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절대적으로 공정한 조정이 있을 것.
위의 인용문은 1차대전 패전국들의 과거 식민지의 처분에 관한 부분이다. 저 난해한 문단의 결론은 “조정”이며, 식민지 폐지가 아니다. 유럽 각국은 저 연설을 외면했고, 미국이 가입하지 않은 국제연맹은 해당 지역에 위임통치를 시행했다.
말과 말을 비교하면, 윌슨의 말은 어정쩡하고 레닌의 말은 단호하다. 그러나, 그 레닌의 정권을 바로 이어받은 스탈린은 적어도 자결주의에 관해서만은 마르크스와 레닌을 완전히 잊은 듯한 행태를 보였다. 2차대전 초기, 스탈린은 히틀러와 동맹을 맺고 주변국을 마구 쳐들어갔다. 그러다가 히틀러의 배신, 기습 공격을 받고 살기 위해 영국, 미국과 한 편이 된 것이다. 스탈린은 자결주의를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푸틴이 하는 행동도 자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2022년 9월 푸틴이 우크라이나 땅 4개주를 병합하고 나서 유엔헌장의 자결주의를 지칭하기는 했지만, 그 말의 진정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레닌은 자결주의에 관하여 어느 정도 언행의 일치를 보였지만, 그의 후계자들로 하여금 자결주의를 지키게 하지는 못한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자결주의가 러시아에서 망해버린 원인은, 자유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특이했기 때문일 수 있다. 자유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유엔 체제에서 인정되는 자유와 무척 다르다.